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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았던 '악마의 2루수' 정근우, 17년 커리어 키워드 '열정+배려' [SQ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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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았던 '악마의 2루수' 정근우, 17년 커리어 키워드 '열정+배려' [SQ인물]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1.12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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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좀 더 열정을 갖고 경기에 임하라.”

16시즌 간 뛰며 리그 톱, 국가대표 2루수를 거친 베테랑은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공 하나를 잡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굴렀고 한 번의 출루와 득점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뛴 그이기에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정근우는 11일 소속팀 LG 트윈스 안방 잠실야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 소회를 밝혔다.

2005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지명된 정근우는 최고의 자리부터 묵묵히 팀을 보조해야 했던 백업 내야수 역할까지 두루 경험한 뒤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정근우가 11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근우는 김성근 전 SK 감독과 함께 최고의 2루수로 거듭났다. 지옥의 펑고를 겪으며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됐지만 이는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정근우는 “‘악마의 2루수’라는 애칭이 너무 좋다. 아시다시피 김성근 전 감독님한테 펑고를 너무 많이 받았다”며 “그 애칭처럼 되고자 많이 노력했고 위로는 몰라도 양옆으로는 타구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은사로 故(고) 조성옥 전 부산고 감독과 함께 김성근 감독을 뽑은 정근우는 연습벌레로 유명했다. 김 감독과 함께 새벽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김 전 감독의 훈련이 지나치게 고강도라는 말도 하지만 정근우를 이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만큼 간절했다. “고교 때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 증세)가 왔었고 대학과 프로를 포함해 총 3차례 입스가 왔다”는 정근우는 “특히 팔꿈치를 3번 수술했는데 고교 때 의사가 ‘이 팔로는 야구 못한다’고 하길래 ‘왼팔로라도 야구를 하겠다’란 각오로 훈련했다. 그때 포기했더라면 세 번의 입스를 이겨낸 지금의 정근우는 없다”고 밝혔다.

이후 정근우는 리그 최고 2루수로 도약했다. 2007년과 2008년, 2010년 세 차례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2루수 골든글러브도 3회 수상했다. 2009년엔 타율 0.350 53도루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국가대표 2루수하면 정근우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 등 한국 야구 역사와 함께 했다.

정근우는 한국 야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골든글러브 3회 수상했고 대표팀의 영광의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2013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는 한화와 4년 70억 원에 대형 계약을 맺었고 뛰어난 활약으로 2017시즌 뒤엔 2+1 35억 원, 2번째 FA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다. 2019년 88경기에만 나서며 타율 0.278로 하향세를 그렸고 포지션 경쟁에서도 밀리며 외야수로 전직해야 했다. 시즌 뒤엔 결국 40인 보호선수로 묶이지 못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었다. 2루수로 복귀하며 당찬 꿈을 꿨지만 타격과 수비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해 결국 은퇴를 택하게 됐다.

정근우는 “올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 다음부터 (은퇴를) 조금씩 생각했다”며 “그간 2루수로 했던 플레이를 (팬들이) 기대하고 나 역시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정근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프로에 왔을 때 선배들이 내야수 한 자리를 10년 이상 하기 쉽지 않다고들 했다. 하지만 ‘난 할 거야’란 각오로 2루를 안 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2018, 2019년 포지션을 옮겨 다니면서도 2루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른 포지션을 연구도 했다. 지금은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라고 만족해했다.

절친한 사이인 김태균(전 한화)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정근우는 내내 해맑은 미소를 유지했다. 다만 아쉽기는 매한가지. 특히 은퇴식을 치른 박용택과 달리 커리어에 비해 초라하게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정근우다.

커리어에 비해 지나치게 초라한 마지막이었음에도 정근우는 "사람이라면 아쉽죠. 하지만 이 또한 영광"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사람이라면 아쉽죠. 하지만 이 또한 영광”이라며 “솔직히 시즌 중간에 은퇴를 발표하고 싶었는데 한발 물러서서 보니 용택이 형이 은퇴 투어를 잘하고 있어서 형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에도 은퇴 발표를 생각했는데 그땐 팀 순위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근우의 야구 인생을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고 배려를 중시했다.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했다. “한화 때도 그렇고 LG에도 그렇고 좋은 후배들이 많았다. 좀 더 열정을 갖고 경기에 임하라고 말해줬다”며 “LG 후배들에겐 열정도 좋지만 좀 더 후배를 사랑하고 선배를 존경할 수 있는 문화가 팀에 자리잡히길 바란다고 했다”고. 그리고는 마지막까지 선배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했다.

통산 1747경기에서 타율 0.302, 121홈런, 722타점, 1072득점, 371도루 등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유니폼을 벗는 정근우다.

미래에 대한 질문에 “막 관둔 터라 이제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으로서 뒷바라지해 준 가족에게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결정하겠다”는 정근우는 “은퇴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내게 고생했다며 큰절을 했고 아내는 매 경기가 감동이었다고 말해줬다”고 뿌듯해 했다.

누구보다 화려했고 열심히 뛰었다. 너무도 초라한 마지막이었음에도 그마저도 만족할 줄 알았고 끝까지 동료를 배려했다. 마지막까지 몸소 보여준 ‘정근우 정신’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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