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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 김범용이 풍긴 조원희의 향기 [K리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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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 김범용이 풍긴 조원희의 향기 [K리그1]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1.05.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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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조원희(38·은퇴) 재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원FC 미드필더 김범용(30) 플레이가 조원희와 딱 닮아 있었다.

수원은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 하나원큐 K리그1(프로축구 1부) 13라운드 홈경기 대구FC전에서 2-4로 패했다. 양동현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박지수가 자책골을 넣고 에드가, 츠바사, 이근호에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후반 초반 라스 득점으로 점수 차를 줄인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2018 시즌 수원FC에 합류한 김범용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2018시즌 수원FC에 합류한 김범용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번 라운드를 앞둔 수원에 긍정적 요소가 많았다. 시즌 초반 대량 실점으로 후방 라인에 고민이 깊었는데, 앞선 4경기에선 경기당 평균 실점을 1골로 묶으며 뒷문을 안정화했다. 김건웅-박주호 투 볼란치가 1차 저지선을 잘 세워준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상대 플레이 메이커 세징야가 부상 회복으로 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들의 강점인 중원 라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김도균 수원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김범용 카드를 던졌다. 지난 라운드에서 부상으로 교체 아웃된 김건웅이 100% 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범용은 올 시즌 단 3경기 출전에 그치며 주전 경쟁에서 밀린 상태였다. 마지막 출전이 지난 9라운드 울산 현대전이었고, 그마저도 교체로 15분간 피치를 밟는데 그쳤다.

경기감각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우려가 짙었지만 그는 기대에 부응하며 제 몫을 다했다. 경기 초반부터 활동량을 늘려 경기장 곳곳을 누볐다. 김건웅과는 다른 스타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건웅은 후방에서 공을 잡고 빌드업을 이어가거나 전진 패스에 강점이 있는 반면 김범용은 박주호와 짝을 맞춰 상대 전진을 방해한 뒤, 공을 지켜 좌·우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집중했다.

이용래-츠바사-이진용으로 구성된 대구 중원의 압박을 벗겨내고 한 박자 빠른 패스로 측면 넓은 공간으로 공을 전달했다. 김범용 덕에 어렵지 않게 점유율을 높인 수원은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옆머리를 바짝 쳐올린 채 중원을 누비는 모습에 한 선수가 겹쳐 나타났다. 바로 전(前) 수원 플레잉코치 조원희였다. 지난 시즌 중반 플레잉코치 신분으로 수원에 합류한 조원희는 선수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대중에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해 2경기 출전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수비 지역에서 탄탄한 피지컬로 상대 미드필드진을 압박하고, 많이 뛰는 축구로 공격수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투지까지 더했다. 볼 경합 과정에서 물러서지 않고 상대를 위협했다.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는 동료들 귀감이 되기 충분했다. 괜히 ‘조투소(조원희+가투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2020 시즌 후반기 수원FC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던 조원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2020 시즌 후반기 수원FC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던 조원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날 김범용이 보여준 플레이가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원에서 상대 미드필드진을 꽁꽁 묶었다. 대구 공격 시발점인 츠바사가 전반전 볼 터치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활약을 증명한다. 적극성 역시 빛났다. 오프더볼 상황에서 상대 마킹을 떼어낸 뒤, 동료들에게 공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종종 포착됐다. 공이 있든 없든 기민하게 움직이며 공격에 적극 가담했다.

그의 부지런함이 선결됐기에 팀 선제골이 일찍 나올 수 있었다. 활동량을 늘려 3선 라인을 잡아주니 무릴로와 이영준이 부담 없이 전방으로 올라갔다. 수원은 득점 기회를 대거 잡아 상대 골문을 두드렸고, 전반 21분 코너킥 상황에서 양동현이 골을 만들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까지 조원희와 닮았다. 전반 중반 에드가와 공중볼을 다툰 뒤 허리로 착지하는 아찔한 장면이 있었다. 자신보다 10㎝나 큰 공격수와 경합을 피할 만했으나 과감히 머리를 들이밀었다. 충격에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김범용은 회복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제 위치를 지키며 활약을 이어갔다.

심지어 페널티 박스 안 침투 움직임마저 좋았다. 조원희조차 자주 보여주지 못한 플레이다. 김재우와 황순민 사이 파이널 서드 공간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수원 수비진의 전진 패스가 정확하지 않아 무위로 돌아갔지만 침투 자체는 민첩했다. 정충근이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고, 투톱 라스와 양동현에게 상대 수비가 붙다보니 자유로운 침투가 가능했다.

김범용은 후반 25분 한승규와 교체돼 피치를 빠져나갔다. 수원은 잔여 시간 강공에 나섰다. 그러나 김범용처럼 상대 중앙 라인을 눌러주는 선수가 없었고, 반복해서 역습을 허용했다. 결국 후반 막판 한 골 더 실점해 2-4로 졌다. 팀은 패했지만 김범용 활약상은 팬들 머릿속에 각인되기 충분했다.

조원희와 김범용이 함께 팀에서 동료로 호흡을 맞춘 시간은 길지 않다. 김범용이 2019년부터 포천시민축구단에서 공익 근무를 병행한 탓에 지난 시즌 막바지 잠깐 함께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조원희의 ‘축구력’을 흡수한 듯, 이날 김범용은 그의 향기를 풀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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