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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승엽이 떠올린 정의선-故 이건희, 구단운영은 이렇게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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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승엽이 떠올린 정의선-故 이건희, 구단운영은 이렇게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1.02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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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정의선 회장님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전북이 있다.”

전북 현대에서만 12년, 프로축구 20년 이상 커리어를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이동국(41)은 모기업 총수 이름을 언급했다. 5년 전 마지막으로 현장을 찾았던 정의선(51)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자신의 은퇴식을 위해 전주까지 먼 걸음 했다는 것은 그에게도 큰 의미였다.

정 회장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하나원큐 K리그1 최종전에서 전북의 우승이 확정된 뒤 직접 선수들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기쁨을 함께 했다. 이동국 은퇴식 땐 감사패와 함께 현대차 신형 미니밴까지 선물로 전달했다.

전북 현대 이동국(왼쪽)이 1일 2020 하나원큐 K리그1 최종전 이후 열린 은퇴식에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동국은 “정의선 회장님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전북이 있다”며 “차 선물보다 회장님께서 ‘자주 연락하자’는 말씀이 더 큰 선물이었다. 제가 은퇴한다고 회장님께서 직접 경기장에 찾아 주셔서 잊지 못할 화려한 은퇴식이 됐다”고 감격했다.

괜한 말은 아니다. 전북은 이날 K리그 역대 최초 4연패, 최다인 8회 우승을 달성했다. 명실상부 K리그 역대 최강팀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이동국은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에서 뼈아픈 실패 후 성남 일화에서도 제 기량을 찾지 못하던 중 최강희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이동국은 전북의 왕조 건설 역사와 함께 했다.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던 전북에 부족한 건 리그 우승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을 비롯해 공격적으로 스쿼드를 보강한 전북은 2009년 팀 창단 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올 시즌까지 8차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6년엔 다시 한 번 아시아 정상에 서기도 했다.

전북을 K리그 최강팀으로 만든 최강희 전 감독은 공식석상에서 늘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슈퍼리그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유명 선수들을 영입했다. 국내 유명 선수와 외국인 선수들의 유출도 막을 수 없었는데, 전북은 이러한 흐름에 유일한 대항마 같은 존재였다. 국내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를 노렸고 그들 입장에선 우승 가능성이 높고 훌륭한 대우를 해주는 전북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동국(왼쪽)은 정의선 회장으로부터 신형 럭셔리 미니밴을 선물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최강희 감독의 확고한 의지도 있었지만 모기업의 전폭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전북의 모기업 현대자동차는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축구단의 홍보 효과에 대해 절감했다. 나아가 확실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많은 투자를 한 전북은 결국 다시 한 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우승 트로피와 함께 화려한 마무리를 하게 된 이동국으로선 모기업 총수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북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작고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도 마찬가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리그 수원 삼성, 프로배구 대전 삼성화재 등이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건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었다.

한국 야구의 전설 이승엽은 지난달 29일 이건희 회장의 타계 소식에 자신의 SNS에 명복을 빌며 긴 글을 남겼다. “대한민국 경제와 스포츠에 태산 같은 존재셨던 이건희 회장님”이라며 “회장님께서 생전에 보여주셨던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열정과 관심. 스포츠인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라이온즈는 실제로 ‘돈성’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1985년 이후 우승이 없었던 삼성이 2000년대 3차례나 정상에 오르고 2011년부터 4연속 통합우승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을 방문해 격려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 3번째).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1년 훌륭한 성적을 써내려가던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을 찾아 대당 100만 원 상당의 갤럭시탭 50여대를 선수단에 선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밖에도 격려금 지원 등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선수단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기도 하며 스포츠단 활성화에 힘썼다.

비단 야구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수원 삼성도 1998년을 시작으로 4차례나 우승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이 됐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V리그에서 2005년부터 10시즌 동안 8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타 구단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2014년 자생을 목표로 내걸고 삼성 스포츠팀들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시킨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출은 줄었으나 이후 야구단과 축구단, 배구단 등은 어느덧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 돼버렸다. 투자 규모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사례다.

올 시즌 창단 처음으로 프로야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의 성과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지원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꼴찌후보라는 평가를 받고도 과감한 선수 영입을 통해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한 NC는 지난해 무려 125억 원을 투자해 국가대표 포수 양의지를 데려오며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다.

NC는 올 시즌 이동욱 감독을 위시한 데이터야구를 표방했는데, 김택진 대표는 선수단 전체에 태블릿을 지급하며 단순한 선수 보강뿐 아니라 팀의 방향성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달 24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최태원 SK 회장도 스포츠단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지난달 24일엔 수원FC와 격돌한 K리그2 25라운드 홈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제주월드컵경기장까지 찾았다. 제주는 지난해 강등당하며 올 시즌 2부리그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때보다 더 과감히 선수보강에 나섰다. 이날도 승리하며 1년 만에 다시 K리그1 승격을 이뤄낼 수 있었다.

축구단 외 야구단 SK 와이번스는 물론이고 프로농구 서울 SK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최 회장이다. 예년 같았으면 선수단을 찾아 격려 후 금일봉도 전달했을 법 하지만 이날은 경기 후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자칫 아직 시즌이 마무리되지 않은 선수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기업 총수가 경기장을 방문하면 생색내기에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선수단을 일일이 만나고 취재진 카메라에 담기기 위한 과장된 행동을 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날 최 회장의 행동은 달랐다. 스포츠에 관심이 깊은 총수가 구단을 지원할 때 어떤 자세를 보이고 팬들에게도 어떤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때론 선수단의 몸값을 과도하게 높여놨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업 사정이 좋지 않을 땐 실질적으로 크게 득이 될 게 없는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주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투자로 원하는 성적을 냈을 때 생겨나는 무형의 홍보효과는 가치를 쉽게 매기기 힘들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모기업 총수를 떠올린 이동국의 발언 속엔 진실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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