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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해커-최혜미, 흥행 돕는 신스틸러 [PBA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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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해커-최혜미, 흥행 돕는 신스틸러 [PBA 투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9.24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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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2021~2022 TS샴푸 PBA-LPBA 챔피언십의 주인공은 우승자 다비드 마르티네스(30·크라운해태 라온)와 김세연(26·휴온스 헬스케어 레전드)이었다. 

그러나 깜짝 활약으로 4강에 진출한 두 조연은 이들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면을 쓰고 나선 정체불명 유튜버 ‘당구 해커(39)’와 뒤늦은 입문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최혜미(27)의 약진이 돋보인 대회였다.

2021~2022 TS샴푸 PBA-LPBA 챔피언십에 나선 유튜버 당구 해커가 4강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PBA 투어 제공]

 

◆ ‘복면당구’ 해커, 시작은 논란-끝은 파란

올 시즌 1차전 블루원리조트 대회를 앞두고 특정 참가 선수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당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해커의 참가 여부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1부 투어에 등록되지 않은 해커는 스폰서 추천 선수로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프로 출범 첫 시즌 김가영, 차유람 등도 이 같은 방식으로 대회에 나섰기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그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도마에 올랐다.

해커는 복면을 쓰고 정체를 나타내지 않은 채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데, 대회 참가를 위해 이 원칙을 깨뜨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PBA 측이 이를 수용했고 출전명은 ‘해커’로, 얼굴은 가린 채 대회에 나서게 됐다. 다만 선수들은 동등하지 않은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PBA 측의 설명과 설득으로 일단락됐지만 해커 자신은 물론이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대회가 진행됐다.

첫 경기부터 베트남 특급 마민캄과 맞붙어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탈락한 해커는 이번 대회 재도전에 나섰다. 128강에서 이상철을 만나 세트스코어 2-2, 승부치기에서 득점하며 고비를 넘겼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전성일을 물리치고 올라선 32강에선 3쿠션 4대 천왕 중 하나인 프레드릭 쿠드롱(53·벨기에·웰컴저축은행 웰뱅 피닉스)을 만났다.

‘마음 속 1순위’였다는 쿠드롱을 만났으나 1세트 2이닝 만에 14점을 냈다. 쿠드롱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5세트 행운 섞인 득점이 더해지며 기선제압. 2세트 쿠드롱도 힘을 냈지만 해커의 기세를 꺾을 순 없었다. 8이닝 만에 세트를 마무리했고 3세트 길어진 흐름 속에서도 쿠드롱은 전혀 감각을 되찾지 못했고 해커가 16강행을 확정했다.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쿠드롱 등 강호를 연달아 잡아낸 해커는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 PBA 투어 흥행에 불을 지폈다. [사진=PBA 투어 제공]

 

기세를 탄 해커는 16강에서 김종원, 8강에서 김남수마저 잠재웠다. 4강에서 에버리지 2.222를 기록한 마르티네스에 밀려 탈락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해커의 여정이었다.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통상 유튜브 중계방송 동시 접속자수는 결승전이나 돼야 1만을 넘곤 하는데, 해커가 하는 경기는 기본적으로 1만을 넘었고 쿠드롱과 32강전은 무려 2만을 훌쩍 넘었다. 대회 전 7만 정도였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도 74000을 넘어섰다.

해커 또한 당구선수가 꿈이었다. PBA 출범 당시 선수 제안을 받았는데, 방송을 이유로 마음을 접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던 바람을 마침내 이뤄냈다. 

그러나 의외로 욕심은 그리 크지 않다. 괜히 더 욕심을 갖다 기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회를 앞두고 따로 연습도 하지 않았다. 부담 없이 나선 대회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고 실력을 널리 알리게 됐다. “해커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치는지도 알고 있다”며 “몇 경기만 보고 나를 비판하셨던 분들처럼 쿠드롱을 이겼다고 과대평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쿠드롱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고 평생을 쳐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던 경기”라고 말했다.

선수보다는 방송인으로서 당구를 알리는데 더 욕심이 큰 해커다. “선수를 하면 성적을 내야하고 그를 위해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치열함에 치이며 살아와 이젠 조금 회피하고픈 생각도 있다”며 “그보다는 동호인들과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구를 재밌게 알려드리고 재밌게 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빼어난 외모 못지 않게 몰라보게 성장한 실력 속 최혜미는 생애 첫 4강에 오르며 밝은 미래를 기대케 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팬들 시선 뺏은 최혜미, ‘일취월장’ 무서운 상승세

여자부에선 최혜미가 주목을 받았다. 걸어온 길을 보면 그의 4강 진출은 더욱 놀라운 행보였다. 충남 천안 출신인 그는 4년 전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당구에 빠져들었다. 그해 코리아 당구왕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동호인 자격으로 나선 LPBA 원년 오픈챌린지에서 6위 안에 들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되며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첫 두 시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두 차례 16강 진출이 전부였고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올 시즌 놀랍게 달라졌다. 지난 1차전에서 8강에 올랐다. 백민주를 제압했고 ‘캄보디아 당구 영웅’ 스롱 피아비(31·블루원리조트 엔젤스)와 붙어 한 세트를 따내며 저력을 보여줬다.

“한 계단씩 올라가고 싶다”던 최혜미는 이번 대회 더 발전한 기량을 보였다. 가뿐하게 서바이벌 라운드를 통과하더니 16강에서 임경진을 꺾고 8강에선 우승자 출신 김가영(38·신한금융투자 알파스)을 셧아웃시켰다. 준결승에선 우승자 김세연을 만나 풀세트 접전 끝에 석패했다. 

최혜미는 "다음 대회 목표는 결승전에 나서는 것"이라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PBA 투어 제공]

 

점점 발전하는 기량과 빼어난 외모는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회를 마친 최혜미는 “아쉽다. 지더라도 내가 치고 싶은대로 치면 한이 없겠다 싶었는데 4강에선 민망할 정도로 럭키샷이 많이 나왔다. 이기면 안 되는 경기라고 느꼈다. (김)세연이에게도 미안해 경기 후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넸다”고 말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기만 한다. 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그 중 하나. 최혜미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조금만 열심히 하면, 더 집중하면 잘할 수 있다고. 그걸 아는데 습관 때문에 잘 안 고쳐진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도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며 “경기 운영 측면에서도 부족했다. 기본적인 배치에서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노력을 해야 하는데, 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돌아봤다.

느낀 점도 많다. “위로 올라올수록 생각하는 것부터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그런 걸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번 대회를 하며 새삼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다음 대회 때는 그런 실수를 더 적게 하도록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1차전 8강, 이번 대회 4강. 최혜미는 “다음 대회 목표는 결승전에 나서는 것”이라며 “너무 한 번에 많은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고 싶다”고 더 발전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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