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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울산 잡는 포항, 라이벌십 이상의 정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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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울산 잡는 포항, 라이벌십 이상의 정신력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0.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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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포항 스틸러스가 또 중요한 일전에서 울산 현대의 발목을 잡았다. 객관적 전력 열세를 극복하고 라이벌 팀의 트레블(3관왕) 도전을 저지했다.

포항은 20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 중립 단판경기에서 울산과 연장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겼다.

후반 7분 윤일록에 선제골을 줬지만 후반 23분 울산 미드필더 원두재가 퇴장 당한 이후 수적 우위를 살려 맹공을 퍼부었다. 후반 44분 그랜트의 극적인 헤더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갔다. 연장에선 골문을 열지 못했지만 승부차기에서 5차례 킥을 모두 성공시키며 역전승을 일궈냈다.

포항이 ACL 결승에 오른 건 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2009년 이후 12년 만이다. 당시 선수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김기동 감독은 이제 지도자로 아시아축구 가장 높은 곳에 설 기회를 잡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포항이 울산을 꺾고 ACL 결승에 올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객관적 전력 열세를 극복하고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경기 앞서 전반적으로 울산의 우세가 점쳐졌다. 올 시즌 울산은 K리그1(프로축구 1부)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반면 포항은 7위로 처져 상위스플릿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가장 최근 열린 10월 A매치 주간 때도 울산에선 5명이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지만 포항에선 주장 강상우 한 명뿐이었다.

지난 시즌 자랑했던 '1588' 라인업 중 일류첸코(전북), 오닐(부리람 유나이티드), 팔로세비치(FC서울)가 겨울에 팀을 떠났다. 전반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송민규(전북)도 여름에 이적했다. 가뜩이나 울산보다 스쿼드가 열악한 상황에서 이날은 핵심 미드필더 신진호와 고영준이 경고누적으로, 골키퍼 강현무가 부상으로 결장했다.

확률이 낮아 보였건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렸다. 울산은 사흘 전 전북 현대와 8강전에서 연장 120분 승부를 벌였고, 총력전을 벌인 탓에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었다. 나고야 그램퍼스(일본)를 3-0 완파한 포항 입장에서 호재였다.

김기동 감독은 임상협, 강상우로 이어지는 왼쪽 라인을 활용해 전반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체력적으로 열세였던 울산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먼저 실점했지만 빠른 역습으로 상대 퇴장을 이끌어낸 덕에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다.

ACL에서 포항과 울산 간 '동해안더비'가 펼쳐진 건 이번이 처음. 이번 시즌 울산에 1무 2패로 밀렸음에도 가장 중요한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고춧가루 부대 본능을 뽐냈다. 2013시즌 최종전에서 선두 울산을 잡고 역전 우승했고, 2019시즌 최종전에서 다시 울산을 격침하며 울산의 우승을 막았다. 2020시즌에도 파이널라운드에서 울산에 4-0 대승을 거두며 울산이 결국 준우승에 머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기동 포항 감독이 남다른 정신력의 비결을 전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기동 감독은 경기 후 "우리 선수들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울산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공략하기 위해 급하게 변화를 줬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멀리 응원 온 팬들의 열렬한 성원도 감사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팀으로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선수 때부터 늘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왔다. 올 시즌 ACL은 16강만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목표를 달성한 이후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이렇게 결승에 가게 됐다. 기쁜 한편 한국축구를 아시아에 알리는 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며 "홍명보 울산 감독님께서 축하한다며 잘하고 오라며 격려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승부처마다 발휘되는 포항 특유의 승부처 집중력과 정신력의 비결을 묻자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는 미덕을 보여줬다.

"사실 내가 대단히 하는 건 없다. (오)범석이, (임)상협이 등 고참들이 분위기를 잘 잡아주기 때문에 나는 늘 한발 물러서 지켜보는 입장이다. 포항이라는 팀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화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어온 덕에 이런 좋은 결과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선수 때 ACL 결승에 간 것도 영광이었지만,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이끌고 결승에 가는 지금이 그때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팬들에게 "'팬'보다 '가족'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편이 돼주고, 늘 곁에서 격려해주는 가족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팬들이 멀리까지 와 응원해주신 게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디펜딩챔프 울산을 꺾은 포항은 내달 23일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장현수가 몸 담고 있는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과 사우디 리야드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단판 승부를 펼친다. 우승 팀은 역대 ACL 최다우승(4회) 타이틀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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