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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 조용한 대구 깨운 '고라니' 최영은의 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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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 조용한 대구 깨운 '고라니' 최영은의 투지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0.10.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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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대구FC(이하 대구) ‘고라니’ 최영은(25)이 대단한 투지를 선보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내내 힘찬 고라니 샤우팅으로 팀을 진두지휘한데 이어, 후반 중반 경합 도중 입은 골반 부상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뛰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이날 경기 숨은 공신이 됐다.

대구는 25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0 26라운드 포항스틸러스(이하 포항) 전에서 3-2로 승리했다. 대구는 세징야와 데얀이, 포항은 팔로세비치와 일류첸코가 득점을 주고받으며 시소게임이 펼쳐졌다. 후반 막바지 포항이 대구 골문을 매섭게 몰아쳤지만 최영은 골키퍼를 필두로 한 수비진이 잘 버텨줬고, 후반 41분 데얀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대구가 승점 3을 따냈다.

골반 통증을 참고 풀타임 활약한 대구 최영은 골키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골반 통증을 참고 풀타임 활약한 대구 최영은 골키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던 경기였다. 잔여 경기가 2경기 남은 상황에서 두 팀 모두 이번 결과에 상관없이 순위 변동이 불가했다. 3위 포항(승점 47)은 4위 상주(승점 41)와 6점 차인데 다득점이 19골 차라 사실상 3위가 확정됐다. 5위 대구(승점 35)는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기면 순위 상승이 가능하나, 그 동안 상주 전패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양 팀 감독도 이번 경기에서 전력을 다하기보단 어느 정도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여러 선수를 실험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대구는 앞선 홈 유관중 2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승리가 간절한 대구 팬들은 올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3,030석을 채우며 팀을 열렬히 응원했지만, 육성 응원 금지로 여전히 허전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그렇게 조용한 90분이 흐를 수 있는 상황에서 ‘고라니’ 최영은 골키퍼가 적막을 깼다. 최영은은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고라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1라운드 인천 전에서 마치 고라니 울음을 내는 듯한 모습이 오디오에 선명하게 잡혀 화제가 됐다. 무관중 경기에서 그의 큰 목소리가 유독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의 샤우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구성윤이 영입돼 선발 골키퍼 자리를 넘겨줬다. 구성윤은 빠르게 안정감을 찾으며 단숨에 주전 골키퍼로 올라섰다. 그 결과 최영은은 좀처럼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었고, 이번 경기 전까지 단 8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선수 로테이션으로 오랜만에 기회를 잡은 최영은은 경기를 뛰지 못한 분풀이라도 하듯 킥 오프 시작과 동시에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의 우렁찬 샤우팅이 경기장을 울리자 ‘대팍’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대구 선제골도 그의 ‘목’에서 시작됐다. 대구는 전반 7분 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포항 스로인을 최후방에서 지켜보던 최영은은 공격 라인을 올릴 것을 주문했고, 류재문이 중원에서 공을 끊고 빠르게 공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세징야가 이를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리드를 잡았다.

최영은 골키퍼는 최후방에서 힘찬 샤우팅으로 대구 진영을 조정했다. [사진=김준철 명예기자]
최영은 골키퍼는 최후방에서 힘찬 샤우팅으로 대구 진영을 조정했다. [사진=김준철 명예기자]

최영은은 “라인 업”을 반복하며 김우석-김재우-정태욱 스리백을 조정하는가 하면, “파울 하지마”라고 다급하게 외치며 위험 지역에서 볼 처리 집중을 요구했다. 그의 간절한 외침 덕분인지 대구 수비는 단단한 라인을 구축했다. 김재우가 라인을 치고 나가며 포항 최전방 공격수 일류첸코를 묶었고, 김우석과 정태욱이 유연한 수비 스위칭을 통해 팔로세비치와 팔라시오스를 수비했다.

상대 분석까지 완벽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포항이 가장 강점을 보이는 공격 패턴은 수비 앞쪽에서 끊어 슈팅하는 것이었다. 최영은은 이미 상대 노림수를 간파한 듯 수비수들에게 공간 방어를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지시를 받은 수비수들은 빠르게 공간을 좁혀 포항 공격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전반 31분 위험 지역에서 정확한 클리어링이 되지 않아 팔라시오스에게 공을 넘겨줬고, 따라 들어오던 팔로세비치가 마무리했다. 후반 40분 실점 상황에서도 일류첸코를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대구가 달아나면 쫓아오는 포항 기세란 무서웠다. 후반전 포항이 송민규를 교체 투입하며 총공세에 나서자 경기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던 최영은 골키퍼까지 주춤했다.

심지어 후반 25분에는 부상 위험이 있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최영은이 몸을 던져 공을 잡아냈으나, 착지하는 과정에서 골반으로 떨어지며 큰 충격을 입었다. 심판이 즉시 경기를 중단하고 구급차가 들어올 정도로 위급했다.

그러나 그는 금방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기장에 남아야 한다는 투지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 그는 정확한 캐치를 뽐내며 승리를 위한 강한 집념을 보여줬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최영은은 “경합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 하반신이 경직돼서 겁을 먹었다. 오랜만에 받은 출전 기회라 끝까지 뛰고 싶었다. 동료들과 함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커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영은은 후반 막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의 활약 속에서 대구는 후반 41분 터진 데얀 결승골에 힘입어 치열한 혈투 끝에 포항을 꺾고 웃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 휘슬 소리에 최영은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팀 동료들도 그의 투지를 느낀 듯 동시에 그에게 달려가 칭찬과 위로를 건넸다.

팀 입장에서 2실점을 한 골키퍼가 대단하게 보일 순 없다. 하지만 그가 이날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의지와 헌신은 수훈 선수로 선정됨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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