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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찬란했던 17년, 배구 그 자체였다 [SQ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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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찬란했던 17년, 배구 그 자체였다 [SQ인물]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8.1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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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김연경(33·상하이 유베스트)이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 2020 도쿄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 번 진정한 배구 영웅의 가치를 깨닫게 됐지만 이젠 더 이상 김연경이 한국을 대표해 국제 무대를 누비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12일 오후 김연경이 서울시 강동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오한남 배구협회장에게 대표 은퇴 의사를 밝혔다고 밝혔다.

김연경이 17년간 달고 있던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대표팀을 떠난다. [사진=연합뉴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나 정작 한국의 배구 영웅이 태극마크를 반납한다는 소식은 배구계를 넘어 한국 체육의 서글픈 소식일 수밖에 없다.

주니어 시절이던 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김연경은 수원한일전산여고 3학년 재학 중이던 이듬해 세계유스여자선수권대회에서도 대표 선수로 뛰더니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선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후 10년 이상 한국 여자 배구는 김연경이 이끌었다. 도쿄올림픽까지 세 차례 올림픽, 네 번의 아시안게임, 세 번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배구가 자그마한 기대라도 품을 수 있었던 건 ‘월드베스트’ 김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4강 신화를 달성했고 4위 팀 출신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당당히 올랐다. 5년 전 리우 대회에선 다소 아쉬움도 남았으나 각종 악재 속에 나선 도쿄 무대에서 여전한 기량과 후배들을 이끄는 카리스마, ‘원팀’의 주장으로서 4강 신화를 다시 한 번 이뤄냈다.

2005~2006시즌 KOVO 여자부 신인상을 비롯해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석권하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김연경은 3년 연속 리그 MVP를 휩쓸었다. 이후 일본, 터키 등을 거쳤고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으뜸별로 꼽히기도 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선수였다.

세 차례 올림픽에 나서 한국을 두 번이나 4위에 올려놓은 김연경(왼쪽). [사진=연합뉴스]

 

주니어 시절을 포함해 17년 동안 한국을 위해 몸 바친 김연경이다. 지난해 연봉을 대폭 낮추면서까지 한국 무대로 돌아왔던 것도 올림픽만을 위해서였다. 전성기에 비해선 운동 능력 등에서 차이가 났지만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MVP를 수상한 그는 1년 미뤄진 올림픽에서 ‘라스트댄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은 생각이 강했고 목표한 대로 대회를 마쳤다.

은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김연경은 동메달결정전을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김연경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스스로 태극마크를 달고 치른 마지막 대회였기에 더욱 감정이 북받친 것으로 보였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김연경은 결국 이날 은퇴 의사를 밝혔고 오 회장은 김연경의 의사를 존중해 은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연경은 협회를 통해 “막상 대표 선수를 그만둔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 대표 선수로 뛴 시간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많은 가르침을 주신 감독님들과 코치진, 같이 운동해온 대표팀 선배님, 후배 선수들 정말 고마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르비아와 동메달결정전 이후 눈물을 보였던 김연경은 후배들에게 역할을 넘기고 대표팀과 작별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김연경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대표팀을 떠나지만 우리 후배 선수들이 잘해 줄 것이라 믿는다.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오한남 배구협회장은 “지난 17년 동안 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정말 수고가 많았다. 협회장으로서 그리고 배구 선배로서 정말 고맙다”며 “김연경이 대표 선수로 좀 더 활약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룬 성과도 클 뿐 아니라 본인의 인생 계획도 중요하니 은퇴 의견을 존중하겠다. 이제는 남은 선수 생활 건강하게 잘 펼쳐나가길 항상 응원하겠다. 회장으로서 이런 훌륭한 선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과거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진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이탈 이후 공백이 컸던 대표팀이다. 김연경이 더욱 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올림픽이었다. 그럼에도 연일 활약했고 국제배구연맹을 비롯한 해외 배구계에선 김연경의 활약에 감동했다.

국제배구연맹은 한국을 4강으로 이끈 김연경을 향해 “우리는 계속 말해왔지만 김연경은 10억 분의 1의 선수”라고 극찬했다. 앞서 연맹이 세계 배구 126년 기념으로 선정한 베스트12 중에서도 주장을 맡은 것 또한 이번 올림픽을 통해 재조명됐다. 김연경의 참 가치를 해외 반응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 것. 김연경을 ‘배구 그 자체’, ‘배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부르는 팬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떠날 때까지도 ‘쿨’하다. 협회는 김연경에게 공식 대표 은퇴 행사를 제안했으나 김연경의 생각은 달랐다. 선수로서 모든 생활이 끝나는 시점까지 은퇴식 행사를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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