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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레벨' 피아비 남다른 책임감, 다문화 가정 편견에 맞서는 법 [LPBA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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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레벨' 피아비 남다른 책임감, 다문화 가정 편견에 맞서는 법 [LPBA 챔피언십]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2.10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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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스스로 당당하고 무섭지 않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당구 영웅임에도 여전히 한국에선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스롱 피아비(31)는 이런 편견에 누구보다 당당히 맞서고 있다. 나아가 자신을 통해 이주 여성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프로당구에 진출한 스롱 피아비는 9일 서울시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올 시즌 PBA 투어 마지막 대회, 2020~2021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에서 PQ 라운드, 64강을 가뿐히 통과했다.

스롱 피아비가 9일 프로 데뷔전인 2020~2021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에서 PQ 라운드, 64강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며 32강에 진출했다. [사진=PBA 투어 제공]

 

만 20세였던 2010년 한국인 남편 김만식(60) 씨와 결혼한 피아비는 2011년 우연히 남편을 따라 들른 당구장에서 본격적인 당구인의 길로 들어섰다.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였다. 2014년부터 국내 전국 동호인 대회에서 우승하기 시작했고 2017년엔 대한당구연맹(KBF) 선수로 등록해 전국대회에서 수차례 정상에 올랐다. 이후 2018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3위, 이듬해 아시아3쿠션여자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KBF 1위, 세계캐롬연맹(UMB) 2위.

그렇기에 피아비의 프로 진출 선언은 당구계엔 놀라운 소식이었다. 캄보디아에서 국민영웅 대접을 받는데, 국가대표격으로 나설 수 있는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 현재 PBA 투어에 등록된 선수는 KBF와 UMB가 주최하는 대회에 나설 수 없다.

피아비는 “많은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LPBA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는데, LPBA엔 나란히 3승을 차지한 이미래(TS·JDX 히어로즈)와 임정숙(SK렌터카 위너스), 앞서 먼저 프로에 뛰어든 라이벌 김민아(NH농협카드 그린포스) 등이 있다. 그만큼 자신감이 컸다고 설명할 수 있다. KBF와 UMB 대회에 비해 큰 상금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였다. LPBA 투어 우승 상금은 2000만 원으로 선수들에겐 큰 동기부여가 된다. 이번 대회를 마치고 열릴 왕중왕전 성격의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무려 1억 원의 상금을 챙길 수 있다.

정상의 자리에서 LPBA에 뛰어든 피아비의 이름값을 고려하면 우승은 당연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큰 기대를 안기며 프로에 진출한 김민아는 연이은 조기 탈락을 경험했다. 지난 대회 PBA 투어로 넘어온 조재호(NH농협카드)도 첫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번에도 임정숙을 비롯해 우승자 출신 강지은과 김갑선, 지난 대회 준우승자 박수아, 우승후보 김보미 등이 64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9년 출범한 PBA-LPBA 투어는 서바이벌 제도, 뱅크샷 2점제, 호흡이 짧은 세트제 등을 도입하며 새롭게 탄생했다. 이에 3쿠션 황제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웰뱅피닉스)을 비롯해 강동궁(SK렌터카 위너스), 이미래 등도 혹독한 적응기를 거쳐야만 했다.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까지 프로당구 무대에 뛰어든 피아비. [사진=PBA 투어 제공]

 

그러나 피아비는 역시 달랐다.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나서 64강에 앞서 PQ 라운드부터 거쳐야 했는데 105점으로 이금란(57점), 박서정(25점), 위카르(13점)을 제치고 손쉽게 64강에 올랐다. 64강에선 김민아와 이유주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대결했는데, 74점으로 2위 김민아(62점)와 함께 손쉽게 32강에 진출했다.

낯선 룰은 물론이고 테이블과 공에 대한 적응 등으로 인해 피아비 답지 않은 공타율을 보이기도 했으나 정교한 샷과 그동안 마음껏 뽐내지 못했던 뛰어난 뱅크샷 등으로 남다른 ‘클래스’를 보여줬다. PQ 라운드와 64강에서 각각 뱅크샷 비율 26.1%, 40%를 기록하며 에버리지 1.208, 0.955, 최강자는 LPBA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무사히 데뷔전을 치른 피아비는 “경기장이 너무 멋있어서 놀랐다. 분위기도 좋고 선수들이 자신감도 있는게 프로가 가지는 장점인 거 같다”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프로선수 진출은 자랑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 경기 한 경기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피아비는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모은 상금 등으로 캄보디아 당구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학교를 짓고 싶은데 지금 준비하고 있다”며 “2023 캄보디아 동아시아 대회가 있는데 (이를 대비해) 지금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문화 가정을 향한 편견에 싸우고 있다. 피아비는 다문화가족과 관련한 행사와 정책에 참여해왔고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지난해엔 가족정책 유공 장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월드챔피언십 출전을 노리는 피아비는 32강 문턱에서 현 최강자 이미래와 함께 플레이한다. [사진=PBA 투어 제공]

 

가족들이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설 연휴를 맞아 한국에 있는 수많은 다문화 가정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어눌한 말투와 달리 메시지엔 힘이 담겨 있었다. “다문화 시집온 사람들 조금 부끄러워 하는게 많다. 나도 부끄럽고 무섭다”면서도 “항상 내가 당당하고 무섭지 않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용기를 전했다.

이젠 32강이다. 이날 오후 7시 디펜딩 챔피언 이미래와 같은 조에서 만나 대결을 펼친다. 4명이 벌이는 서바이벌 무대이기에 모두 탈락할 수도, 함께 16강에 진출할 수도 있다. 탈락과 통과 여부만큼 프로와 아마 최강자들이 벌일 간접 맞대결에 더욱 시선이 집중된다.

이번 대회성적까지 합산된 최종 랭킹을 통해 다음 시즌의 시드가 결정되고 시즌 왕중왕전격인 월드챔피언십 진출자(남자 32명, 여자 16명)도 결정되는데, 피아비에게도 기회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시즌 상금랭킹 16위 안에 진입한다면 월드챔피언십에도 출전이 가능한 것.

오는 2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되는 월드챔피언십 출전을 위해서라도 피아비는 최소 8강 이상 진출해야 파이널 무대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다.

9일 PQ 라운드를 시작으로 개막한 2020~2021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은 오는 14일까지 진행된다. SBS스포츠, KBSN스포츠, 빌리어즈TV를통해 경기가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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