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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 엔더스 '첼로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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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 엔더스 '첼로를 노래하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3.28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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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4현의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 노래하는 음역과 가장 흡사한 악기다. 노래를 들려주는 듯한 첼로연주로 각광받는 한국계 독일인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26)가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더 브릴리언트’ 시리즈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과 블로흐의 ‘셀로모(히브리 랩소디)’를 협연한다. 이 무대는 일찌감치 올해 대표 공연 중 하나로 꼽히며 눈길을 끌었다. 다음주에는 독일에서 첼로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동거'를 표방한 프로젝트의 세게 초연을 시도한다. 이어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음반을 출시한다. 솔리스트로 다채로운 활동을 해나가는 그의 이상은 음악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스포츠Q 용원중기자] 공연 전날 광화문 서울시향 사무실. 반팔 라운드 티셔츠에 피트한 청바지를 입은 활기찬 청년이 나타났다. 한국어보다 독어와 영어가 편한 혼혈이지만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악수를 나눈 뒤 명함을 유심히 보더니 스포츠Q의 주선으로 ‘피겨퀸’ 김연아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열성팬이라는 소개를 덧붙이며.

♦ 인발 지휘 서울시향 '셀로모' 초연...솔로몬왕 다룬 난곡 도전

이상 엔더스에게 이번 공연은 서울시향 데뷔 무대이자 ‘셀로모’ 초연이라 여러모로 뜻 깊다. 2009년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 당시 첼로 객원수석으로 참여한 바 있으나 협연은 처음이다. 특히 ‘셀로모’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전설적 왕 솔로몬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유대인 출신의 미국 작곡가 블로흐가 만들었다. 인생의 허무와 공허를 담은 주제 때문에 어둡고 비관적인 분위기가 짙다. 특히 첼로 한 대와 관현악단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절대적인 난곡으로 유명하다.

“드물게 연주되는 데다 고난도 기교를 요하는 곡이라 제안받았을 때 놀랐다. 솔로몬이 사회를 향해 독백하는 내용을 담은 이 곡에서 첼로는 솔로몬 왕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오케스트라는 사회를 상징한다. 성서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인을 이해하고 솔로몬 왕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첼로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사운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공을 들였다. 25분에 걸친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이 나이 든 남자의 일생을 관람한 느낌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를 표현해야 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 곡의 명반으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피에르 푸르니에, 베르거 줄리어스 등의 음반이 꼽히나 이상 엔더스는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미국 첼리스트 린 해럴의 음반을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는다. 11세에 처음 들었을 때 첼로의 노래하는 듯한 음색에 푹 빠져드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처음 협연하는 인발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했기에 그의 공연을 객석에서 많이 봤다. 공연 중 불필요한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는 노련한 지휘자이며 협연자 서포트를 아주 잘해준다. 특히 유대인이라 이번 곡을 잘 표현해낼 것이다. 서울시향의 경우 단원들을 잘 알아서 편안한 협연이 이뤄질 듯하다. 리허설 때 보니 서울시향의 열정적 해석과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이상 엔더스는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독일인 아버지와 작곡가인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성가대 활동을 하며 노래에 빠져 지냈으나 첼로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매료돼 12세에 미하엘 잔데를링을 사사하며 첼로에 입문했다.

“스승으로부터의 ‘악기를 통해서 너의 목소리를 내라’는 가르침을 늘 되새긴다. 겉으로 보기에 첼로는 일개 나무상자이지만 내 목소리와 메시지, 표현 욕구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김연아 선수도 날 달린 신발을 신은 채 빙판을 슬라이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스케이트화가 신체의 일부로 쓰이고, 슬라이딩하면서 자신의 예술성을 표현하잖나. 동일한 거다.”

 

♦ '최연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첼로수석 입단 화제

20세에 세계 10대 교향악단인 유서 깊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연소’ 첼로 수석으로 입단하며 화제를 뿌렸다. 수석 지휘자인 거장 크리스티안 텔레만 아래에서 재능을 연마하며 4년 동안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가 2012년 이후 솔리스트로 다채롭게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실내악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달라 최근 앙상블 세레스를 창단했고, 지난해 가을부터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음악공연예술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첼로 연주 테크닉은 중요하지만 일부분이다. 학생들에게 왜 첼로를 배우는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데 중점을 둔다. 돈을 목적으로, 직업인으로 첼리스트가 되면 안된다. 음악성이라는 고결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티켓파워를 발휘하고 연주료가 엄청나게 비싼 스타 연주자들보다 지휘자 주빈 메타나 바이올리니스트 기든 크레이머처럼 음악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서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연주자를 지향하자는 거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역시 현재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거다.”

바로크부터 고전, 낭만파,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그는 철학적이며 신선한 곡해석과 패기 넘치는 연주로 평단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데뷔음반 ‘미르테와 함께 장미꽃을’(소니뮤직)은 윤이상과 슈만의 ‘노래하는’ 작품을 아름다운 첼로 선율로 담아내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올 봄에는 두 번째 음반으로 우주와 자연,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전곡을 출시한다.

 

♦ 2집 바흐 첼로모음곡 출시...일렉트로닉 음악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초연 

“부모님이 과거 성당과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자주 하셨기에 교회음악, 바로크음악, 온갖 종류의 바흐음악을 듣고 자랐다. 바흐 첼로모음곡은 첼로를 시작하면서부터 연주했고, 나의 차량인 포르셰를 탈 때마다 CD(하인리히 쉬프 연주)로 들을 만큼 친숙하지만 심오한 철학과 사색 때문에 연주하기가 만만찮은 작품이다. 나이가 들고 연주자로서 아주 원숙해졌을 때 일생의 프로젝트로 녹음하는 게 관례라 친구들은 ‘너 빨리 죽고싶냐?’고 놀린다. 하하. 이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기에 도전하게 됐다.”

이상 엔더스의 겁 없는 도전정신, 정력적인 활동량은 무한대다. 다음주 독일에서 ‘요소들(Elements)’이라는 이름의 동시대 음악 프로젝트의 세계 초연을 앞두고 있다. 첼로 독주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월화수목금토일'을 테마로 한 7개 작품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클래식·일렉트로닉 음악 작곡가, 피아니스트 출신 DJ, 첼리스트와 유명 클럽 DJ가 몇 년에 걸쳐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우리는 현재 일렉트로닉 시대에 살고 있다. 건축, 디자인, 사진, 댄싱, 아츠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우리 시대의 언어인 일렉트로닉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하향세인 클래식계를 발전시키려면 시대와 호흡하는 새 작품을 써야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일종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취재후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첼로를 연주한다'란 말보다 '첼로로 노래한다', '음악을 연주한다' 대신 '음악을 만든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견고한 철학이 깃든 정확한 표현구사를 보노라니 전형적인 독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 많고 열정적이며, 호기심 가득한 데다 한국 음식 예찬론을 펴는 모습에서 모국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확신이 덧입혀졌다. 두 개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현명한 청년이다. 이상 엔더스는.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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