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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펍 '봉황당' 대표의 욱일기 퇴치 운동 '8805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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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펍 '봉황당' 대표의 욱일기 퇴치 운동 '8805프로젝트'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3.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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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이자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이 유력한 클럽 리버풀은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몇 차례 욱일기를 사용해 국내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고, 많은 팬들이 리버풀을 향해 반감을 갖게 된 계기였다.

국내 리버풀 팬들의 성지로 불리는 펍이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봉황당’인데, 봉황당 대표인 김성민 씨가 직접 리버풀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며 나섰다.

한국을 대표하는 리버풀 팬이라 할 수 있는 김성민 씨가 진행 중인 욱일기 퇴치 운동 ‘8805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8805 프로젝트'의 첫 캠페인을 위해 활용된 이미지. 안중근, 유관순,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욱일기를 찢고 나오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사진=8805 프로젝트 제공]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결이 같다는 것을 상징하는 8805 프로젝트의 또 다른 캠페인 이미지. [사진=8805 프로젝트 제공] 

봉황당에서 리버풀 홈 구장 안필드까지 거리가 8805㎞다. 프로젝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리버풀 현지와 한국 간 거리만큼이나 욱일기에 대한 인식 수준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리버풀 욱일기 논란이 불거졌을 때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욱일기가 어떤 의미를 지녔고, 왜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8805 프로젝트는 그런 인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지난 15일까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욱일기 반대 이미지와 함께 사진을 찍어 SNS에 인증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해시태그 #8805project와 #norisingsunflag를 통해 의미를 부각했다. 팬들의 이 인증 사진을 오프라인 행사에 쓰일 깃발에 새겨넣을 예정이다. 올 3~8월 서울, 베를린, 뉴욕, 도쿄, 리버풀 등지에서 욱일기 반대 관련 퍼포먼스를 벌이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다.

16일부터는 두 번째 캠페인으로 직접 제작한 엽서를 이용해 공개서한용 대자보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봉황당 측은 SNS를 통해 “프로젝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엽서에 8805가 찾아갈 도시(서울, 베를린, 뉴욕, 도쿄, 리버풀)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며 “다른 나라의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8805의 노선이며 엽서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리버풀은 지난해 12월 미나미노 타쿠미(일본) 영입을 발표한 뒤 플라멩구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결승을 앞두고 과거 맞대결 일화를 소개한 영상에 욱일기 디자인을 사용해 뭇매를 맞았다.

국내 리버풀 서포터즈 및 팬카페 회원들이 다양한 채널로 항의하자 영상을 내리고, 사과했지만 이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졌다.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를 한국 IP에서만 확인할 수 있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한국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8805 프로젝트에 참가한 팬들의 이미지를 영상으로 활용했다. 또 오프라인 활동에 쓰일 깃발에도 팬들의 이미지가 새겨질 예정이다. [사진=8805 프로젝트 영상 캡처]

하지만 그 이튿날 또 한 번 욱일기를 사용하며 논란을 가중시켰다.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리버풀 일본 공식 트위터 계정에 자축하는 이미지를 게재했는데 또 욱일기 패턴이 삽입됐다. 트로피를 들고 있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뒤로 일본어와 욱일기 패턴이 선명했다.

이에 골닷컴코리아가 현지 기자를 통해 공식 문의하자 다시 한 번 사과하긴 했지만 진정성에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었다.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사용했던 전범기로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결이 같다. 하켄크로이츠 사용은 강력히 제재하는 유럽이지만 욱일기에 대한 경계심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최근 사례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유럽 전역 축구장에서 욱일기 혹은 욱일기 패턴을 차용한 디자인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 인식이 약하기 때문에 SNS 등 파급력이 큰 공식 채널에서도 버젓이 사용되는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욱일기 사용을 금하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대회에서는 이를 제지할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역시 일본인 도안 리츠 영입 소식을 전하며 공식 채널에 욱일기 무늬를 썼다. 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도 바르셀로나가 프리시즌에 일본 원정을 떠나자 SNS에서 여러 차례 욱일기 문양을 사용했다. ‘전세계 욱일기 퇴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에 메일로 공식 항의한 바 있다.

일본은 욱일기를 대외적으로 ‘희망의 상징’으로 포장한다. 때문에 일본 선수를 영입한 구단에서 아무렇지 않게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카가와 신지(베식타스)가 득점했을 때도, 4월 사카이 히로키(마르세유)가 생일을 맞았을 때도 소속 구단은 욱일기를 문제의식 없이 활용했다.

지난해 12월 욱일기 문양을 활용한 영상으로 사과하고서 하루 만에 또 욱일기 패턴이 사용된 이미지가 올라왔다. [사진=리버풀 일본 공식 트위터 캡처]

리버풀 욱일기 사태가 불거지자 일본 언론은 한국인들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서경덕 교수는 “리버풀 측에 지속적인 항의도 좋지만, 이젠 그 상위개념인 EPL 사무국과 FIFA 측에 리버풀의 행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계획”이라며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이번 리버풀 사태와 일본 언론들의 반응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더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도 “리버풀은 욱일기 사용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며 “욱일기는 전범의 깃발이라는 내용의 영문 영상을 리버풀에 보냈다”고 밝혔다.

리버풀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다각도, 다채널로 욱일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와 욱일기가 무분별하게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는 현 실태의 심각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김성민 봉황당 대표는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리버풀은 힐스버러 참사를 겪은 팀이다. 축구장 관중석 시설이 무너지며 사망자 96명이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과 언론은 피해자들을 ‘훌리건’이라고 부르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를 바로잡으려 30년 가까이 노력한 이들이 리버풀 팬들이다. 어떻게 보면 욱일기 문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통성을 안다면, 리버풀이라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욱일기와 관련해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리버풀 팬클럽 대표로부터 ‘그래, 이제 알겠으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경기장 안에 팬들이 욱일기를 들고오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문서화된 약속을 받고 싶다.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8805 프로젝트의 성과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김 대표의 이런 노력이 유의미한 시도로 남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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