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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훈, "한국 축구시장 좁아, 다양한 곳에 기회의 문을 열어야"(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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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훈, "한국 축구시장 좁아, 다양한 곳에 기회의 문을 열어야"(上)
  • 한찬희 객원기자
  • 승인 2020.10.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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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한찬희 객원기자] 축구선수 지경훈은 지난 2015년 방영된 KBS 2TV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을 통해 축구팬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비록 그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때는 2015년이었지만 그의 도전은 그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31세 나이인 지금도 선수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지경훈은 말레이시아 독립구단 FC아브닐에 소속돼 있다. 그는 팀에서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을 담금질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스포츠Q는 지난 3월 지경훈을 만나 그의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축구 떠돌이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는 지경훈의 축구 인생을 2회로 나눠 전한다.

[사진=강별포토]
[사진=강별포토]

 

- 만나서 반갑다. 청춘FC가 끝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년 전의 이야기들부터 해보자. 청춘FC가 끝난 직후 무엇을 하며 지냈나?

 

청춘FC에서 체계적으로 먹고 훈련했던 것들이 빛을 발해 방송이 끝난 직후 몸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시간이 무척이나 아깝게 느껴졌다. 밤이 새도록 인터넷을 붙잡고 팀을 알아봤다. 150여 개 가까운 팀에 이메일을 보냈다. 청춘FC를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다시 혼자가 되니 또 발로 뛰어야 했다. 이전부터 내가 해오던 것이라 나는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

 

- 150개의 이메일이 효과를 봤나?

 

세 개 팀 정도에서 연락이 왔다. 특히 홍콩에서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어느 정도의 연봉을 생각하는지, 어느 팀과 계약 돼있는지 언제 올 수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한 달의 테스트 기간 동안 필요한 체류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했고 계약이 성사되면 항공료도 지불해주기로 했다.

 

- 결국 발로 뛴 끝에 홍콩 프리미어리그의 홍콩 레인저스 FC와 계약을 맺었다. 생애 첫 프로팀과의 계약이었는데.

 

비록 홍콩 레인저스와 계약을 맺기에 성공했지만, 당시 한국에서 어머님의 췌장암 판정 소식을 들었다. 홍콩 지하철과 길거리를 다닐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미친 사람처럼 계속 울었다. 그리고 축구에 집중도 되지 않았다. 테스트 결과가 좋아도 계속 홍콩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팀과의 계약 날짜와 어머니 수술 날짜가 겹쳤다. 다행히 계약 직전에 어머니 수술 결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때의 눈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진=강별포토]
[사진=강별포토]

 

- 홍콩에서 2시즌 동안 활약하며 모두 시즌 베스트 11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결과를 냈다. 홍콩 축구를 통해 무엇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가?

 

외국인 선수 신분이다 보니 자국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컸다. 그리고 홍콩은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전술 이해도가 낮아 코치를 여러 차례 찾아간 적이 있다. 그래도 바뀌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 이후, 이란과 말레이시아에서 입단 제의가 온 것으로 아는데.

 

맞다. 그런데 더는 입대를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봤는데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연기가 가능했다. 그래서 홍콩에서 대학원을 알아봤다. 결국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병무청에 확인해보니 특수 대학원만 입대 연기가 허용됐다. 그래서 입대를 최종적으로 하기로 했다.

 

- 프로팀과의 첫 계약을 맺고 2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더 좋은 리그에서 활약 할 수 있었는데 입대로 도전을 중단해야 했다. 많이 아쉬웠을 듯한데.

 

어쨌든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홀가분하게 입대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 최종 목표가 축구 지도자여서 군에서 축구 지도자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홍콩에서 활동할 당시 알게 된 김판곤 위원장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위원장님의 조언을 듣고 어떤 지도자로 시작할지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 군대에서 지도자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전역하고 캐나다로 건너가 선수 생활에 도전했다.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축구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온전히 축구를 즐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축구를 즐기면서 해보고 싶었다. 또한 내가 선수 생활 재기에 성공한다면 지도자 생활을 할 때도 같은 상황의 선수들을 공감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선수로 도전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지경훈은 캐나다에서 선수 도전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비자 문제와 도전에 필요한 경비 등을 이유로 시선을 말레이시아로 돌렸다. 홍콩에서 인연을 맺게 된 DJ 엔터테인먼트가 말레이시아 독립구단 아브닐FC를 창단했고 지경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FC 아브닐은 지경훈에게 플레잉 코치로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지경훈은 고심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군에서 2년간 복무하는 동안 축구에 대한 감각도 떨어졌고 몸도 완전하지 못했기에 몸을 끌어올리고 그 이후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자는 생각에서였다. FC 아브닐에서 선수 겸 코치로 함께 하게 되면 의식주가 해결된다는 부분도 지경훈의 선택에 힘을 보탰다.

[사진=지경훈 제공]
[사진=지경훈 제공]

 

- 말레이시아 독립구단이라는 부분이 특이하다. FC 아브닐이라는 구단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 좀 부탁한다.

 

FC아브닐의 최종적인 목표는 선수들을 유럽으로 진출시키는 데 있다.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해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이 필요한데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에서 영어 능력을 키우고 학업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도움이 된다. 해외의 수많은 프로구단과도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어 적응력을 키운 어린 선수들의 프로 진출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구단이다. 15명 정도의 소수정예 구단이다.

 

- ‘플레잉코치라는 역할이 낯설 듯한데, 어려움은 없나?

 

혼란이 많았다. 아직은 선수가 익숙한 나인데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해야 하고 동시에 선수로서 나 자신도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코치 자체가 처음인데 선수 겸 코치를 해야 하니 어려운 일이다.

 

- 비록, 플레잉코치 역할은 낯설 테지만 다양한 경험을 한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해줄 이야기들이 많을 듯하다. 어떤 이야기들을 주로 해주는가?

 

선수들에게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져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지원이 끊기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팀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축구 경기를 할 거야? 라는 등의 질문들이다. 사실, 북미에서 선수 경험을 하면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많았다. 다른 국적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확실히 뛰어나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좁은 한국 시장만을 바라보기 때문인지 자신들이 뛸 수 있는 팀들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남미 선수들이 차지한다. 남미 선수들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국적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함에도 그들은 한다. 그래서 지금 지도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한국 시장도 바라봐야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도 눈을 돌리라고 말을 한다.

 

지경훈은 자신의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며 선수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 그의 조언이 힘이 있는 이유는 그가 발이 아프도록 축구를 위해 세계 곳곳을 누볐기 때문이리라. 그는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하며 틈틈이 유튜브 채널 지스타 TV’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곳에서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축구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그림자에 맞서 온몸을 불살랐던 지경훈. 그가 자신의 선수들에게 나아가 한국 축구를 위해 어떤 긍정적인 행동을 보여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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