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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번 넘어진 이경훈, 예비 아빠 '퍼펙트 대관식' [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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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번 넘어진 이경훈, 예비 아빠 '퍼펙트 대관식' [PGA]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5.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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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15년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상금왕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경훈(30·CJ대한통운)이 5년, 80번 만에 드디어 미국 무대 정상에 섰다.

이경훈은 1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매키니 TPC 크레이그 랜치(파72·7468야드)에서 열린 2020~2021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810만 달러) 4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2개로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 합계 25언더파, 263타를 기록한 이경훈은 2위 샘 번스(미국)을 3타 차로 제치고 첫 PGA 투어 왕관을 썼다.

이경훈(오른쪽)이 17일 2020~2021시즌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아내 유주연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2010년 광저우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이경훈은 완연한 성장세를 보이더니 2015년과 2016년 한국오픈 2연패를 달성하고 투어 상금왕에도 올랐다. 일본프로골프 투어(JGTO)에서도 2승을 거두며 자신만만하게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2016년 PGA 2부 투어에 입문한 그는 2018~2019시즌부터 PGA 정규 투어에 나설 수 있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79차례 투어 대회에 나서면서도 올해 2월 피닉스오픈 공동 2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확실한 무기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올 시즌 평균 비거리는 297.2야드(271.6m)로 89위, 그린 적중률도 63.4%, 155위에 그쳤다.

퍼터에서 답을 찾았다. 이번 시즌 라운드 당 퍼트 수도 28.59개로 49위로 준수하진 못했다. 최근 퍼터 감각이 무너졌고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과감히 새 장비로 교체하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80번째 도전 만에 감격 우승을 차지한 이경훈.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번스에 1타 뒤진 단독 2위로 이경훈은 2~4번 홀에서 3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선두로 도약했다. 이후 6번과 8번 홀에서도 1타씩 줄이며 2위권으로부터 더 달아났다. 9번 홀(파5) 티샷 실수가 나오며 1타를 잃었지만 12번 홀(파5)에서 곧바로 만회했다. 쾌조의 퍼트 감각이 있어 가능한 결과였다.

16번 홀(파4) 위기가 있었다. 5m 남짓 파 퍼트를 앞두고 상황에서 악천후로 경기가 중단됐다. 앞서 있다고는 하지만 2시간 30분이나 경기가 중단돼 흐름을 잃을 수 있는 상황. 불안감이 커졌다. 파 퍼트가 짧게 떨어지며 2위권 선수들과 격차도 2타로 줄었다.

그러나 이경훈은 이어진 17번 홀(파3)에서 피칭 웨지 티샷을 홀컵 1m 가까이로 보냈고 깔끔한 마무리로 다시 3타 차로 달아났다.

18번 홀(파5)도 완벽했다. 안정적인 티샷에 이어 과감한 세컨드샷으로 그린을 직접 노렸는데 홀컵 12m 거리에 안착시켰다. 이글 퍼트는 아쉽게 빗나갔으나 버디를 하나 더 추가하며 우승을 자축했다.

[사진=EPA/연합뉴스]<br>
이경훈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캘러웨이 일자형 퍼터로 바꾼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우승 비결을 밝혔다.[사진=EPA/연합뉴스]

 

이번 대회 성공 키워드는 단연 퍼터 교체였다. 투어 퍼터 49위였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 1.60개로 출전 선수 중 6위로 뛰어난 감각을 자랑했다.

우승 후 인터뷰에 나선 이경훈은 “사실 최근 몇 달 사이에 퍼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 캘러웨이 일자형 퍼터로 바꾼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악천후로 길어진 경기도 변수였으나 평정심을 잘 유지했다.. 이경훈은 “모든 선수에게 경기하기 힘든 조건이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 하려고 했다”며 “오래 기다린 우승이라 더 기쁘고 믿기 어렵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겹경사다. 아내 유주연 씨가 오는 7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날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장을 찾아 함께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아마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도 생기고 정신력도 강해질 것 같다”며 “앞으로 출산까지 2달 정도 남았는데 빨리 아기와 만나고 싶다. 완벽한 우승”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7월 출산을 앞둔 아내와 우승 직후 포옹하고 있는 이경훈(왼쪽).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지켜보는 이에게도 그의 대관식은 흐뭇하기만 했다. 최경주(51)와 강성훈(34)은 18홀 마무리를 기다렸다가 후배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최경주 선배님이 '우승할 줄 알았다'며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셨다”고 전했다.

이젠 당당한 우승자 출신이다. 지난 대회(2019년) 강성훈에 이어 2연속 한국인 챔피언에 오른 이경훈은 우승 상금 145만8000달러(16억4000만 원)를 손에 넣었다. 최경주, 양용은(49), 배상문(35), 노승열(30), 김시우(26), 강성훈, 임성재(22)에 이어 한국 국적 선수 역대 8번째 PGA 투어 정상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오는 20일 개막하는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 출전권을 획득한 그는 2022~2023시즌까지 PGA 투어에서 뛸 자격을 확보했다. 이젠 특색 없는 평범한 선수가 아닌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우승 후보로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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