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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콜 추신수-슈어저, 놀라운 천적의 세계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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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콜 추신수-슈어저, 놀라운 천적의 세계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9.0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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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먹이사슬은 모든 생태계에 존재한다. 이는 스포츠, 야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유독 약한 선수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점이 더욱 스포츠를 재밌게 만든다.

최지만(29·탬파베이 레이스)이 또 해냈다. 1일(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뉴욕 양키스 게릿 콜(30)을 상대로 2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맹활약하며 패전의 멍에를 안겼다.

올 시즌 타율 0.230에 불과한 최지만이지만 MLB 최고 투수 중 하나인 콜만 만나면 펄펄 날아다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오른쪽)이 1일 뉴욕 양키스전 게릿 콜에게 선제 투런홈런을 빼앗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게릿 콜은 160㎞를 웃도는 빠른공을 앞세워 지난해 20승 5패 평균자책점(ERA) 2.50 326탈삼진을 기록했다. 그 결과 9년 3억2400만 달러(3840억 원) FA 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은 대투수다.

최지만의 성적을 보자면 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해 타율 0.261 19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탬파베이 레이스의 중심타자로 거듭났지만 올 시즌엔 아직까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게릿 콜만 만나면 변신했다. 올 시즌 3홈런을 기록 중인데 이 중 2개가 콜에게 뽑아낸 것이다.

이날은 1회부터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퍼올리며 우측 담장을 넘기는 선제 투런포를 날렸다. 3회엔 1사에서 시속 156㎞ 몸쪽 빠른공을 잡아당기며 안타를 뽑아냈다. 좀처럼 공략하기 어려운 코스였음에도 안타를 만들어내자 콜도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지만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콜은 5회 선두타자로 만난 최지만에게 좀처럼 존을 파고드는 공을 던지지 못하고 5구 만에 볼넷을 허용했다.

게릿 콜이 최지만에게 일격을 당한 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12타수 8안타 3홈런 3볼넷, 타율 0.667 출루율 0.733 OPS(출루율+장타율) 1.667. 게릿 콜만 만나면 펄펄 날고 있는 최지만이다. 올 시즌 부침을 겪고 있지만 같은 지구의 게릿 콜 덕분에 그나마 폼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MLB닷컴에 따르면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은 “최지만이 콜과 승부에서 좋은 결과를 내왔다. 카운트를 잡고 노림수를 바탕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지만은 “리그 최고 투수를 상대하면 나도 최고의 타격을 하려고 한다”며 “타석에서 무엇을 보는지 말하긴 어렵지만 리그 최고의 공을 때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듣는 이들 입장에선 ‘천적 모드’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천적관계는 야구계에선 찾기 어려운 게 아니다.

코리안리거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는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 킬러로 유명하다. 양대 리그를 오가며 3차례나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그지만 추신수는 슈어저에게 통산 24타수 14안타 3홈런 6볼넷, 타율 0.583 출루율 0.667 OPS 1.125로 강했다.

슈어저는 MLB와 인터뷰를 통해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추신수를 꼽기도 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이던 슈어저가 내셔널리그로 이적하면서 추신수를 자주 보지 않아도 돼 기뻐했다는 후문도 있다.

추신수(오른쪽)은 맥스 슈어저에게 천적의 면모를 보이며 상대의 존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사진=USA투데이/연합뉴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도 유독 강한 타자가 있다. 당대 최고 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빅리그에서 10시즌 째를 보내며 통산 타율 3할에 리그 MVP 3회 수상에 빛나는 트라웃이지만 류현진을 상대로는 10타수 무안타 4삼진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투수마다 특징이 다르고 강력하거나 다소 약한 구종이 있다. 타자 또한 핫존과 쿨존이 있고 빠른공에 약한 타자, 변화구에 약한 타자 등 모두 성향이 다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전설적인 타자인 이승엽과 양준혁 등이 몸쪽을 스치듯 위협적으로 파고드는 공을 던지는 이혜천에게 맥을 추지 못했고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는 2012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잠수함’ 정대현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상대 타율이 0.102(49타수 5안타)에 불과했다.

과거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객관적 실력과 관계없이 실전에선 그런(천적) 관계가 있다”며 타자의 스윙과 투수의 피칭 매커니즘에 따라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찰나의 순간에 결과가 좌우되는 게 야구다. 결국 타이밍 싸움으로 요약되는데, 투수는 타자에게, 타자는 투수에게 이러한 템포 싸움에서 밀리게 되면 결국 맥을 추지 못할 수밖에 없다. 최지만과 추신수, 류현진이 각각 정상급 선수들에게 킬러본능을 보이는 것 또한 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뻔히 예상되는 승부가 아닌 누구라도 강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의외성이야말로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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