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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취업 '한파', 씁쓸한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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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취업 '한파', 씁쓸한 어른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9.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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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사실 지명률 33%는 야구, 축구 등 다른 인기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맞물려 이번 여자배구 취업시장은 예년보다도 얼어붙었고, 배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배구계 종사자들은 짙은 아쉬움과 어린 꿈나무들에 대한 미안함을 나타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2020 여자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구슬 추첨을 할 각 구단 관계자 1명, 최소의 연맹 관계자만 참석했고, 미디어 취재도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15개교에서 지원한 39명 중 프로 입성 꿈을 이룬 선수는 13명(33.3%)에 그쳤다. 역대 가장 낮은 수치. 지난해 35명 중 17명(48.57%)이 선택됐고, 이전까지 40명 중 16명(40%)의 이름만 불렸던 2016~2017시즌이 가장 저조한 취업률이었다.

지원자 39명 중 수련선수 2명 포함 13명만 최종 지명됐다. 역대 최저 수치다.[사진=KOVO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예견된 결과였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각종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되면서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고교 레벨에서 날아다녀도 프로에 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데이터가 부족하니 구단으로선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4%의 확률을 뚫고 지난 시즌 2위 서울 GS칼텍스가 1라운드 1순위로 세터 김지원(제천여고)을 지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뒤 이어 대전 KGC인삼공사가 윙 스파이커(레프트) 이선우(남성여고), 화성 IBK기업은행이 레프트 최정민(한봄고)을 호명하는 등 1라운드에선 6개 구단 모두 선수를 충원했다.

하지만 2라운드부터 줄줄이 “패스” 외마디 행렬이 이어졌다. 2라운드에서 선택된 자원은 3명에 불과했고, 3라운드에서도 단 2개 팀만 선수를 선발했다. 4라운드까지 모두 종료된 뒤 추가로 2명이 수련선수 신분으로 프로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수원 현대건설만 수련선수 포함 3명을 품에 안았고, 나머지 5개 구단은 모두 2명의 신예와 계약하는 데 그쳤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드래프트를 돌아보며 “좀 많이 아쉽다”며 “우리 팀은 명단이 다 찬 상황이다. 수련선수로라도 선발하고자 노력했지만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구단 입장도 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많이 아쉽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1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한 세터 김지원. [사진=KOVO 제공]

배구 팬 이목을 끄는 스토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1라운드 5순위로 인천 흥국생명으로 향한 세터 박혜진(선명여고)은 남자배구 수원 한국전력 미들 블로커(센터) 박태환의 동생이다. 프로배구선수 남매가 탄생한 것. 둘의 어머니 남순옥 씨는 1987년 실업배구 태광산업(흥국생명 전신)에서 신인왕을 받은 센터였다. 1980~1990년대를 주름 잡은 명센터의 딸이 어머니가 뛰던 팀에서 프로 첫 발을 내딛는다.

흥국생명이 수련선수로 뽑은 현무린(세화여고) 역시 성장배경이 독특하다. 벨라루스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카베트스카야라는 이름으로 살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자 옥돌 무(珷)에 맑을 린(潾)을 쓰는 이름은 '맑고 밝은 삶을 살라'는 새 아버지의 뜻이 담겼다. 키(169㎝)는 기대만큼 자라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강한 서브와 안정적인 리시브를 겸비해 크게 주목받았다. 레프트와 리베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이날 이호근 KBSN스포츠 아나운서는 드래프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연신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자신의 SNS에 “오늘 나는 감성적이었고, 감성에 호소해야 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 뒤섞인다. 참 어렵다”는 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 프로배구를 현장에서 중계해 온 그의 배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지난해까지 신인 선발 현장에는 선수와 그 가족들이 함께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진출 그 문턱에서 선수들과 가족들은 각 구단 관계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다른 분야가 그러하듯 올해 배구 취업시장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유독 더 '삭막하고 냉혹했다'고 기억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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