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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감독 추풍낙엽, 김태형은 무엇이 달랐나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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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감독 추풍낙엽, 김태형은 무엇이 달랐나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11.11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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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가을야구에서 두산 베어스와 만난 세 팀의 공통점이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사령탑과 함께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아쉬웠다.

그 승자는 모두 두산이었고 김태형(54) 감독이 가운데 있었다. 감독 7년차. KBO리그를 거쳐간 김응용(80), 김성근(79), 김인식(74) 감독 등과 같이 오랜 시간 지휘봉을 잡은 건 아니지만 커리어로는 충분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한 임팩트를 남긴 김 감독은 여유 있게 후배 감독들을 한 수 지도했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준PO), PO에서 나타난 김태형 감독만의 차별점은 무엇이 있었을까.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가운데)이 10일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짓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01년 은퇴 후 두산과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에서 코치로서 경험을 쌓은 뒤 2015년 두산 10대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누구보다 두산 선수들과 팀 컬러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부임 첫 해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서 그 중 3차례 정상에 섰다. 박건우, 김재환, 박세혁, 오재일(삼성), 이영하, 최원준 등 많은 이들이 기량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왔고 무한 경쟁을 유도하며 매 시즌 팀이 우승후보 1순위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팀을 만들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김 감독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핵심 자원이던 전력 3명이 자유계약선수(FA)로 빠져나간 것. 시즌 막판엔 외국인 선수 2명 모두 이탈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7위까지 처졌던 두산이지만 막판 뒷심을 발휘해 4위로 가을야구에 나서게 됐다. 그럼에도 경험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김 감독에게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이 왜 붙여졌는지 알 수 있는 올 가을이다.

키움과 WC 결정전에서부터 경험의 차이가 잘 나타났다. 홍원기(48) 감독이 이끄는 키움은 1차전 선발 안우진의 호투 속에 1승을 챙겼으나 김태형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2차전 선발로 내세운 정찬헌이 흔들리자 빠르게 교체를 했는데 하필 좌타자들을 상대로 잠수함 우투수 한현희를 내보냈고 결과는 대실패였다. 홍 감독은 이후에도 교체 타이밍을 놓치며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반면 김태형 감독은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선발 김민규 투구의 힘이 떨어지자 5회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교체했고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뒤엔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여유까지 보이며 준PO로 향했다.

LG와 준PO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1차전 두산이 1-0으로 앞선 5회초 공격에서 정수빈이 기습번트로 무사 1,3루를 만들었는데 비디오판독 결과 3피트 라인 수비방해 아웃이 선언됐다. 이에 김태형 감독이 나와 주심과 이야기를 했는데 류지현(50) LG 감독은 이에 항의했다.

LG와 준PO 1차전 정수빈의 3피트 라인 수비방해 아웃에 설명을 요구하러 나오는 김태형 감독.
류지현 LG 감독(가운데)은 이에 항의하느라 10분 가까운 시간을 보냈고 좋은 흐름을 살리지 못한 LG는 추가 실점하며 1차전을 패배로 시작했다.

 

비디오판독 이후 항의시 자동퇴장에 대한 부분을 따진 것인데, 김 감독은 상황 설명만을 요구했다는 게 주심의 설명이었다. 유강남의 어설픈 송구로 자칫 무사 1,3루가 될 수 있었으나 비디오판독 끝 선행주자까지 귀루해 1사 1루가 된 상황. LG에 유리해진 흐름이었다. 그러나 류 감독의 항의가 10분 가까이 길어졌고 쌀쌀한 날씨 속 투수 앤드류 수아레스와 야수진에게 좋은 영향일리 없었다. 그 결과 두산에 1사 1루에서 2루 도루, 박건우의 적시타까지 내줬고 흐름을 내줬고 이후 8회 정주현의 뼈아픈 실책까지 더하며 추가실점해 패배했다. 선수단이 유독 큰 부담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감독마저 선수들에게 여유를 찾아주지 못한 게 뼈아팠다.

2차전 케이시 켈리의 호투 속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으나 3차전 투수진 붕괴와 잇따른 수비 실책 등으로 고개를 숙였다. 반면 김태형 감독은 선발 김민규가 흔들리자 2회부터 이영하를 투입해 4이닝을 맡기는 승부수로 PO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더불어 마운드의 높이 차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베이스러닝을 주문한 것도 주효했다.

삼성과 PO 또한 마찬가지. 1차전 선제 2득점하고도 곧바로 3점을 내주며 끌려간 삼성에도 막판 뒤집기 기회는 있었다. 8회말 1점을 추가하며 3-4까지 쫓아간 것. 투수교체 한 번이 승부를 갈랐다. 허삼영(49) 감독은 9회 2사에서 잘 던지던 우규민을 내리고 오승환을 투입했는데, 박세혁에게 솔로포를 허용했고 김재호, 강승호, 정수빈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2실점했다. 끌려가는 경기에서 클로저를 내세워 얻은 결과라 더욱 아쉬운 선택으로 보였다.

이에 반해 김태형 감독은 최원준이 흔들리자 5회 도중 홍건희를 올렸고 시즌 최다인 52구를 던지게 하는 승부수로 승리를 챙겼다.

10일 삼성과 PO 2차전에서 선발 김민규가 흔들리자 빠른 투수 교체를 단행한 두산. 2회 오른 3번째 투수 이영하에게 3⅔이닝 동안 49구를 던지게 하는 강수를 뒀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삼성은 당초 예고한대로 백정현 다음으로 원태인(오른쪽)이 아닌 최지광을 올렸다 실점이 불어났다. 투수 교체에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 삼성.

 

이날도 투수교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벼랑 끝에 몰린 허 감독은 경기 전부터 백정현과 원태인의 1+1 운영을 예고했는데, 백정현이 2회부터 흔들렸다. 원태인이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운드에 등장한 건 최지광. 1사 3루에서 볼넷, 1타점 2루타를 맞은 뒤에야 원태인을 불러올려 이닝을 마무리했다. 백정현이 예상보다 빠르게 흔들렸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두 번째 투수로 원태인을 예고했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김태형 감독의 발빠른 투수 운영과 대비됐다. 선발 김민규가 1회를 삼자범퇴로 마쳤으나 2회 만루 위기에 몰리는 등 불안함을 보이자 무실점 투구에 앞서 있는 상황에도 3회부터 퀵후크를 펼쳐들었다. 이후 사흘 전 4이닝 66구를 던졌던 이영하에게 3⅔이닝(49구)을 맡겼다. 이영하는 무실점 호투했고 승리투수가 됐다. 자칫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투수 운영이었으나 깔끔한 2연승으로 사흘 휴식을 챙기며 선수단 운영에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

김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전략은 없다.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선발진의 붕괴로 마운드 운용에 계산이 서지 않는 열악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말이지만 반대로 김태형 감독의 두산이 왜 무서운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가장 적절한 해법을 찾아내고 적용시켜 결국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까지 나서게 된 두산이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후 “항상 1등을 하면 좋고 2등하면 서글프다”며 “선수들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늘 잘해줬다. 체력도 그렇고 힘들다. 7차전 시리즈인데 선수들이 우승에 대한 부담 안 갖고 편안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야구를 하면 좋고 아니어도 잘 싸웠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올 가을 진정한 ‘명장’으로서 새삼 인정받고 있는 김태형의 무덤덤함이 괜스레 더욱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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