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또 김인태(26)다. 두산 베어스 ‘명품 조연’의 한 방은 새로운 ‘미라클’을 향한 커다란 한 걸음이었다.
김인태는 9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0 신한은행 SOL(쏠)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 9회초 우전안타로 결승 타점을 올리며 팀의 3-2 승리를 안겼다.
이로써 두산은 81.3%(26/32) 확률을 안았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2013년 입단해 194경기 출전, 타율 0.223에 그친, 만년 기대주로 불리던 김인태가 중요한 무대에서 또 사고를 쳤다.
크리스 플렉센의 호투와 8회초 타선의 집중력이 발휘되며 2-0으로 앞서간 두산은 이어진 수비에서 곧바로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김재호의 안타와 오재원의 희생번트로 차려진 1사 2루 밥상. 강속구를 뿌리는 우투수 김재윤을 상대할 타자는 대타 김인태였다. 올 시즌 타율 0.202로 부진이 이어졌지만 김태형 감독은 PO 엔트리에 그를 불러 올렸다. 지난해 기억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난 시즌 선두 SK 와이번스와 9경기 차로 벌어졌던 두산은 막판 엄청난 뒷심으로 무섭게 추격했다. 김인태는 SK와 맞대결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홈런을 쏘아올리는가 하면, NC 다이노스와 최종전에서 극적인 동점 3루타로 팀의 정규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진 키움 히어로즈와 한국시리즈에서도 끌려가던 9회말 큼지막한 동점 희생플라이로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놨다.
결정적인 순간 다시 타석에 나선 김인태. 하지만 KT는 왼손 투수 조현우로 바꿨다. 좌투수에 유독 약했기에 불안감이 커졌다. 코칭스태프로부터 조언을 듣고 타석에 섰다. 1구 볼을 흘려보낸 김인태는 2구 존을 통과하는 공이 들어오자 과감히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우익수 앞으로 흘러갔다.
두산이 혈투에 마침표를 찍는 장면이었다. 김인태는 “대타 위치에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중요한 순간 해내 너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5툴 플레이어’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김인태는 쟁쟁한 야수들이 즐비한 두산에서 그동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팀은 매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정작 김인태는 멀찍이서 바라봐야만 했다.
“올해도 TV로만 지켜볼 줄 알았다”던 김인태는 지난해 마침내 한국시리즈에 나섰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한 타석 들어갔던 게 도움이 됐다. 지난해엔 많이 떨렸는데 이번엔 떨리긴 했지만 작년만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도 타석에 서기 전 김인태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맞히는 게 중요하니까 존을 넓게 보고 무조건 콘택트한다는 기분으로 치라고 했다”며 “카운트 몰리면 경기에 적게 나갔던 선수들은 대응하기 쉽지 않으니 빠른 카운트에서 공략하라고 말해줬다”고.
2구를 과감히 노려 결승타로 만들어낸 김인태는 “상대 내야가 전진 수비를 하고 있어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속구 타이밍에 맞히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김인태의 활약에 힘입어 두산은 또다시 미라클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KBO리그 구조상 포스트시즌에서 하위 순위 팀들이 위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다. 1989년 이후 단일리그 체제에서 준PO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건 단 4팀 뿐. 놀라운 건 두산의 ‘업셋 우승’ 경험이 두 차례나 된다는 것이다. 괜히 ‘미라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아니다.
느낌은 좋다. 준PO에서 LG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둬 사흘 간 휴식기간이 있었다. 선발 플렉센은 역대 포스트시즌 최초로 2경기 연속 두자릿수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냈고 시즌 내내 침묵하던 오재원이 살아나는 등 베테랑들의 활약도 돋보이고 있다.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8부 능선을 넘은 두산이다. 선취득점 후 동점을 허용하며 쉽지 않아보였던 경기에서도 곧바로 점수를 내며 승리를 거뒀다. 조연에도 만족했던 백업 선수가 주인공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건 2020년 또 하나의 미라클을 노리는 두산이 진짜 무서운 이유 중 하나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