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3:17 (목)
[클래식 한류] 이탈리아 사로잡은 '꼬레아노 바리톤' 김주택
상태바
[클래식 한류] 이탈리아 사로잡은 '꼬레아노 바리톤' 김주택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19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뷔 이후 국내 첫 독창회 5월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개최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전에 두 차례의 독창회는 학생일 때 했던 거고, 이번엔 프로 데뷔 이후 첫 독창회라 설레요. 어린 티를 벗어야하는 부담감, ‘차세대’라는 수식어를 떼버리고 그냥 ‘성악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뒤섞인 것 같아요.”

바리톤은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중간 음역대로 굵고 중후한 목소리를 낸다. 현재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악가 중 테너는 많은 반면 바리톤 성악가는 아주 드물다. 독일에서 활약 중인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44·윤태현)과 함께 유럽을 매혹시키고 있는 바리톤 김주택(28). 오페라의 종주국 이탈리아에서 ‘줄리안 킴’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적인 활약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 지난해 9월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의 '라인의 황금'에서 도너(천둥의 신) 역을 맡아 독일 오페라에서도 만만치 않은 기량을 보여준 김주택.

최근 남미 페루에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엔리코 역을 멋지게 소화해 현지 평론가로부터 “힘과 세기를 겸비한 동양의 샛별”이라는 찬사를 들은 그가 오는 5월31일 오후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데뷔 이후 고국에서의 첫 리사이틀을 진행한다. 독창회를 앞두고 일찌감치 내한한 전도유망한 성악가를 광화문에서 만났다. 나직하고 짱짱한 목소리가 카페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 2009년 유럽 데뷔 이후 국내 첫 독창회 마련하는 ‘동양의 카푸칠리’

2009년 예지 페르골레지 극장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 역으로 정식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마련하는 국내 리사이틀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프로그램 역시 자신의 전공인 이탈리아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로 꾸몄다.

1부는 슈베르트 ‘3개의 이탈리아 가곡’, 토스티 ‘말린코니아’, 마르티니 ‘사랑의 기쁨’(기타 협연 박종호), 쇼팽 ‘슬픔’으로 채운다.

2부는 주옥과 같은 오페라 아리아 향연이다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가혹하고 불길한 이 심사’와 2중창 ‘아버지의 영혼이 떨고 있다’(협연 테너 유채훈),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중 ‘그대, 창가로 와 주오’, 오페라 ‘운명의 힘’ 중 돈 카를로의 명곡인 ‘죽어라! 무서운 것! 이 속에 내 운명이 있다’를 선사한다.

 

“가곡은 포기하기 힘들 만큼 좋은 노래가 많아요. 토스티의 가곡은 독일가곡과 비슷하게 연가곡이라는 점에서 슈베르트 곡은 이탈리안 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어요. 2부 오페라 아리아에선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솔로곡 뿐만 아니라 듀엣곡도 준비해봤고요. 특히 ‘돈 조반니’ 아리아는 세레나데이므로 기타와 호흡을 맞췄고, ‘운명의 힘’ 아리아는 바리톤 레퍼토리 중 최고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멋있는 곡이라 ‘바리톤 김주택의 색깔’을 보여드리기 위한 선곡이에요.”

◆ 이탈리아 오페라 장악한 ‘꼬레아노 바리톤’...풍부한 감성의 목소리 어필

김주택은 테너에 가까운 고음을 소화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내는 깊고도 풍부한 감성의 목소리는 한 세기를 풍미한 세계적인 바리톤 피에로 카푸칠리(1929~2005)가 떠오른다는 평을 듣는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정상급 오페라 가수 반열에 올라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인 그는 2004년 선화예고 3학년 때 홀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2011년 비냐스 콩쿠르 3위, 2012년 베르디 콩쿠르와 비오티 콩쿠르 2위 그리고 툴루즈 콩쿠르 우승 등 유수의 국제 콩쿠르를 휩쓸었고 현재 이탈리아 메이저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9년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디션에서 지휘자 정명훈의 눈에 띄어 그 후로 유럽과 일본, 한국에서 여러 차례 정명훈과 오케스트라 협연을 진행했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했으며 최근에는 남미까지 반경을 넓혔다.

 

탁월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음색, 발군의 표현력은 젊은 성악가들 중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이탈리아 레퍼토리 특히 벨칸토 오페라에 두각을 보여 ‘라 보엠’ ‘세비야의 이발사’ ‘사랑의 묘약’ ‘청교도’ ‘시몬 보카네그라’ ‘나비부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에 출연해 왔다.

