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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5공과 뗄 수 없는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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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5공과 뗄 수 없는 스포츠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1.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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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그는 내란죄로 실형을 살았다. 5·18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 과오에 대한 일언 사과 없이 생을 마감한 만큼 그의 장례는 청와대발 조의 메시지도, 여야 대선 후보들의 조문도 없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신군부와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하고 1980년 군사력을 동원해 광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면서 장기 집권 토대를 구축했다. 1981년 3월 5공화국 출범 후 나라 안팎에서 정권의 정통성 시비가 빗발치자 이를 잠재우고자 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이른바 '3S(스포츠·섹스·스크린)' 정책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정치 대신 다른 분야로 돌리고자 했다. 그 결과 야구 등 주요종목이 프로화 첫발을 내딛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전두환(오른쪽) 전 대통령은 나라 안팎에서 빗발치던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잠재우고자 스포츠를 활용했다. [사진=MBC/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40돌을 맞은 2021년 전두환 대통령이 사망했다. [사진=연합뉴스]

5공 정권 청와대 주도로 1981년 9월부터 프로야구 창설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해 12월 프로야구 주관 기구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창립총회로 이어졌다. 이듬해인 1982년 프로야구는 6개 구단으로 출범했고, 1983년 프로축구와 프로씨름도 시작을 알렸다.

타 종목보다 야구가 가장 먼저 프로화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어 프로화가 쉬웠고, 따라서 관중동원도 그만큼 유리했기 때문이다. 앞서 실업야구 문화가 정착한 것은 물론 1979년부터 대학·실업 선수들이 출신 고교 유니폼을 입고 기량을 겨루는 '야구대제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지역 연고에 기반한 프로야구가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에서 막을 올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간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프로야구는 1986년 빙그레 이글스,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2011년 NC(엔씨) 다이노스, 2013년 KT 위즈가 차례로 창단하면서 지난 40년을 거쳐 10구단 체제를 확립했다. 꾸준히 질·양적으로 팽창을 거듭한 덕에 현재도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통한다.

5공 때 하계 스포츠 야구, 축구를 비롯해 민속씨름이 성공하면서 프로 스포츠 발전 토대가 깔렸다. 이후 동계 스포츠 대표 격인 농구와 배구도 실업 시대를 마감하고 각각 1997년, 2005년 프로화 됐다. 내년 1월에는 탁구가 프로리그를 발족한다.

[사진=연합뉴스]
1983년 프로축구도 발족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1981년 IOC 총회에서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다. [사진=연합뉴스]

프로 스포츠는 그동안 국민 여가를 책임지고 국제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수단으로 우리 사회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도 스포츠 외교력과 프로화를 통한 내부 경쟁력 강화의 결합물로 평가받는다.

당시 군부의 폭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했던 5공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쏟아 성과를 냈다. 나라를 대표하는 경제인과 국가 권력을 모두 동원한 결과 1981년 서독(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투표에서 열세를 극복, 서울이 일본 나고야를 따돌리고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예비 대회 격으로 서울에서 1986년 아시안게임도 개최하면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메이저 종합스포츠대회가 2년 간격으로 열리게 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두 대회를 통해 아마추어 스포츠 엘리트 선수들도 실적을 올리고 그 자신감을 양분 삼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이 단기간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권력을 위한 5공 정권의 스포츠 접근법은 순수하지 않았지만 프로 스포츠 출범과 굵직한 국제 종합대회 유치로 한국 스포츠 세계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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