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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드라마Q] '폭풍의 여자'를 통해본 아침드라마 진단 '막장 코드'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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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드라마Q] '폭풍의 여자'를 통해본 아침드라마 진단 '막장 코드' 이대론 안된다
  • 박영웅 기자
  • 승인 2015.05.1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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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SNS 등의 발달로 주시청 시간 무의미...청소년 등 악영향도 고려해야

[스포츠Q 박영웅 기자] 온종일 집안에서 살림하는 주부들에게 오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라면 단연 아침 드라마를 꼽을 수 있다. 아침 드라마는 주부들의 '위안거리'이자, '재미' 그 자체다.

하지만 수십 년째 주부들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받는 탓일까? 아침 드라마는 건강한 '진화'보다는 폐쇄적인 막장코드를 답습하고 있다.

웬만한 막장코드를 이해해 주신다(?)는 마음 넓으신 어머님들 사이에서도 "최근 아침 드라마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주 시청자층인 어머님들조차 이럴 정도면 아침 드라마가 이젠 변해야만 살 수 있다는 소리로 볼 수 있다.

 

◆ 2015년 아침 드라마의 현실을 집약해 놓은 '폭풍의 여자'

2014년 5월 현재 지상파 3사의 아침 드라마 3편 중 최고의 인기 작품은 MBC '폭풍의 여자'다. 이 드라마는 평균시청률 10%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고 최고 시청률은 20%대에 육박하는 아침 드라마계의 손꼽히는 '대박 드라마'다. 주부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던지 120부로 기획됐던 드라마는 현재 '슬쩍' 140부까지 확대 편성이 됐다.

'폭풍의 여자'의 인기비결은 단순하다. 지상파 3사의 아침 드라마들 중 가장 전형적인 막장 코드를 사용 중이다. 이 드라마는 생각이라는 것을 별로 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할 틈을 주지 않는다.

'폭풍의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여자가 어느 날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딸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서 부와 권력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스로 폭풍이 된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 '폭풍의 여자'는 제목처럼 항상 극속에서 '폭풍'이 몰아친다. 머리를 잡고 싸우는 것은 일쑤고 심지어 살인 불륜이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사진= MBC '폭풍의 여자' 방송 캡처]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기획의도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 내용을 보면 뭔가 대단할 것만 같던 기획의도는 '막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극 중 한정임(박선영 분)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자신을 배신했다. 오로지 자신에게 삶의 희망을 줬던 딸 소윤(정찬비 분)마저 학교폭력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심지어 자신의 엄마마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본인도 드라마 속에서 교통사고로 입원하는 일만 수차례를 당했다.

정임은 연쇄적인 배신과 사고를 당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복수의 화신으로 재탄생했다.

정임이 복수를 시작하면서 극의 막장화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기업 경영권을 놓고 이복남매간의 골육상쟁이 벌어졌고 부부간의 암투까지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부부간 막장 불륜 스토리가 이어졌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 나가는 것은 예삿일이 돼버렸다. 이 드라마 속에서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병원 신세를 져보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시피 할 정도다.

듣기만 해도 아찔한 일들이다. 공익성을 중시한다는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속에서 이런 막장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지상파 3사 대부분 아침 드라마들이 '오십보백보'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 [사진=MBC '폭풍의 여자' 방송 캡처]

◆ 아침 드라마 왜 이런 길을 걷고 있나?

아침 드라마들이 이런 부류의 '막장 드라마'로 변한 데는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었다.

이중 가장 큰 원인은 오전 시간대의 주 시청자층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이다. 아침 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층은 대부분이 주부들이다. 아침에 조금 출근을 늦게 하거나 학교를 늦게 가는 남편이나 자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족구성원은 아침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

막장드라마들에 대해 대놓고 거부감을 표하지 않는 주부 시청층을 겨냥해 드라마가 시작되고 마무리되고 있다. 방송사들은 이 부분을 악용하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피드백이 적은 주부들을 상대로 오전 광고 확보를 위한 막장극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방송에 대한 감시와 심의가 오후보다 오전 시간대에 허술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부분도 아침 드라마의 '막장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아침드라마 방송시간대는 자녀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시간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층이 시청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예 대놓고 자극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 케이블채널 피디 출신 A 본부장은 "대부분 지상파 방송사들이 아침 드라마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배우의 역량이나 작품성이 아니다. 시청률이 먼저다. 그래서 작가나 PD들은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A 본부장은 이어 "거기에 오전 시간대는 방송에 대한 심의가 오후 시간대에 비해 취약한 편이라 이 같은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 [사진=MBC '폭풍의 여자' 방송 캡처]

◆ 인터넷과 SNS의 발달 '아침 드라마'에 대한 비난 증폭

하지만 폐쇄된 그들만의 왕국을 꾸릴 것만 같던 아침 드라마계는 매체 환경의 급변으로 최근 시청자들의 비판과 항의의 중심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부들의 세계에서만 갇혀 있던 막장 아침 드라마들에 대해, 이제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다른 계층의 시청자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숨겨져 있던 아침 드라마들의 문제가 기술의 발달로 터져 나오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청소년 같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시청자층도 본인이 원하면 시간과 장소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청소년층은 아침드라마의 주시청층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 아침 드라마 "이제는 막장아닌 공감으로 변해야 산다"

방송가 주변에서는 이런 문제점 투성이인 아침드라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도 이들의 심의를 강화하고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규제와 심의가 강화된다면 아침드라마는 큰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자극성을 무기로 시청률을 뽑아내던 방식이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극성에 오랜 시간 길들여져 온 아침드라마의 제작풍토와 시청환경은 이런 변화를 인지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스스로 폭력성, 막장성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특히 아침 드라마는 '주부들만 본다', '오전 드라마일 뿐'이라는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충격적 소재가 방송되는 날마다 SNS를 통해 모든 시청자층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현실을 감안해 기획 단계부터 새로운 스토리 텔링이 요구된다.

이제는 일부 계층을 위한 '막장 코드'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감 코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 [사진=MBC '폭풍의 여자' 방송 캡처]

변화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아침 드라마에는 워낙 연기 층이 두터운 베테랑 배우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호흡이 긴 드라마가 대부분인 덕분에 실내 제작이 많아 제작비가 많이 들지도 않는다.

모든 계층이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찾는다면 충분히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 방송사의 의지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시도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지상파 채널 김모 PD는 "최악의 자극적 경쟁을 펼치는 아침 드라마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방송사와 제작진의 인식 변화와 고육지책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극성을 줄이면 처음에는 시청률이 떨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부들 역시 좋은 작품을 찾게 될 것이다. 좋은 배우, 적은 제작비라는 변화에 유리한 이점이 많은 만큼 변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극도 계속 받다 보면 점차 무뎌진다. 그래서 자극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끝없이 자극에 노출되면 그것에 중독됐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게 만든다. 막장극의 서사구조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이유다.

방송은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대중매체다. 지상파 방송은 더 그렇다. 무형, 유형으로 국민의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대외 환경은 빠르게 바뀌는 데도 꿈쩍하지 않는 아침 드라마의 막장 코드를 이제는 들어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의 아침 드라마를 고대한다.

pres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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