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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된 윤봉우, 그가 말하는 배구 '이츠발리' [SQ인터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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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된 윤봉우, 그가 말하는 배구 '이츠발리' [SQ인터뷰②]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2.21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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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윤봉우(39) 이츠발리 대표는 이미 2015~2016시즌 천안 현대캐피탈에서 플레잉코치로 뛴 경험이 있다. '은퇴'를 멀리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만큼 코트를 떠난 이후의 진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V리그와 국가대표팀 경력을 통해 쌓아올린 이름값을 감안하면 프로나 대학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었겠지만 그는 풀뿌리 배구 일선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한복판 서초구 반포동에 '이츠발리(It's Volley)'라는 배구 트레이닝 센터를 차리고 '재밌고 쉬운 배구'를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일본에서 보내며 해외무대를 경험한 영향이 컸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 경계가 허물어진 일본의 배구 문화를 지켜보면서 은퇴 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의 활약으로 배구 인기가 올라온 이때 배구 저변을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며 맨 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본 인터뷰는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남자배구 레전드 센터 윤봉우 대표는 은퇴 후 서울 한복판에 배구 아카데미를 오픈했다.

◆ 한국배구가 나아갈 길, 내가 할 수 있는 것

윤봉우 대표가 배구 아카데미를 차린 지 2개월여. 지난 시즌까지 의정부 KB손해보험에서 뛴 리베로 김진수 코치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유치부부터 성인 취미반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상대로 배구의 짜릿한 손맛을 전하고 있다. 

윤 대표는 지난여름 은퇴 후 3개월 정도는 정말 원 없이 쉬었단다. 다른 취미를 붙여보려 했지만 결국 돌고돌아 다시 배구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에야 본인이 있어야 할 곳으로 온 것 같다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레슨을 하고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기에 빠져있으니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혹여 나중에 도움이 될까 선수시절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 학위를 따뒀다. 홍보는 어찌어찌 해결해도 회계나 세무는 문외한이라 배움의 연속이다. 아내는 CS(고객응대)를 맡고 있다."

프로배구 레전드였기에 프로나 대학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지난 시즌 일본 나고야 울프독스에서 뛰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 클럽 산하 유스팀에서 아이들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방법을 접한 게 아카데미를 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유소년팀이 성인 프로팀과 같은 체육관에서 훈련을 한다. 프로팀 코치가 유스팀 감독인 경우도 많다. 7~8세 아이들을 지도하는 걸 지켜보니, 처음부터 배구를 알려준다기보다 배구에 필요한 기능들을 공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더라. 재미를 느끼고 계속해서 배구를 하고 싶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후에는 성인 팀과 같은 배구 철학을 공유하면서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윤봉우 대표는 프로 데뷔만 보고 달려가는 엘리트 배구가 아니면 배구를 접할 길이 많지 않은, 엘리트 배구를 시작하면 승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결이 다른 일본의 배구 문화를 접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배구 인프라가 열악한 한국에도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에서 보고 느낀 게 크다. 한국에 필요한 거라 생각했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 내에 농구 아카데미는 많다. 서울에 농구부가 있는 학교가 9개, 배구는 남녀부 통틀어 5개라고 한다. 배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적은 만큼 시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무료 오픈수업 위주로 했고, 이제 막 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냐에 따라 배구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잘해야 한다."

수원 한국전력과 서울 우리카드에서 함께한 신영철 감독이 윤 대표에게 "왜 안정적인 프로팀 코치 놔두고 그걸 하냐"면서 "넌 머리가 똑똑해서 잘 할 거야"라고 덕담을 해줬다고 한다. 확실히 주변 배구인들이 가지 않은 길인 만큼 위험부담이 적지 않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따르는 설렘과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배구가 어렵지 않고 재밌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 레전드의 외침 "배구 어렵지 않아요"

한국에서 배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 윤봉우 대표의 이츠발리가 내세우는 키워드는 재미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을 깨고 싶다. 처음 접한 사람도 '배구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하면 쉽다'라는 걸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도하고 있다. 선수를 목표로 한다면 기본기, 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우리 때 그랬듯 반복 훈련만 시키면 질리기 마련이다. 본인이 얼마나 재미를 느끼냐가 중요하다. 선수들의 미니게임, 웜업게임을 변형해 흥미 위주 교육을 하고 있다."

프로배구 원년부터 뛴 데다 해외에서도 선수생활을 했다.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서봤던 배구인이지만 지도자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일반인들을 주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연구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일본 팀에서 내가 받은 훈련, 유소년 선수들이 진행한 훈련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왔다. 외장하드디스크 2개 반 분량에 달한다. 지금도 계속 찾아보고 있고, 일본에서 함께했던 코치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또 느낀 게 교류의 중요성이다. 외국의 좋은 것들을 빨리 빨리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한국 배구계가 갇혀있고, 고여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일본 팀과 교류도 추진할 계획이다. 나중에는 엘리트 팀들이 참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 유소년 대회에도 출전하는 게 목표다."

지도자로서도 사업가로서도 첫 발을 내디뎠기에 아직은 서툴지만 포부만큼은 다부지다.

'이츠발리'라는 상호에는 그가 생각하는 배구, 알려주고 싶은 배구가 담겼다. "뭐가 배구일까. '결국 내가 하는 게 배구 아닐까'라는 생각에 어려운 용어 대신 간단명료하게 갔다. 로고에도 배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도와서 하는 것, 너와 내가 모두 재밌어야 배구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프로에서 산처럼 높은 블로킹 벽을 세워 '마운틴 블로커'로 통했던 그는 이제 가장 낮은 곳에서 달라진 배구 인기를 실감하고 있기도 하다. 올림픽으로 달라진 여자배구 위상을 체감한다.

"성비 65대35 정도로 여자가 많다. 여학생들이 취미로 할 수 있는 구기종목이 적지 않나. 여자배구의 인기를 실감한다. (김)연경이 덕에 많이 커졌고, 이제는 남자배구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잘 돼야 한다. 남자배구와 여자배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다. 같이 커지면 서로 도와주는 격이다."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인기에 힘입어 여자축구 동호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마음만 먹으면 축구할 수 있는 곳은 지척에 있다. 아직까지 배구는 그렇지 못하다. 윤봉우 대표는 배구를 향한 관심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하는' 방식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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