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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텍사스 양현종, 하늘은 준비된 자를 돕는다 [2021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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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텍사스 양현종, 하늘은 준비된 자를 돕는다 [2021 MLB]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4.28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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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찰나의 기회. 그러나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은 준비돼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단번에 증명하며 긍정적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했다.

양현종은 2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 2021 미국 메이저리그(MLB) 홈경기에서 팀이 4-7로 뒤진 3회초 2사 2,3루 등판, 4⅓이닝 5피안타 1탈삼진 2실점 호투했다.

그동안 빅리그 콜업을 손꼽아 기다리던 양현종은 부름을 받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등판 상황을 고려하면 실점보다는 4⅓이닝을 소화했다는 게 훨씬 주목을 받았다.

텍사스 레인저스 양현종이 27일 MLB 데뷔전에서 4⅓이닝 5피안타 1탈삼진 2실점 호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시범경기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양현종은 개막 26인 로스터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좌투수임에도 지난해 KBO리그에서 11승 10패 평균자책점(ERA) 4.70으로 부진한 탓이 컸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외롭게 첫 시즌을 열었다.

언제라도 기회는 찾아올 것으로 보였다. 양현종은 로스터 외 원정일정에 1군과 동행하는 ‘택시 스쿼드’ 5명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 시즌 시작 후 거의 한 달 만에 기회를 잡았다.

기다리고 인내했다. 그리고 결국 기회가 찾아왔다. 늘 준비하며 기다린 양현종에겐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2007년 데뷔 후 꾸준히 성장하던 양현종은 2009년 12승 5패 평균자책점(3.15)를 기록, KIA 타이거즈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윤석민(은퇴) 등 쟁쟁한 선발 후보군이 많았음에도 이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도 선발돼 금메달을 수확,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다.

윤석민이 MLB 진출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2014년 이후 양현종은 타이거스의 독보적 투수로 발돋움했다. 2017년엔 라이벌 김광현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20승과 함께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시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를 독식했다. 아프지 않았고 그만큼 늘 준비돼 있었기에 맛 볼 수 있는 달콤한 열매였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 전 처음으로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양현종은 오른손 선발 조던 라일스가 불과 2⅔이닝 만에 7실점하며 무너지자 3회 2사 2·3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36번 배번을 받은 양현종은 롱릴리프로서 가능성을 나타냈다. [사진=AP/연합뉴스]

 

첫 타자는 앤서니 렌던. 초구로 택한 속구가 다소 높아 볼이 됐지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통해 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더니 몸쪽 빠른공으로 내야 뜬공을 유도, 불을 껐다.

4회 다시 등판한 양현종은 자레스 월시와 저스틴 업튼을 잡아냈고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를 맞아 페이퍼를 꺼내보며 공략법을 되새겼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양현종은 슬라이더로 방망이를 이끌어내 중견수 뜬공으로 다시 한 번 이닝을 마쳤다.

5회를 7구로 마친 양현종은 6회 에인절스 선발이자 2번 타자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와 맞섰다. 기대와 달리 결과는 허무했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에 오타니는 비어 있는 3루 방면으로 기습번트를 댔고 내야 안타로 이어졌다. 마이크 트라웃도 수비 시프트로 인해 2루수 방면 타구에 살아나갔다. 이후 월시에게 2루타를 맞으며 오타니가 득점했는데 이후 업튼에게 삼진을 잡아내는 등 흔들리지 않으며 위기를 잠재웠다.

44구를 던진 양현종은 7회에도 마운드에 섰다. 호세 이글레시아스가 잘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걷어내며 좌월 솔로포를 터뜨렸지만 후속 타자들을 잘 막아내며 실점을 더 늘리지 않았다.

양현종은 1989년 스티브 윌슨(5⅓이닝)에 이어 데뷔전에서 두 번째로 긴 이닝을 던진 중간 계투로 텍사스 구단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투수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투수가 필요했다”는 텍사스 입장에서 양현종의 투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밝게 웃으며 기자회견에 나선 양현종은 "앞으로 등판할 때는 더 많은 구종을 던져서 타자들이 힘들어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사진=영상 기자회견 캡처]

 

크리스 우드워드 레인저스 감독은 “양현종은 정말 효과적으로 투구하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며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갑작스레 기회를 잡았음에도 양현종은 의연했다. “택시 스쿼드에 있으면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 봤다. 그래서 크게 긴장한 것 같지 않다”며 “팬들 앞에서 던진 것이 오랜만이라 재밌게 했다. 상대가 누구든 제 볼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말했다.

간절함이 컸다. “한국에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했는데 처음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했다. 그래야 구단과 팬들이 좋아해 주고 믿어주신다”며 “오늘은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안타를 많이 맞긴 했지만 첫 등판치고는 너무 재미있게 잘 던지고 내려온 것 같다”고 만족감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는 말 그대로 꿈의 무대”라며 “한 번 마운드에 올라간 게 아니라 앞으로 자주 던져서 팬, 구단, 선수들에게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 양현종.

자신감은 넘친다. “캠프 때부터 투수 코치님들이 커브가 좋다고 많이 칭찬하셔서 커브를 많이 연습했는데 오늘은 커브를 한 개도 안 던졌다”며 “앞으로 등판할 때는 더 많은 구종을 던져서 타자들이 힘들어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롱릴리프로서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선발 승격 또한 기대해 볼만 하다. 텍사스 선발진은 최근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카일 깁슨을 제외하면 데인 더닝(2⅔이닝), 26일 아리하라(2이닝), 27일 라일스(2⅔이닝)는 모두 조기 강판됐다. 데뷔전 임팩트를 이어가며 스탠바이 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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