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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환, 나는 섹시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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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환, 나는 섹시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4.03.2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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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이승환(49)이 10집 ‘드림마이저’ 이후 4년 만에 11집 ‘폴 투 플라이’를 발표한다. 음악에서만큼은 큰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어린 왕자’는 4년 전 10집 실패로 인해 벼랑 끝에 서 있는 경험을 했다. ‘다시는 꿈에 빠져 살지 않겠다’며 그는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준비했고 이제 그 노력을 대중 앞에 공개한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대중성이지만 그의 줏대 있는 소신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부심은 그것보다 고고하다. 그는 25년 후에 할 말 다하는 섹시한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여전히 그는 꿈을 꾼다. 그래야 이승환답기도 하다.

[스포츠Q 이예림기자] “뉴욕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곡을 녹음하고 엎고를 반복했어요. 작년 8월에는 스튜디오 엔지니어도 힘든 일정에 그만두고 나갔고 프로듀서 황성제와 저 단 둘이서 작업을 했어요. 중국집 쿠폰을 세어보니 120장이 넘었더라고요.”

1989년에 데뷔한 이승환은 이전에 신경 쓰지 않았던 마케팅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앨범에는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록음악 위주로 구성했다. 이 정도면 그가 데뷔 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앨범이며 그에게 있어서는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더 이상 추락하고 싶지 않아요”

“지난 앨범의 성적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 때,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어요.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 이 일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꼈을 정도로 상처가 컸죠. 그런데 2년 후에 곡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더라고요. 그 때 만든 곡이 11집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예요.”

이승환에게 10집의 경험은 너무도 상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위기를 음악으로 극복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피하기가 아닌 ‘변화’였다. 11집의 완성도를 위해 창법부터 녹음 방식까지 고쳤다.

“기존의 옹알이 창법에서 벗어났어요. 이번 앨범 곡들을 들은 지인들은 가사가 잘 들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녹음 방식을 바꿨어요. 하루에 10~11시간 녹음하는 방식에서 2~3시간만 녹음하고 집에 와서 들어보고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그 다음날 녹음했어요. 사실 나이 들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도 있어서 이렇게 바꿨는데 적당히 시간을 두면서 녹음하니까 이 방법이 좋더라고요.”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소은과 배우 이보영이 피처링에 참여해 눈길을 끈다. 이제 듣기 힘들 거라 생각했던 이소은과 여배우를 노래 부르게 한 것도 이승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지 않을까.

“소은이가 중학생 때 제가 소은이의 1~2집을 제작했어요. 제 곡 중에 짧게 네 마디를 부를 예쁜 목소리가 필요한데 소은이가 생각나서 카톡으로 ‘노래할 수 있겠니?’라고 물어봤어요. 단박에 한다고 그러더군요. 소은이가 휴가 때 한국에 와서 녹음을 했죠. 그리고 이보영씨가 제 팬이라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하겠냐고 던졌더니 흔쾌히 응해줬어요. 15분 동안 녹음하고 곧바로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지성씨도 왔어요. 같이 한 차례 술자리도 가졌죠.”

 

◆ 인간 이승환의 성향 그리고 가수 이승환의 소신

‘어린 왕자’로 군림했던 이승환이지만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며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팬이 없다’는 말을 덤덤하게 쏟아내며 굽히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강조한다.

“제가 디시인사이드에서 네티즌들과 댓글로 싸웠어요.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나 팬카페에도 읽기에 편하지 않은 글을 써요. 팬들은 저에게 어린왕자나 판타지를 기대하시지만 저는 공연에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팬들도 피곤해하더라고요. 이제 팬들도 별로 없어요.”

마지막 트랙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도종환 시인이 작사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도종환 시인이 어느 대상을 두고 작성한 곡은 아니지만 이승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저는 녹음하는 동안 그 분 생각을 하면서 불렀어요. 가수가 자기 노래할 때 옳고 그른 것을 얘기하는 것은 주제넘고 교만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노래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 지난 25년 그리고 앞으로의 25년

그는 프로듀싱까지 참여하는 최초의 신인가수였다.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자’가 모토인 그였지만 ‘애원’의 뮤직비디오 조작설과 무대 저작권으로 인한 컨추리꼬꼬와의 법정 공방 사건 등은 그에게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그래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저 자신은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지금까지 하는 것도 그렇고 저는 7080에도 나가지만 인디페스티벌에도 나가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저의 가수 인생에 상처도 있지만 이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죠.”

이제 상당한 연차가 쌓인 가수지만 그의 동안 외모 때문에 앞으로 무대에서 오랜 시간 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에 향후 25년의 계획을 물었다.

“나이 쉰이 되고 나서 노래 부르니까 목이 힘들어요. 얼마 전에 글씨가 잘 안보여서 안경점에 갔더니 다초점렌즈를 권하더라고요. 요즘 미세먼지에 방사능 문제에 25년을 더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2년 전인가 70대의 믹재거 형님이 스키니를 입은 모습을 보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GQ잡지에서 믹재거한테 '당신은 그라비아를 먹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너나 먹어’ 라고 답하더군요. 그런 형님이 되고 싶어요.”

앨범 수록곡 전체를 듣지 않는 시대에 왜 싱글을 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앨범을 내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싱어송라이터에게 앨범은 자존심이다. 내 이야기를 한 곡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취재후기]

이름 석 자만으로도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그 사람은 유명인사다. 강산이 여러 번 변하고도 그 이름의 효력이 여전하다면 세대의 아이콘이다. 거기에 명작과 기록까지 갖고 있다면 그는 역사다. 타고난 재능은 당연하거니와 아티스트로서의 소신이 그를 ‘이승환’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res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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