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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이정현 이관희, 프로농구가 원했던 그림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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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이정현 이관희, 프로농구가 원했던 그림 [SQ초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2.07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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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이정현(33·전주 KCC)과 이관희(32·서울 삼성)가 또 충돌했다. 이제 더 이상 놀라울 건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큰 화젯거리가 없는 프로농구판에서 팬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메인 이벤트와 같은 매치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5일 서울 삼성 안방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양 팀이 맞붙었다. 3쿼터 중반 돌파를 시도하던 이정현과 이를 막아서려던 이관희가 충돌했다. 이정현이 이관희의 팔을 감고 들어간 뒤 강하게 내친 상황이었다. 심판은 이정현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이관희에겐 일반 파울을 선언했다.

전주 KCC 이정현(왼쪽부터)과 서울 삼성 이관희가 지난 5일 맞대결을 벌였다. [사진=KBL 제공]

 

■ 전쟁의 서막, 대체 왜?

연세대 선후배이자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던 이정현과 이관희. 누구보다도 친밀할 수 있는 둘의 사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후문은 많았지만 둘 중 누구도, 주변인들도 그 이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연세대 시절부터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정확한 배경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었다.

상무 시절 연습경기에서도 충돌했던 둘의 사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7년 4월 삼성과 안양 KGC인삼공사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1쿼터부터 이관희는 이정현을 강하게 압박했는데, 이정현은 짜증이 난 듯 양팔을 이용해 이관희의 목 부분을 거세게 밀쳤다.

이 과정에서 뒤로 쓰러진 이관희는 벌떡 일어나 이정현을 어깨로 밀어 넘어뜨렸고 코트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정현은 U파울(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파울)을, 이관희에겐 디스퀄리파잉 파울(즉각 퇴장)을 선언됐다.

이후에도 둘은 수없이 충돌했다. 올 시즌 맞대결에서도 이관희는 부진한 이정현 앞에서 박수를 치며 조롱하기도 했다.

3쿼터 중반 이정현(왼쪽)과 이관희(오른쪽에서 2번째)가 충돌한 뒤 양 팀 선수들이 둘을 말리고 나선 장면. [사진=KBL 제공]

 

■ 당하기만 했던 이관희, 이번엔 승자

이날도 가장 관심을 끈 건 둘의 매치업이었다. 그러나 이상민 삼성 감독이 피해갔다. 이관희의 매치업 상대를 정창영으로 정하며 충돌을 회피하고자 했다. 농구 팬들에겐 아쉬울 따름이었으나 이유가 있었다. 둘이 맞붙으면 보통 더 흥분하는 쪽은 이관희였고 이정현이 더 재미를 보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 

1쿼터엔 이관희가 7점을 넣으며 시작했는데, 이정현이 2쿼터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며 12점으로 분발했다.

사건은 3쿼터에 터졌다. 이번엔 이정현이 싸움을 걸었다. 이관희는 정상적인 수비를 펼쳤는데 돌파를 시도하려던 이정현이 파울을 유도하려는 듯 이관희의 팔을 걸고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이관희라고 결코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삿대질을 하며 강하게 어필했고 둘은 험한 말을 주고 받으며 흥분했다.

이후 상황이 더 흥미로웠다. 이정현은 더욱 집중력을 높여 경기를 이끌어갔다. 감각적 속임동작 후 4점 플레이를 완성했고 블록슛 1위 아이제아 힉스를 앞에 두고 레이업 돌파를 성공시켰다. 라건아와 2대2 플레이 등까지 KCC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이정현이 활약하는 동안 이관희는 벤치만 지켰다. 최근 클러치 상황에서 잦은 실수를 저지른 탓에 4쿼터 중반까지 출전하지 못한 것. 이상민 감독은 4쿼터 중반 드디어 이관희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코트에 나선 이관희는 상대 실책을 유발하는 수비와 역전 3점슛으로 흐름을 뒤집었다. 과감한 돌파로 자유투 2득점에 성공했고 스틸에 이어 라건아를 앞에 두고 3점슛을 다시 꽂아넣었다. 83-79 삼성 승리. 이정현은 마지막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며 팀 패배를 막지 못했다.

올 시즌 3점슛 성공률이 30% 초반에 그치던 이관희였기에 더욱 믿기 힘든 활약이었다. 이관희가 얼마나 둘의 대결에 집중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날은 이관희가 승자가 됐다. 4쿼터 막판 결정적인 3점슛과 돌파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사진=KBL 제공]

 

■ 프로농구 이끄는 라이벌의 힘

프로농구 라이벌 매치 중 이정현의 KCC와 이관희의 삼성의 대결은 가장 큰 화제를 모은다.

S-더비(삼성-SK)가 있기는 하지만 문경은(SK)-이상민(삼성) 두 수장은 연세대 시절부터 돈독한 사이였고 두 팀은 라이벌이라는 이름과 달리 함께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친밀하다. 라이벌관계가 주는 흥미는 있으나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

프로농구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난 시즌 이슈몰이를 하며 관중 증가 효과를 거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시즌을 조기마감하며 열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 속 개막한 이번 시즌도 사그라든 관심을 다시 살려가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둘의 매치업은 프로농구판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눈살을 찌푸리는 과격한 행동 혹은 코트 밖에서 물의를 빚는 행동이 아니라면 농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슈는 늘 환영할 일이다. 늘 으르렁 거리는 둘의 개인사는 다소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이정현과 이관희의 라이벌 관계가 프로농구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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