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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뮌헨-호펜하임 '경기중단' 사태? 분데스리가 풍토를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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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뮌헨-호펜하임 '경기중단' 사태? 분데스리가 풍토를 안다면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3.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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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독일 분데스리가(1부)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가 2차례 중단됐고, 경기가 재개되자 양 팀 선수들은 경기를 중단되는 데 빌미를 제공한 서포터스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아 남은 시간 공을 돌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건은 2019~2020 독일 분데스리가 24라운드 호펜하임과 바이에른 뮌헨의 맞대결이 열린 지난 1일(한국시간) 독일 진스하임 프리제로 아레나에서 일어났다.

원정팀 뮌헨은 경기 시작 15분 만에 세 골을 몰아쳤고, 후반 21분까지 6-0으로 크게 앞섰다. 그때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원정석에 자리한 일부 뮌헨 팬들이 호펜하임의 최대 투자자 디트마르 호프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건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펜하임의 최대 투자자 디트마르 호프를 비난하는 바이에른 뮌헨 원정 팬들의 펼침막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에 한스 디터 플리크 뮌헨 감독과 선수들이 보인 반응이 예상 밖이다. 그들이 뮌헨 팬들이 위치한 원정석으로 몰려가 호프에 대한 모욕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경기는 속개됐다. 하지만 10분 뒤 같은 일이 반복돼 경기가 다시 중단됐다. 이번에는 뮌헨 칼 하인츠 루메니게 회장, 하산 살리하마지치 단장 등 뮌헨 수뇌부들까지 나서 서포터스의 행동에 분노를 표했다. 

마침내 걸개가 내려가고, 양 팀 선수들은 미드필드 진영에서 서로 공을 돌리며 남은 경기 시간을 흘려보냈다. 심지어 상대와도 패스를 주고받았다. 선수들과 심판진이 상의한 결과였다. 0-6으로 뒤진 호펜하임의 홈 팬들이 양 팀 선수들에 박수를 보내는 이색 광경이 펼쳐졌다. 중계 카메라는 볼보이의 현란한 개인기를 담아내는 등 이미 승부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양 팀 선수단 및 관계자는 피치로 내려온 호프와 함께 호펜하임 팬들에게 인사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루메니게 회장은 “너무나 부끄럽다.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할 일이 결국 벌어졌다”면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관중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눈 감아왔다. 축구의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며 뮌헨 원정 팬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분데스리가의 독특한 구단 소유 구조를 우선 알아야 한다. 분데스리가에는 다른 리그와 구별되는 ‘50+1’ 규정이 존재한다.

경기가 끝나고 호펜하임 홈 팬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는 호프(왼쪽 세 번째)와 칼 하인츠 루메니게 뮌헨 회장(오른쪽 첫 번째). [사진=AFP/연합뉴스]

구단과 팬 등이 구단 지분의 과반인 51% 이상을 보유함으로써 기업이나 외국 자본 등이 대주주가 돼 구단 운영을 좌우하는 것을 막는 룰이다. 리그 경쟁력 저하와 우수 선수 유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시민 구단처럼 지역 연고 팬들을 중심으로 팀을 운영하기 위한 장치다.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분데스리가 팬들 사이에서 최근 호펜하임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일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벌어졌다.

지난 2015년 분데스리가에는 ‘20년 이상 지속해서 특정 팀을 지원한 사람이나 기업이 해당 구단을 소유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생겼다. 호프는 이를 처음 활용한 인물이다. 그는 호펜하임 구단 지분 96%를 사들여 최대 투자자에서 사실상 구단주가 됐다.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공동창업자인 호프는 호펜하임 유스 팀 출신으로 1989년 호펜하임에 투자를 시작했고 지금껏 투자를 이어왔다. 당시 5부리그 소속이던 호펜하임은 호프의 투자 이후 승격을 거듭했고, 2008~2009시즌 부로 1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허나 이는 독일 축구 풍토에 크게 반한다. 상당수 분데스리가 팬들은 개인 신분으로 구단을 소유하게 된 호프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도르트문트 팬들이 호펜하임 홈구장을 방문한 뒤 유사한 행위를 저지른 바 있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 일어난 일이었다. 이에 독일축구협회(DFB)는 향후 두 시즌 동안 도르트문트 팬들의 호펜하임 원정 응원을 금지하고, 구단에 5만 유로(6600만 원)의 벌금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축구 시장에 거대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분데스리가가 고유의 전통을 언제까지 지켜내며,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축구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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