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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맛본 깊은 멜로, 전도연 김남길의 '무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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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맛본 깊은 멜로, 전도연 김남길의 '무뢰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14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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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형사와 용의자의 애인 사이 비정한 사랑 그려내

[스포츠Q 용원중기자] ‘무뢰한’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오승욱 감독은 욕망과 생존을 위해 선악에 구애받지 않은 채 줄달음질치는 이들의 행로를 영화 ‘무뢰한’(5월27일 개봉)에 새겨 넣는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살인 후 잠적한 조폭 박준길(박성웅)을 좇는다. 준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을 도청하던 그는 아예 혜경이 마담으로 일하는 단란주점 마카오의 영업상무로 잠입한다. 재곤은 타깃으로 접근했던 혜경으로 인해 흔들린다. 자신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뒤 선금을 댕겨 도주한 준길의 연락을 기다리던 혜경 역시 늘 옆을 지켜주는 재곤을 향해 꽁꽁 걸어 잠갔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 팔짱 낀 혜겅(전도연)과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은 재곤(김남길)이 도로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 한 장의 스틸컷 안에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형사와 용의자의 애인이라는 설정은 뻔하고 올드하다. 화려한 영상, 기교 넘치는 편집을 갖춘 영화도 아니다. 대사는 극도로 절제됐으며 장면과 감정선의 연결이 툭툭 단절되기에 불친절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매끄러움이 미덕인 현실에서 이렇듯 거칠고 투박한 영화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무얼까. 동정 없는 세상에서 이뤄지는 비정한 사랑이 가슴을 후벼 파서다.

누아르와 스릴러 액션이 지배하던 한국영화계에 ‘파이란’(2001)의 잔상을 복원하듯 남녀의 감정을 지독하리만치 파고 들어간 멜로영화의 출현은 반갑다. ‘순애보’ ‘비련’ ‘치정’의 틀을 박차고 나온 점은 신선하다. 이런 미덕에 대중적 호흡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전도연과 김남길이다. 이들로 인해 ‘무뢰한’은 단단하면서 냉혹한 ‘하드보일드’ 사랑을 스크린에 너끈히 구현한다.

텐프로 출신 혜경은 증권으로 거액의 빚을 진 뒤 새끼마담, 조폭 이사장 세컨드를 전전하다 눈이 맞은 준길로 인해 변두리 단란주점으로까지 몰린 인물이다. 감성에 있어서 독보적인 여배우 전도연은 퇴락한 술집여자의 노회함과 강단, 사랑에 목숨 거는 순수함을 그답게 풀어낸다. 재곤의 상반신에 난 칼자국을 어루만지며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더러운 기억을 얹었네”란 속삭임에 실어내는 삶의 무거움, ‘너는 내 운명’ 은하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한 느낌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김남길은 ‘재발견’ 찬사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맨틱 가이와 코믹한 산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목표에 중독된 형사의 피로함,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날선 냉혹함, 이혼 후 찾아든 순정에 당혹스러워 하는 연약함을 고요한 무표정과 날카로운 눈빛 속에 담아낸다. 괜히 어깨와 눈에 힘주지 않으면서도 자아낸 매력적 분위기는 전성기 시절 누아르 영화 속 프랑스 미남배우 알랑 들롱을 연상케 한다.

조연인 박성웅 곽도원의 연기는 넘치지 않게 이뤄지며, 마지막 장면의 반전과 클래시컬한 음악 역시 과하지 않게 배치돼 감상의 깊은 맛을 더해준다. 남자들의 영화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 때’를 만든 사나이픽처스가 제작, ‘킬리만자로’의 오승욱 감독이 연출했다. 러닝타임 1시간58분.

goolis@sport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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