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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서상준 '무면허' 최재성 징계 고작? KBO 비상식 원칙주의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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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서상준 '무면허' 최재성 징계 고작? KBO 비상식 원칙주의 [기자의 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7.30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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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원칙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스포츠 구단이나 단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다만 원칙에도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원칙주의 고수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KBO가 그렇다. ‘클린 베이스볼’을 주장하며 팬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외쳤지만 ‘역시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칙이라는 건 쉽게 흔들려선 안 된다. 그러나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고찰이 전제돼야 한다. 무조건적인 원칙주의는 책임 회피라고도 볼 수 있다.

 

SK 와이번스 서상준(왼쪽)과 최재성이 음주 운전, 무면허 운전을 하고도 30일 KBO 상벌위로부터 3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200만 원, 사회봉사활동 40시간 징계를 받았다.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KBO는 30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음주와 무면허 운전을 하고 이와 관련해 후배에게 얼차려를 준 SK 와이번스 구단과 선수들, 미성년자 강제 추행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지성준에 대한 징계를 논의했다.

지성준에겐 72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앞서 KBO 사무국과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무기한 출장 정지를 결정한 롯데에 이어 강력한 철퇴를 가했다.

강제 추행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게 없고 미성년자와 교제를 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지성준의 징계에 대한 논란은 크지 않다. 오히려 일부 팬들은 과거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 가혹하다는 주장을 할 정도다.

다만 SK와 관련된 징계에 대한 시선은 다르다. SK 2군 선수들 일부는 지난 5월 음주 운전과 무면허 운전을 했다. 둘 다 심각한 문제다. 일부 고참 선수들은 이 같은 일탈 행동을 한 신인급 선수들을 때렸는데, SK는 두 사안에 대해 자체 징계만 했다가 외부에 공개되자 지난달 14일에야 뒤늦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고 둘러댔다.

잘못에 대해선 책임을 지면 된다. SK는 미신고 및 선수단 관리의 책임을 물어 벌금 2000만 원을 부과 받았다.

 

롯데 자이언츠 지성준이 미성년자 강제추행 의혹 등 부적절한 사생활 문제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72경기 출장 정지 철퇴를 맞았다. [사진=연합뉴스}

 

음주 운전을 한 서상준과 무면허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최재성에겐 각각 3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200만 원, 사회봉사활동 40시간이 주어진 게 전부다. 이를 방조한 전의산은 15경기 출장 정지.

이들에게 직접 폭력을 가한 김택형과 신동민은 3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0만 원, 얼차려를 지시한 정영일은 10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KBO는 원칙론을 들고 나왔다. 품위손상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단순 적발’을 기준으로 이들의 징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KBO가 주장한 음주운전 단순 적발 시엔 50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300만 원, 봉사활동 80시간의 징계를 받는다. 

다만 서상준과 최재성은 경찰에 적발되지 않았기에 원칙적으로 이보다 징계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무면허 운전과 관련한 징계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초 사건이 밝혀졌을 때나 지금이나 선배들의 행위가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물론 폭력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음주 운전과 무면허 운전을 한 이들보다 더 큰 징계를 받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KBO 상벌위원회 최원현 위원장(가운데)과 상벌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해당 선수들의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구단의 징계에 대해선 납득이 가지 않는 기준을 제시했다. KBO 규약 제152조 유해행위 신고 및 처리 조항에선 ‘구단이 소속 선수가 148조 부정행위 또는 151조 품위손상행위를 했음을 인지하고도 즉시 KBO 총재에게 신고하지 않거나 이를 은폐하려 한 경우엔 ▲ 경고 ▲ 1억 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 제명 등으로 징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KBO 상벌위는 SK의 은폐 의도가 없었다던 주장을 받아들였고 징계 수위를 낮췄다. 사건에 대한 파악을 하고도 이를 KBO에 알리지 않고 템플스테이로 정신 교육을 하려고 했다는 게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 의식 결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도 문제지만 이를 관리하는 주체가 엄격히 처벌하지 못한다면 언제고 같은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KBO는 앞서 음주 운전 삼진아웃을 당한 강정호 문제 때에도 범죄를 저지를 당시 KBO 소속이 아니었고 가중된 징계 규정이 이후 바뀌었다는 이유로 1년 유기 실격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선처했던 지난 사례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원칙을 내세운다면 그 누구도 반기를 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KBO의 상식이 결여된 원칙주의는 제 입맛에 맞게 규정을 해석하고 있다. 원칙을 내세우지만 관용적 의미의 ‘원칙적’이라는 표현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

아직도 ‘클린 베이스볼’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팬들이 얼마나 될까. 신뢰는 스스로 쌓아가는 것이다. KBO가 진정한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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