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1-25 19:02 (월)
이대호만 문제? 선수협, 최동원 정신은 어디로 [기자의 눈]
상태바
이대호만 문제? 선수협, 최동원 정신은 어디로 [기자의 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2.03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30여년 전 당대 최고 투수 故(고) 최동원은 동료 선수들의 권익보장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창설에 나선다. 그러나 돌아온 건 트레이드였다. 많은 걸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최동원이 이같은 선택을 한 건 오로지 정의감 때문이었다.

선수협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잘 나가는 선수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후배들이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도록 전면에 나섰던 것이다.

이대호 선수협 회장이 판공비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사진=연합뉴스]

 

언제부턴가 선수협을 향한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함이 아닌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단체처럼 보였던 것이다.

지난 1일 논란이 된 이대호(38·롯데 자이언츠) 판공비 관련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수협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대호가 자신의 판공비를 스스로 인상하고 개인 계좌로 받아 불투명하게 활용했다는 것이었다.

2일 기자회견을 연 이대호는 관련 사안에 대해 해명했다. 오해가 있었다. 판공비를 인상은 새 회장을 선임하기 전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판공비를 개인 계좌로 받았던 건 관행상 판공비보다는 보수 개념이 강했던 터였다. 

선수협 회장을 맡고 싶어하는 이가 없어 인상을 결정했던 것과 세금을 제한 뒤 받았던 걸 고려하면 보수 개념이 강했다는 것 또한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다만 문제는 고액 연봉 선수가 선수협을 이끈다는 이유만으로 2400만 원에서 6000만 원까지 인상된 돈을 받아야 했는지, 왜 보수 개념이 됐는지 등이다.

2012년 박재홍 전 회장은 2군 선수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판공비 전액을 기부했다. 더불어 선수협을 둘러싼 문제들이 불거지자 회계처리 투명성 확보를 위해 판공비를 모두 법인카드로 사용하도록 바꿨다. 

박재홍 전 선수협 회장은 판공비를 모두 법인카드로 사용토록 규정을 바꿔놨다. 그러나 어느샌가 다시 과거로 회귀해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기부까지는 선택의 영역이라고 치더라도 왜 법인카드가 사라지고 다시 월급 개념으로 회귀했는지, 언제 그렇게 됐는지는 이대호도, 선수협 관계자도 알지 못했다. 그저 ‘관행’이라고만 했다.

선수협은 어느 순간 ‘귀족노조’로 불리게 됐다. 최저연봉은 2700만 원에서 5년 만에 고작 300만 원 올랐다. 그러나 선수협 회비는 십수억 대를 받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연봉의 1%씩을 낸다. 그리고 이대호는 이렇게 모은 회비 가운데 6000만 원을 받았다.

이사회에서 통과됐고 보수 개념으로 지급됐던 것이기에 크게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 다만 그에 걸맞은 활동을 했는가엔 의문이 따른다. 

지난해 선수협은 KBO와 오랜 줄다리기를 벌였다. 선수협이 목소리를 높였던 부분은 자유계약선수(FA) 보상제도, 고액연봉 감액조항 완화 등이었다. KBO가 제시한 최저연봉 인상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시 시계를 돌려 1988년. 최동원은 당시 KBO 최고의 스타였다. 1984년엔 홀로 4승을 거두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고 평균 200이닝을 넘는 투구로 롯데 마운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다. 

2019년 초 회장 당선과 함께 사직야구장 앞 최동원 동상을 찾은 이대호.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최동원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엔 지금에 비해 선수 복지가 훨씬 열악했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 김대현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뒤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자 최동원이 총대를 멨다.

그럼에도 돌아온 건 생각지도 못했던 트레이드였다. 이후 10년이 더 지나 선수협은 진통 끝에 출범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미운털이 박힌 일부 선수들은 최동원과 마찬가지로 트레이드의 희생양이 됐다.

이후 선수협은 최저연봉 인상, 복지기금 마련 등 당초 목적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가졌다. 2007년 회장을 맡은 손민한 재임 시절 각종 비리가 터져나오며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2012년 박재홍 당선 후엔 다시 한 번 단체를 재정비하며 선수협 존재 목적을 되새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제자리다.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아 2017년부터 2년간 회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독이 든 독배’라는 생각이었다. 이대호도 “좋은 자리는 아니다. 잘해도 좋아해주는 사람 없다”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대호는 내년 3월로 임기를 마친다.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새 회장을 뽑을 계획이다. 그러나 누구도 맡고 싶어하지 않고 제 역할도 하지 못하는 선수협이라면 꼭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선수협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대호는 2019년 당선 직후 사직야구장 앞 최동원 동상을 찾았다. 향후 회장에 당선될 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세상을 떠난 선배의 동상을 찾아 고개를 숙이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