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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을 넘어선 그들의 아름다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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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을 넘어선 그들의 아름다운 도전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0.09.1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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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직업의 남녀 구분이 점차 옅어지면서 그동안 남성 직업으로 인식되던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스포츠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금녀의 벽’을 허물고 남성과 쟁쟁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여성이 그 주인공이다.

혼성 경기나 단체 경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남자 소속 팀에 입단해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에 나선다. 

지난 10일 일본 지역 2부 리그 남자 팀인 하야부사 일레븐으로 임대를 발표한 나가사토 유키
지난 10일 일본 지역 2부 리그 남자 팀인 하야부사 일레븐으로 임대를 발표한 나가사토 유키 [사진=시카고 레드스타즈]

# 일본 여자 축구 전설 나가사토, 남자 축구에 도전장

지난 10일 일본 여자 축구 스타 나가사토 유키(33)가 남자 클럽 팀에 입단한 사실이 전해졌다. 일본 가나가와 지역 2부 리그 팀인 하야부사 일레븐은 공식 홈페이지에 “나가사토가 하야부사에 합류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달라”고 발표했다. 프로 무대에서 여자 선수의 남자 팀 입단은 최초다.

나가사토는 현재 미국여자프로축구리그(NWSL) 시카고 레드스타즈 소속이다. 남자 축구보다 시장 규모가 작은 여자 축구에서는 선수들이 시즌 휴식기에 경기력 유지를 위해 다른 리그로 임대 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남자 클럽 임대 이적을 결정했다.

물론 피지컬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남자 선수들에 비해 열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가사토는 월드컵에만 세 차례 출전했으며, A매치 132경기에서 58골을 넣은 여자 축구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꼽힌다. 특히 2011년 일본 사상 첫 여자 월드컵 우승과 2015년 준우승 당시에도 주전 선수로 맹활약했다. 2019년 영국 매체 가디언이 뽑은 ‘최고의 여자 선수 100인’에서 40위를 차지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해 남자 선수들과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나가사토는 입단 기자 회견에서 “남자 선수들 사이에서 얼마나 잘 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해외 경험이나 쌓아온 훈련을 살리고,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데 이어, “오래전부터 남자 팀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수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목표로 해왔다. 여자도 남자 팀에 들어가서 도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자신을 계기로 여자 축구 선수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것을 희망했다.

# 네덜란드 9부 리그 입단한 엘렌 포크마

나가사토 이전 남자 축구에 도전장을 던진 한 선수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 국적인 엘렌 포크마(19)라는 여자 축구 선수다. 올해 초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시범 프로그램 일환으로 포크마의 남자 축구 9부 리그 VV 포아루트 입단을 임시 허락했다.

포아루트는 네덜란드 프리슬란트 주에 위치한 인구 3천 명의 작은 마을 메나암을 연고지로 하는 팀인데 현재 아마추어 리그에 참여 중이다. 정식 프로팀은 아니지만 포크마의 의미 있는 도전이 포아루트에서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포아루트에서 포크마 훈련 과정을 면밀 관찰한 뒤, 영구 입단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 동안 여자 선수들은 19세까지는 남자 팀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의 나이가 되면 A팀으로 가는 남자 선수들과 다르게 B팀에서 뛰어야 했다. 이에 축구협회 관계자는 “매년 남자 팀에서 여자 선수가 축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했을 만큼 향후 여자 선수의 남자 팀 이적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금녀의 구역’ 그라운드에 우뚝 선 안향미&김라경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은 올해 서울대학교 야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은 올해 서울대학교 야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야구는 완전히 ‘금녀’의 구역이었다. 여자부 리그가 활성화되어 있는 농구, 배구, 축구와 달리 야구는 프로 팀이 없다. 몇몇 야구 클럽들이 존재하긴 하나 프로와 거리가 멀고, 일본 여자 야구팀으로 이적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도 세미 프로에 가깝지 프로 리그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안향미(39)는 여자 야구 선수로서 최초로 야구 협회가 주관하는 공식전에 출전하며 금녀의 벽을 깼다. 리틀 야구를 거쳐 경원중에서 1루수로 활약하던 그는 그 당시 야구부가 있는 유일한 남녀 공학인 덕수고에 입학했고, 고교야구 1호 여자 선수가 됐다.

그리고 안향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유일한 여자 선수 공식 경기 등판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등판으로 체육 특기생 자격을 얻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민 대학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프로 구단 문을 두드렸다. 이후 일본 사회인 야구단 도쿄 드림윙스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했고, 2004년 우리나라 최초 여자 야구팀 ‘비밀리에’를 창단하며 여자 야구 저변을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안향미가 고교야구 1호 여자 선수라면 김라경(20)은 대학야구 1호 여자 선수다. 한화 이글스 선수였던 김병근 여동생인 그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초등학교 시절 계룡대 리틀 야구단에 들어가면서 야구계에 발을 내디뎠다. 올해 서울대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남자 선수와 어우러져 훈련하며 편견과 마주했고, 외로운 길을 걸었으나 “대학에 가서도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야구를 하겠다”며 당돌한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그는 2020 KUSF 대학야구 U-리그에서 투수로 4경기 출장해 9.2이닝 평균 자책점 9.90을, 타자로 4경기 출장해 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기록이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엘리트 야구부가 아닌 서울대 특성을 고려하면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는 일각의 평가다. 최고 117km/h의 강속구와 좋은 타격 능력도 겸비하고 있어 그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기록이나 성적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 존재하나,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의 성별을 허물고 남자 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도전으로 비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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