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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은 그만' 레펜스, 지천명에 느낀 정상의 맛 [PBA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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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은 그만' 레펜스, 지천명에 느낀 정상의 맛 [PBA 투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11.24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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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건 하늘의 명을 깨닫을 만한 ‘지천명’을 넘어선 에디 레펜스(52·SK렌터카 위너스)였다. 

레펜스는 23일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고양에서 열린 2021~2022 PBA 투어 3차전 휴온스 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조재호(41·NH농협카드 그린포스)를 세트스코어 4-1(15-10 10-15 15-8 15-8 15-0)로 꺾고 정상에 섰다.

걸출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같은 벨기에 출신이자 3쿠션 4대 천왕 중 하나인 프레드릭 쿠드롱(53·웰컴저축은행 웰뱅 피닉스)에 가려졌던 2인자가 진정한 1인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에디 레펜스가 23일 2021~2022 PBA 투어 3차전 휴온스 PB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실력만큼은 정평이 나 있던 선수였으나 쿠드롱이라는 큰 벽에 가려져 있었다. 고향을 떠나 생활하며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절친한 사이였으나 쿠드롱은 그에게도 넘어서야 할 하나의 산이었다.

128강에서 H. 고바야시와 2-2로 비긴 뒤 승부치기 위기를 딛고 64강에 오른 레펜스는 이후 황득희(3-0), 엄상필(3-2), 주시윤(3-1), 박광열(3-0)을 꺾고 4강에 올랐다. 준결승 상대는 쿠드롱을 잡아낸 신정주(신한금융투자 알파스). 7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고 그 기세를 몰아 결승에 나섰다.

명품 승부였다. 첫 세트 조재호가 키스로 인한 행운의 득점 이후 9점을 몰아쳤는데, 레펜스는 하이런 11득점, 단숨에 승부를 뒤집었다. 3이닝에도 2점을 보탠 레펜스는 키스 행운이 겹쳐지며 첫 세트의 주인공이 됐다. 둘 모두 에버리지 5에 달한 명승부였다. 불과 20분 만에 세트가 마무리됐다.

2세트 조재호가 2이닝 8점을 몰아치며 달아났는데 승부는 1-1이 됐지만 레펜스 또한 6득점하며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3세트 다소 이닝이 길어졌으나 이번에도 승자는 레펜스였다. 7-8로 뒤지던 10이닝 8연속 득점하며 승부를 되돌렸다.

팀리그에서 앞서가던 세트에서도 마지막 뒷심 부족을 나타냈던 레펜스는 이번에야말로 약점을 보완한 면모를 보였다. 4세트 8-5에서 7이닝 6연속 득점으로 14-8로 앞서간 레펜스는 조재호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마무리로 우승까지 단 한 세트만을 남겼다.

레펜스는 PBA 투어 참가 후 첫 정상에 올라 우승상금 1억 원을 챙겼다. [사진=PBA 투어 제공]

 

5세트에도 레펜스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3이닝 8연속 득점하며 앞서나간 레펜스는 타임아웃을 요청했으나 이미 모두 소진해 기회가 없었다. 시간에 쫓겨 샷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득점으로 연결되며 미소를 지었다. 13-0에서 투 뱅크샷으로 경기를 끝낼 기회를 잡았으나 레펜스는 서둘지 않았다. 횡단샷으로 가볍게 1점을 더하더니 다음 이닝 마지막 득점에 성공하며 15-0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위닝샷을 성공시킨 순간 레펜스는 감격에 겨워 당구 테이블에 올라서며 포효했다.

아내와 진한 포옹을 나눈 레펜스는 감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경기장을 찾은 SK렌터카 팀 동료들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했다.

15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레펜스지만 국제대회 타이틀은 전무했다. 정상에서 한 고비를 넘지 못하는 등 아쉬움을 남겼던 그였기에 더욱 기쁨이 컸다. 경기 후 레펜스는 “너무 행복하고 큰 타이틀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다. 국내 챔피언십 타이틀은 있었지만 세계대회에선 처음”이라며 “한동안 심리적인 면에서 준비가 안됐다고 느꼈는데 심신을 모두 단련했고 이번엔 준비 잘 됐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어와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레펜스는 지난 시즌 월드챔피언십 우승자 다비드 사파타(스페인)의 통역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번엔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며 우승 인터뷰를 가졌다. 레펜스는 “준결승 땐 너무 긴장해 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었다”며 “결승은 자신감이 있었고 조재호에게 압박을 줄 수 있었다. 나만의 인터뷰를 하게 돼 정말 좋다.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위닝샷 직후 당구 테이블에 올라 포효하는 레펜스. [사진=PBA 투어 제공]

 

한국 나이로 50세가 넘어섰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레펜스다. 특히 약점으로 지적됐던 심리적인 부분에서 많은 보완을 이뤘다. “항상 중요한 무대마다 심리적으로 피곤해졌다. 이번엔 멘탈 코치해주는 분 도움 받아 피곤해지지 않는 걸 느꼈다”며 “어떤 사람에겐 심리적인 게 자연스럽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쿠드롱 앞에서 이뤄낸 결과라 더욱 뜻 깊다. “과거에도 몇 차례 쿠드롱이 긴장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곤 했다. 같이 연습도 많이 하고 그를 상대하며 배우기도 했다”며 “경기를 할 때나 안 할 때나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도움을 많이 받는다. 많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는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첫 시즌 4강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최고성적은 16강에 불과했다. 올 시즌 1차 대회에서 8강에 오른 레펜스는 이번 대회 기세를 끌어올렸고 결국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다. 번번이 큰 토너먼트에선 패했는데 그 많은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목표를 이뤘다”며 “지금껏 힘든 순간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대회 끝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됐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레펜스는 “이번 대회 보여준 자신감과 긴장하지 않는 대회에 나서는 느낌을 이어가고 싶다”며 “그렇다면 이번 대회철머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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