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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사춘기' 극복 고진영, 즐기는 자 무서움 [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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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사춘기' 극복 고진영, 즐기는 자 무서움 [LPGA]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7.0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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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7개월 간 길었던 무관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저 ‘사춘기’ 정도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요한 목표를 앞둔 시점에서 소중한 1승을 수확했다. 즐기는 자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을 보여준 장면이다.

고진영은 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더 콜로니 올드 아메리칸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VOA) 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2언더파 69타,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마틸다 카스트렌(핀란드)을 1타 차로 제치고 작년 12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 이후 197일 만에 통산 8번째 투어 정상에 등극했다.

고진영이 5일 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VOA) 클래식에서 7개월 만에 정상에 등극했다. [사진=AP/연합뉴스]

 

112주 동안 세계 1위를 지켰던 고진영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10개 투어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서 넬리 코르다(미국)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큰 자극이 된 것일까. 고진영은 분발했다. 카스트렌에 1타 앞선 채 4라운드에 나선 고진영은 초반 버디 3개를 낚으며 격차를 벌렸다.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짓는 것처럼 보였으나 5번 홀(파3)에서 한 타를 잃고 이후 맹추격한 카스트렌에 한 타 차로 바짝 쫓겼다.

14번 홀(파4)에서 티샷이 페어웨이 오른쪽에서도 한참 벗어나 세 번 만에 그린에 공을 올리며 위기를 맞았으나 깔끔한 퍼트로 타수를 지켜냈고 15번 홀(파4)에서 카스트렌이 3퍼트하며 한 타를 잃어 여유가 생겼다.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카스트렌이 17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낸 것. 그러나 18번 홀(파4)에서 카스트렌의 버디 퍼트가 빗나가는 걸 확인했고 1.2m 파 퍼트를 성공시키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우승 상금 22만5000달러(2억5400만 원)를 받은 고진영은 상금랭킹 7위(79만1336달러)로 올라섰다. 

경기 후 우승 인터뷰에 나선 고진영은 “그동안 세계랭킹 1위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이번에 다시 우승해 기쁘다”며 “골프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골프 사춘기'를 즐기는 마음으로 극복한 고진영은 이제 도쿄올림픽을 바라본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한동안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고진영은 최근 두 대회 연속 하위권에 머물렀다. 스스로 “지난 몇 대회 동안은 ‘골프 사춘기’ 같았다”고 밝혔다.

고진영은 “버디만 하면 그다음에 공의 바운드가 좋지 않거나 무언가를 맞고 나가는 등의 불운이 있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며 “스윙이나 공 맞는 것, 퍼팅은 잘 됐는데 뭔가 될 듯 하면서 안 되니까 마음이 힘들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때 그냥 ‘아, 골프 사춘기가 왔구나’하면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사춘기 또한 나쁘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고 향상된 선수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7월이 되자마자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겨서 기분 좋다”고 전했다.

한 번 부진에 빠지면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부진이 지속돼 자칫 입스(Yips, 샷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 증세)가 찾아오면 회복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고진영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위기를 스스로 극복했다.

올림픽이 코 앞에 다가온 상황이어서 더욱 반가운 우승 소식이다. 고진영은 박인비(33), 김세영(28), 김효주(26)와 함께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 이번 대회 전까지 한국 선수들은 LPGA 투어 7대회 연속 무승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고진영이 그 사슬을 끊었다.

이제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도쿄 올림픽 이전에 4차례 LPGA 투어 대회가 예정돼 있지만 고진영은 오는 22일 개막하는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만 뛰고 도쿄올림픽을 준비한다. 

우승 퍼트 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본 고진영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지금은 천국에서 보고 계실 걸 생각하니까 뭉클했고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에비앙 챔피언십에 나가기 전까지는 체력이나 스윙 감각 같은 부분을 좀 더 완벽하게 보완하겠다. (에비앙 챔피언십을 올림픽) 시험 무대라고 생각하겠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본 후에 일본으로 건너갈 생각”이라는 고진영은 “체력 훈련을 많이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나이가 좀 들어서 회복력이 떨어진다. 너무 힘드니까 잠도 잘 못 자고 몸이 지쳤다. 어찌 보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했던 것 같다”고 체력 보강을 강조했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 대관식이었다. 18번 홀 그린에서 챔피언 퍼트를 넣은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었던 건 최근 타계하신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진영은 “할머니가 천국 가신 지가 4개월이 넘었다. 한국에 갈 수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관도 못 봤다.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지금은 천국에서 보고 계실 걸 생각하니까 뭉클했고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지난 목요일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좋은 생신 선물이 됐다”고도 전했다. 심지어 7일은 고진영의 26번째 생일. 경사가 겹쳤다.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 완벽한 여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다. 앞서 5년 전 박인비는 올림픽 정상에 오르며 골프 역사상 최초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고진영은 아직 메이저대회 2승에 불과하지만 이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선 가장 우승하기 힘든 올림픽 정상에 올라야 한다. 박인비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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