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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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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Q리뷰]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0.10.14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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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Even a worm will turn!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거리에 컴퓨터 학원과 영어학원이 넘쳐나던 1990년대, 일명 '국제화 시대' 을지로를 배경으로 한다. 그때 그 시절 모 대기업에서 실제로 개설된 상고 출신 고졸 사원들을 위한 '토익반'과 시기는 다르지만 실제 있었던 폐수 유출 사건이라는 두 가지 실화 기반 이야기를 기둥으로 세운다.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

 

입사동기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는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진급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고 새벽 영어토익반을 듣는다. 그러나 현실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과 확연히 다른 복장인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입은채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구두를 닦아 갖다주고,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타주는 8년차 말단 사원.

생산관리3부 자영은 어리버리한 대졸 대리보다 더 완벽한 보고서를 쓰는 베테랑이지만 상사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고, 마케팅부 유나는 특유의 기민함으로 번뜩이는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지만 질투 많은 대졸 대리에게 몽땅 빼앗기기도 한다. 보람은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 수학 천재지만 회계부에서 가짜 영수증을 처리해 장부 숫자를 맞추는 일을 하며 "숫자한테 미안하다"고 발끈하기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학력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던 그 시절, 199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삼진그룹 사무실 내부, 길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 배우들의 의상과 메이크업, 임직원 가리지 않고 따라하는 아침 체조 배경으로 깔리는 디스코 음악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한다.

다만 총무부 '미쓰김' 언니가 "어쩌려고 애를 가졌냐"는 윽박과 함께 권고사직이란 이름의 해고를 당하는 모습부터 여성 사원을 은근하게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는 동료와 선배 직원들의 모습은 2020년을 사는 직장 여성들에게도 씁쓸한 공감을 안긴다.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영화 속 이야기는 '오지랖' 자영이 회사 공장의 폐수 유출을 목격하면서 본격 물살을 탄다. 추리소설 마니아 유나, 수학천재 보람과 함께 회사의 은폐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것. 이들이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추적에 나서는 이유는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자영의 대사가 말해준다.

'유리천장'에 갇혀있던 자영, 유나, 보람의 재능은 우정과 연대를 통해 리드미컬하게 달려간다. 다만 불의에 맞서는 세 사람의 싸움이 마냥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엉뚱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넘지 못할것 같은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들의 싸움은 다른 부서 고졸 사원들과 함께해 더욱 완벽해진다. 보조업무만 도맡으며 무시당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이 없으면 결국 회사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활용한 전개가 영화 안에서 보기 좋게 엮인다.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언성 히어로'가 세상의 부조리에 '한 방'을 날리는 이야기는 통쾌한 만큼 뻔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합숙 훈련'까지 했다는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호흡부터 울림 있는 한 마디를 건네는 봉현철 부장 역의 김종수, 자영에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어리버리 최동수 대리 역의 조현철, 첫 연기에도 완벽한 '신 스틸러' 역할을 해준 타일러 라쉬까지 스크린을 빈틈없이 채우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마음을 움직인다. 

요즘 다시 시작된 레트로 열풍 속 경쾌한 리듬감을 꽉 채우고, '미미한 존재의 반란'이라는 유쾌한 소재를 맵시 있게 그려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극중 대사처럼 'tiny, tiny'한 개미들이 결국 만들어낸 큰 변화는 이 시대를 사는 관객에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드리운다.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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