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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2] 지옥과 천당 오간 전남 박준혁, “이런 경기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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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2] 지옥과 천당 오간 전남 박준혁, “이런 경기 처음이다”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0.10.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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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전남 드래곤즈(이하 전남) 수문장 박준혁(33)에게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치명적인 실수로 무승부 원흉이 될 뻔 했지만, 후반 막바지 터진 극장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은 1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2 2020 24라운드 수원FC(이하 수원) 전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전반 1분 만에 박찬용 자책골로 리드를 내줬으나, 전반 10분과 26분, 29분, 이지훈 자책-황기욱-이후권 연속골에 힘입어 경기를 뒤집었다. 전남은 박준혁 골키퍼 실수로 다시 2골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후반 43분 박찬용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전남 수비수들이 박준혁 골키퍼를 다독이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전남 수비수들이 박준혁 골키퍼를 다독이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전남은 이번 경기 전까지 19골만 허용해 리그 최소 실점 팀에 올라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성골 유스 김영욱, 한찬희가 팀을 떠났고, 작년 팀 최다 도움을 기록한 정재희마저 시즌 중반 상주로 입대해 스쿼드 약점이 뚜렷한 전남은 단단한 수비로 공백을 보완했다. 특히 전남의 끈끈한 수비 조직력은 상대 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변칙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섞어 쓰면서도 수비진이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여기에 베테랑 골키퍼 박준혁이 리그 23경기에 출전해 19골만을 내주며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점 역시 전남에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전남은 이날 전반 1분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 실점했다. 상대 전진 패스 한 방에 수비가 무너졌고, 안병준 크로스가 수비수 박찬용 발 맞고 들어가며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전남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최후방 박준혁이 끊임없이 수비진 위치를 조정하며 수비 라인을 단단히 쌓았다. 수비가 다시 조직력을 찾자 공격까지 순조롭게 흘러갔다. 전남은 전반 10분 상대 자책골을 유도한데 이어, 전반 26분과 29분 황기욱과 이후권 연속골로 단숨에 점수 차를 벌렸다.

이렇게 경기가 흘러간다면 전남 승리는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단순히 경기 리드를 잡은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역습으로 수원 수비를 흔들며 경기 운영까지 압도했다. 에르난데스와 이후권, 추정호가 상대 중원 라인을 장악했고, 공격 시에는 윙백 최효진과 이유현까지 높은 위치까지 올라와 측면 공간을 넓게 사용했다.

하지만 전남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경기가 꼬였다. 바로 박준혁 골키퍼 실수였다. 박준혁은 전반 32분 어이없는 실책으로 팀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자신에게 굴러온 공을 잡고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본 라스가 강하게 압박했고, 그는 당황한 듯 경기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재차 공을 잡으려 허둥대 봤지만 이미 공 소유권은 라스에게 넘어간 후였다. 

박준혁 실수로 좋았던 흐름이 완전히 상대에 넘어갔다. 이날 수원은 수비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을 노출하며 패했지만, 강한 공격만큼은 여전했다. 라스와 안병준이 최전방 투 톱을 꾸렸고, 마사와 유주안, 말로니 등이 후방에서 지원했다. 수원 공격이 흐름을 타니 공격수들이 자신감을 찾고 공격으로 올라섰다.

상대 공세에 기가 눌린 박준혁은 전반 37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전남 수비가 백패스 한 것을 쉽게 처리하면 됐으나, 무리하게 볼 컨트롤하려 했고 공이 앞으로 길게 튀었다. 이미 앞선 상황에서 재미를 본 라스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박준혁이 라스를 막을 방법은 파울밖에 없었다. 결국 전남은 페널티킥을 내주며 3-3으로 전반을 마쳤다.  

실수를 범하며 아쉬운 경기를 펼친 전남 박준혁 [사진=김준철 명예기자]
실수를 범하며 아쉬운 경기를 펼친 전남 박준혁 골키퍼 [사진=김준철 명예기자]

예상치 못한 실점, 특히 골키퍼 실수로 2골이나 허용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전남은 개의치 않고 후반전에 나섰다.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준혁은 “동료들이 전반전 끝나고 재밌는 경기였다고 했다. 안 좋은 소리를 한 선수는 없었다. ‘팀에 공헌해줬으니 오늘은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괜찮다고 다독여줬다. 오히려 제 실수가 팀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하프 타임 비화를 밝힌 동시에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물론 후반전에도 박준혁 머릿속엔 실수했던 장면이 오래 남은 듯했다. 여전히 터치가 불안했고, 클리어링도 라인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전남 수비에서 백패스만 나오면 수원 공격진은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렸다. 또한 수비진과 호흡도 떨어졌다. 패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며 내주지 않아도 될 코너킥을 대거 내줬다.

하지만 박준혁은 베테랑답게 다시 정신을 붙들고 힘을 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개인적인 아쉬움은 차치하고 승격 플레이오프로 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다른 팀에 뺏길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는 “이번 경기를 이기면 3위까지 올라갈 기회였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 같다. 팀이 나가는 방향에 도움 되려고 노력했다”며 이날 승리에 간절함을 드러냈다.

동료 도움과 이겨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다진 박준혁은 안정을 찾았다. 전반과 달리 무리하게 발밑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 것이 주효했다. 그는 자신에게 오는 공을 우선 전방으로 때려놓고 봤다. 후방 빌드업 부담을 더니 클리어링 정확도도 올라갔고, 경기장을 보는 시야도 넓어진 듯했다.

그의 선방쇼가 이어지자 전반 화력을 뿜었던 수원 공격이 점차 잠잠해졌다. 전남은 후반 중반부터 에르난데스와 줄리안을 중심으로 거센 공격을 이어가며 추가골을 노린 끝에 후반 43분 박찬용 극적 결승골이 터지며 4-3 난타전에 방점을 찍었다.

경기 종료 휘슬 소리가 울리자 박준혁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남 수비수들도 그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박준혁은 경기 후 한숨을 쉬며 “이런 경기는 태어나서 처음 해 본다”고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그의 짧은 말에 지옥과 천당을 모두 맛본 듯한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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