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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당구는 외롭다? PBA 팀리그, 편견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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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당구는 외롭다? PBA 팀리그, 편견을 깨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9.15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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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당구는 외로운 스포츠다. 복식 경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철저히 개인전 위주로 이뤄진 종목이다. 팀을 이뤄 리그를 펼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전을 펼치며 팀 동료의 승리에 환호했다. 이전엔 쉽게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14일 2020~2021 신한금융투자 PBA 팀리그 첫 시즌 1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함께 하는 당구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심상찮은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개인전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 PBA 팀리그에서 자주 목격됐다. 승부처에서 작전 타임을 통해 함께 전략을 상의하고 있는 TS·JDX 히어로즈 선수들. [사진=PBA 투어 제공]

 

◆ 변수가 넘친다, 풍부해진 볼거리

지난해 출범한 프로당구는 파격적인 우승상금(1억 원)을 비롯해 다양한 변화로 호평을 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PBA가 중점을 둔 또 다른 변화는 팀리그였다. 6개 팀이 창단 의사를 나타냈고 6,7명씩 주요 선수들을 영입해 팀을 꾸렸다. 종전 지역 중심으로 친분을 형성했던 선수들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는 새로운 발전 동력이 됐다.

뚜껑을 열자 예상보다도 더 큰 호응을 얻었다.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팀당 5경기씩 치렀는데 이변이 속출했다. 6세트 중 개인에게 맡겨진 단식 경기는 단 한 세트. 스리쿠션 ‘4대천왕’ 프레드릭 쿠드롱(52·웰뱅 피닉스)도, 올 시즌 개인전 첫 우승자 오성욱(42·신한 알파스)도 정신을 차리기도 전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남남, 혼성 복식 경기도 흥미로웠다. 1라운드 고전한 SK렌터카 위너스 주장 강동궁은 “생각보다 여성 선수 비중이 컸다”고 말했는데, 김가영이 7승 3패(개인전 4승 1패), 강지은이 5승 2패(개인전 3승)로 선전한 신한(1위)과 크라운해태(3위)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증명됐다.

주장 김가영(왼쪽)이 맹활약한 신한 알파스는 1라운드를 공동 1위로 마쳤다. [사진=PBA 투어 제공]

 

대부분 주장들은 팀원들과 상의해 출전순서를 정했는데, 긴 대기 시간과 응원전 등으로 인한 체력 소모 등이 변수였다. 성향에 따라 초반 혹은 후반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는 걸 대회를 겪으며 느꼈다.

강동궁은 “최대한 골고루 나갈 수 있도록 짜려고만 생각했고 깊이 고민하진 않았다”면서 “그런데 초반에 강한 선수, 복식을 잘하는 선수 등 성향이 나타나더라. 2라운드부터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맞춤 오더를 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 선수들도 즐긴다, 남의 경기에 이토록 열광해본 적 있던가

가장 큰 변화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 팀으로서 소속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TS·JDX 히어로즈 이미래는 “팀원이 생겼다는 자체로 굉장한 시너지를 얻었다. 외롭지 않은 느낌이 좋았고 긴장을 덜어줄 수 있는 팀원이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여자부 3회 우승에 빛나는 임정숙(SK렌터카)은 “동호인 시절이나 대한당구연맹(KBF) 소속일 때 단체전을 많이 해봤고 재밌었던 기억에 그리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에이스이자 주장 역할까지 맡은 프레드릭 쿠드롱(왼쪽에서 4번째)은 팀원들을 이끌고 웰뱅 피닉스를 공동 1위로 올려놨다. [사진=PBA 투어 제공]

 

반면 부담은 더욱 컸다. 나의 부진이 팀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동료의 선전에 누구보다 열광했다. 응원도구를 들고 나와 직접 치어리더를 자처했다. 큰 소리로 응원 구호를 외치며 팀원에게 힘을 보탰고 심지어 나팔과 북도 동원됐다. 강동궁은 “(상대 응원에) 신경이 안 쓰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응원전을 열심히 하다보니 더 끌어오르는 느낌도 들어 저 팀은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승부처에선 작전 타임을 불렀고 선수들은 머리를 맞대고 득점 루트를 상의했다. 그 결과로 짜릿한 승리가 찾아왔을 때 선수들은 얼싸안고 포효했다.

이러한 특성들은 개개인의 능력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줬다. 차유람은 분위기 메이커로 김예은을 뽑았고 서현민의 밝은 성격도 웰뱅의 1위 등극에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응원단장’ 김형곤은 주장 강동궁을 보좌하며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했고 특히 복식에서 3연승을 이끌었다. 강동궁은 “내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길 바랐다”며 김형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블루원 엔젤스는 1승 1무 3패로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팀 분위기는 누구보다 좋았다. 개막 전 미디어데이 때부터 조직력을 강점으로 꼽았는데, 이러한 점이 라운드를 거듭하며 어떤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다.

6개팀이 참가해 출범한 PBA 팀리그는 다음 시즌 최소 8개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사진=PBA 투어 제공]

 

◆ 시작이 반? 더 기대되는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관중 없이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리그를 향한 관심만큼은 뜨거웠다. 대회 관계자는 “시청률이 대박났다”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유튜브와 네이버스포츠 등을 통해서도 생중계에 많은 당구 팬이 몰렸다. 빠른 템포의 경기 진행과 극적인 결과에 박수를 보냈다.

선순환이 일었다. MBC, SBS스포츠, 빌리어즈TV, IB스포츠 등 기존 중계사에 올 시즌엔 KBSN스포츠까지 합류했다. 스폰서의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올 시즌은 6개팀 체제로 진행되지만 다음 시즌엔 최소 2개팀이 더 합류하게 될 예정이다. 지난 시즌 입증된 PBA 투어 후원 효과가 힘을 더해가고 있다.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SK렌터카 위너스는 막판 호흡을 끌어올리며 다음 라운드 반등을 기대케 한다. [사진=PBA 투어 제공]

 

선수들에게도 소중한 기회다. 상금이 커졌다고 하지만 남자부 우승자 8명만이 1억 원 씩을 챙겼다. 대다수가 마음놓고 당구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팀리그 출범과 입단으로 생긴 계약금은 빠듯한 생계유지에 숨통을 트게 해줬다. 우승상금 1억 원도 놓칠 수 없는 달콤한 열매다. 기존보다 더욱 향상된 경기력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번 대회 이변이 속출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부족했던 연습시간 때문이기도 했다. 해외 선수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뒤늦게 귀국해 자가격리를 거쳐야 해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또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 시기를 거쳤기에 오는 21일부터 치러질 2라운드부터는 진정한 팀워크와 실력 등으로 인한 순위 판도 변화가 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시작단계일 뿐이기에 섣부른 평가는 이르다. 다만 새로운 시도와 이를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전향적인 자세, 이로 인한 흥행 조짐은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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