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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성리학' 강을준 감독 앞에서 영웅 면모 뽐낸 데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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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성리학' 강을준 감독 앞에서 영웅 면모 뽐낸 데릭슨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0.10.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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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우리는 영웅이 필요 없다고 했지. 성리(승리의 경상도 사투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나.”

창원 LG 재임 시절 개인이 주목받기보다 팀 승리를 우선시할 것을 주문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 강을준 감독의 가장 대표적인 어록이었다. 하지만 부산 KT 소닉붐(이하 KT) 외국인 선수 마커스 데릭슨(24)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듯 맹활약했고, 이날 경기서 영웅으로 떠오르며 강을준 감독 ‘성리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데릭슨은 지난 10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오리온과 개막전에서 3차 연장 접전 끝에 극적인 역전 3점포로 116-115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3점 슛 7개 포함, 31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KBL 데뷔전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KT 데릭슨이 역전 결승 3점 슛 이후 팀 동료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KBL]
KT 데릭슨이 역전 결승 3점 슛 이후 팀 동료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KBL]

KT는 지난달 열렸던 2020 MG새마을금고 KBL 컵 대회 C조 2차전 오리온과 맞대결에서 79-70으로 패했다. 강을준 감독 지도 아래 부담을 벗은 이대성에게 24점을 내줬고, 한호빈과 최진수에게 연이은 실점을 허용하며 좀처럼 점수를 좁히지 못하고 무너졌다. 데릭슨은 상대 수비에 고전해 12득점, 2리바운드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그쳤다. 

컵 대회 복수를 꿈꾼 KT가 기대를 걸 부분은 데릭슨의 폭발적인 득점력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데릭슨은 입단 당시 모두가 주목하는 새로운 얼굴이었다. 그는 NBA G리그에서 맹활약한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투 웨이 계약을 맺고 11경기를 뛰기도 했다. 40%에 달하는 3점 슛 성공률을 가졌고, 2019~2020 시즌에는 G리그에서 평균 13.1점을 기록하는 등 공격에서 만큼은 리그 최고라는 평가가 많았다. 또한 경쟁자들보다 신체 조건이 뛰어나진 않지만, 216cm에 달하는 긴 윙스팬으로 내 외곽을 오갈 수 있는 멀티 자원이라 KT가 공격에서 그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했다.

특히 KT는 지난 시즌 높이 열세와 멤버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꾸준하게 받았다. 서동철 감독이 선호하는 포워드 중심 라인업의 외국인 선수 조합은 높이에서 열세를 절감해야 했고, 주전 멤버 이외 후보 선수들 기량에서 아쉬움이 짙었다. 지난 컵 대회에서도 문제점을 말끔히 지우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KT는 데릭슨이 ‘영웅’급 활약을 펼쳐줘야지만 승리로 갈 수 있는 활로를 쉽게 모색할 수 있었다.

데릭슨은 1쿼터부터 영웅이 될 준비를 마친 듯했다. 첫 공격에서 2점 슛을 성공시키며 쾌조의 출발을 알린 그는 쿼터 막판 이그부누와 교체될 때까지 4득점과 2리바운드, 1어시스트로 팀이 리드를 잡는데 쏠쏠한 도움을 줬다.    

그러나 KT는 3쿼터 중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반 동안 3점 슛 6개를 성공한 것과 달리 3쿼터에는 3점 슛 3개 모두 놓쳤다. 그 사이 상대에게 3점포 5방을 허용했다. 4쿼터 시작과 함께 24초 바이얼레이션에 걸렸고, 이승현과 최진수에게 연속 실점하며 60-71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레이업을 시도하는 KT 데릭슨 [사진=KBL]
레이업을 시도하는 KT 데릭슨 [사진=KBL]

흐름이 완전히 오리온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기의 순간 팀을 건져 올린 것은 데릭슨이었다. 그는 혼자서 돌파와 골밑 득점, 3점 슛 등으로 연속 9득점을 책임졌다. 빡빡한 수비를 피해 KT 장점인 외곽이나 패턴 플레이를 활용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오히려 상대 선수와 매치업을 피하지 않고 자신 있는 슛으로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 양홍석 골밑 득점으로 동점을 만든 KT는 4쿼터 3분 40여초를 남기고 데릭슨 3점 슛으로 74-71로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 막판 오리온 분전으로 돌입한 연장전에서 데릭슨은 훨훨 날며 이날 영웅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로슨 돌파와 허일영 골밑 득점을 내줘 90-93으로 뒤지던 KT는 15.8초를 남기고 마지막 공격 기회를 잡았다. KT는 데릭슨에게 마지막 공격을 맡겼고, 그는 1차 연장 0.8초를 남기고 동점 3점을 성공하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리고 3차 연장 종료 2.3초를 남기고 맞이한 마지막 공격 상황에서 김영환 인 바운드 패스를 받아 그대로 3점 버저비터를 꽂으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데릭슨은 “마지막 공격을 골밑 플레이로 지시받은 것은 맞다. 오픈된 동료를 찾으려 노력했는데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동료들도 외곽 슛을 잘 넣는데 저도 3점 슛에 자신 있었다. 그 찰나에 3점 슛을 시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던졌다”며 승부수에 강한 면모를 자랑했고, 서동철 감독도 “외국인 선수들이 제 몫을 다했다. 두 선수가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국내 선수들도 든든하게 경기를 풀어갔다”며 데릭슨 활약에 만족감을 표했다.

결국 뛰어난 영웅 유무가 이번 승패를 갈랐다. 오리온은 로슨과 이승현 클러치로 끈질기게 따라가는 모습까지는 인상적이었지만, 수비 시 중심을 잡고 버텨줄 영웅이 없었다. 물론 외국인 선수 위디가 부상으로 결장한 탓도 있겠으나, 리드를 잡고도 끈끈하지 못한 수비로 KT에 점수를 쉽게 헌납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강을준 감독 ‘성리학’은 팀 플레이가 중요한 농구에서 높은 가치를 받는 지론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만큼은 데릭슨 ‘영웅론’에 힘이 더 실렸다. KT가 승리했기에 데릭슨이라는 영웅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데릭슨이라는 히어로가 KT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사진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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