2014년은 각별한 해였다. 9월 서울시향의 콘체르탄테 바그너 ‘라인의 황금’에서 도너(천둥의 신) 역으로 완벽에 가까운 가창을 들려주며 이탈리아를 넘어서 독일 레퍼토리로의 확장을 멋지게 선언했다. 이어 11월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명훈과 베니스 페니체 극장에서 ‘시몬 보카네그라’ 무대를 마쳤다.

◆ 딕션과 뉘앙스 완벽히 구축...현지 가수들보다 더 ‘이탈리아적’ 평가

어린 시절 테너를 하고 싶었으나 성대가 바리톤에 적격임을 판정받은 뒤 적잖은 고민에 시달렸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중3 때 일찌감치 바리톤으로 파트를 정하면서 좌고우면하지 않은 채 한 길로 매진할 수 있었다.

자신이 부르는 가곡의 배경인 이탈리아 문화 및 언어에 대한 궁금함에 시작한 유학생활. 4~5년차쯤 됐을 때 회의가 엄습했다. 집안 형편의 어려움, 타국 생활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파고였다. 이런 고비를 이겨내게 해준 원동력은 ‘노래’와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이 많고 따뜻해요. 그들의 사랑, 인간적인 면이 가슴을 파고들더라고요. 이와 함께 콩쿠르에 부단히 참가하면서 잊어버리고 그러다가 데뷔하면서 확고하게 재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 많은 분들이 세계적으로 비중이 더 강해진 독일무대로 옮기라고들 권유하시는데, 이곳에 더 있으려고요. ‘이탈리아 클래식계를 정복하자’는 목표를 이루고 싶거든요. 하하. 승부욕이 강해서 성취를 해야 마음을 놓는 성격이에요.”

 

목소리와 음악성은 타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과의 경쟁은 뼈를 깎는 노력의 연속이어야 했다. 그는 ‘현지 가수들보다 언어를 더 잘 해야겠다’는 난망해 보이는 목표를 세웠다.

“언어의 딕션과 뉘앙스는 말할 때와 노래할 때 다르거든요. 평상시 회화야 제가 그들만큼 유창할 순 없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가능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표현력을 위해 엄청난 연구를 했어요. 이후 공연 비평에 ‘딕션이 좋다’ ‘이탈리아노 같다’란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과거 한 공연에선 노년의 청중들이 ‘꼬레아노가 말하는 게 이탈리아 가수보다 더 잘 들린다. 믿을 수가 없다’란 말씀을 해주셨을 정도예요. ‘이뤄냈구나’란 생각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죠.”

◆ “남을 이기려고 노래하기보다 즐기려고 노래하며 색깔 찾아”

올해 하반기에만 ‘세빌리아의 이발사’ ‘라보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네 작품에 출연이 예정돼 있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라보엠’은 내년 시즌까지 공연을 해야 한다. 3월에는 서울에서 자신의 장기인 벨칸토 레퍼토리로 다시금 무대를 꾸밀 계획이다.

“지금보다 젊은 나이 때는 배역이 많은 테너보다 레퍼토리가 적은 점이 아쉬웠어요. 바리톤은 목소리의 중후함으로 인해 아버지나 나이 많은 인물이 다수거든요. 하지만 고결한 인물부터 악역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큰 진폭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선 행복해요. 오래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20대에는 ‘세계를 지배하는 30대 바리톤’을 꿈꿨다. 30대를 눈앞에 둔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이나 궁금한 눈치였다. 포부도 꽤나 커 보였다.

“되돌아보면 남을 이기려고 노래하기보다 즐기기 위해 노래하면서 나의 색깔을 찾은 것 같아요. 앞으론 이탈리아와 한국 성악계에서 ‘바리톤=김주택’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후배들한테는 롤 모델이 되고 싶고요. 연주자는 돈을 못 번다는 편견을 깨트리고(웃음) 그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고 싶어요.”

[취재후기] 얼마 전 2015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미술작가 임흥순이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의 소식을 전하자 베니스와 로마, 피렌체의 유명 오페라극장을 누비는 김주택은 자신의 일마냥 기뻐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삶의 깊은 연륜이 느껴지는 바리톤 목소리로 캐릭터에 완벽하게 젖어드는 성악가이지만, 무대 밖에서 그는 20대의 혈기가 완연하게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