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49 (목)
조작에 공분, 시청자는 '골때녀'를 스포츠로 봤다 [기자의 눈]
상태바
조작에 공분, 시청자는 '골때녀'를 스포츠로 봤다 [기자의 눈]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12.27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조작 논란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제작진이 2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냈지만 성난 팬심을 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분명 카테고리는 예능이긴 하다. 하지만 '골때녀'가 인기를 끈 이유가 스포츠가 지닌 진정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걸 간과한 처사 탓에 뭇매를 맞고 있다. 

스포츠판 최고 캐스터로 통하는 배성재 아나운서가 직접 개인방송을 통해 눈물을 보이면서 사과하고, 입장을 밝힌 이유다. 명백히 시청자들을 기만한 행위였다.

SBS는 지난 24일 "방송 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꿔 시청자들께 혼란을 드렸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장면은 지난 22일 방송된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 간 맞대결. 이날 방송에선 구척장신이 3-0으로 앞서다 2골을 내준다. 이후 양 팀은 재차 골을 주고받으며 4-3으로 팽팽히 맞서다 구척장신이 2골을 더 보태 6-3으로 승리한다.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 공식 홈페이지 캡처]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방송 내용과 달리 중계진 옆에 자리한 스코어판에는 4-0이라 적혀있었고, 네티즌들은 관중석에 앉아있던 출연자들의 위치, 물병의 갯수까지 분석하면서 경기 과정이 편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상황을 종합하면 경기 시작 후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구척장신이 5-0으로 앞선 채 전반이 마무리됐고, 후반에 원더우먼이 3골을 따라잡아 최종적으로 6-3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SBS는 "지금까지의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된 내용과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며 조작 의혹을 인정했다. 이어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고, 편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에도 비판 여론은 거세다. 이후에는 해당 경기를 해설한 배성재 아나운서와 개그맨 이수근이 편집 조작을 알면서도, 후시녹음으로 거짓된 경기 정보를 전달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배 아나운서는 '3-2', '4-3'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실제 경기 내용대로면 나온 적 없는 상황이라 조작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낳는다.

출연진에 대한 비난에 SBS는 2차 입장문을 통해 "이번 일은 배성재, 이수근과는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연출진 편집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라며 "두 진행자는 전혀 무관하며, 두 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두둔했다.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 공식 홈페이지 캡처]
골때녀 제작진이 내놓은 사과문.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 공식 홈페이지 캡처]

골때녀에서 현재 감독으로서 FC개벤져스를 이끌고 있는 2002 월드컵 레전드 김병지 감독 역시 지난 2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꽁병지TV'를 통해 "내가 SBS 모든 것을 대변할 순 없다. 답변 드릴 수 있는 정도만 드리겠다"며 입장을 전했다.

그는 "골때녀를 예능이 담겨 있는 스포츠로 봤다. 거기 200명의 스태프가 있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과정, 내용들을 알지 않나. (제작진에서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안 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범주는 편집에 의해 재미있게 해도 된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지 감독은 이어 "우리는 편집이라 생각했지 어떤 스코어를 만든 건 아니다"라며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고 감독들도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를 가지고 PD님, 스태프들이 재미있게 구성한 편집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이 경기 내용 순서를 바꾸는 등 편집은 했지만 결과를 바꾼다거나 사전에 승부조작을 모의한 사실은 없었다는 게 김 감독 항변의 요지다.

골때녀 제작진은 예능인이고, 예능의 관점에서 결과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과정은 재미를 위해 일부 편집을 가미해도 될 것이라 판단한 듯 보인다. 이후 사과했지만 팬들이 진짜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진 못한 듯하다.

스포츠는 결과 못잖게 과정이 중요한 분야다. 구척장신이 전반에만 5-0까지 점수 차를 벌렸을 때 백지훈 구척장신 감독이 선배인 이천수 원더우먼 감독 눈치를 살피는 것도, 원더우먼 송소희가 연달아 득점했을 때 골키퍼 박슬기가 대성통곡하는 것도 개연성이 생긴다. 방송에선 그들의 감정도 아슬아슬하게 오려져 다른 식으로 붙여넣기 됐다. 재미를 극대하하겠다며. 원더우먼 골키퍼 박슬기는 팀이 한창 추격하고 있을 때 실수로 팀을 패배로 몰았다며 애꿎은 욕 세례를 감내해야만 했다.

'골때녀' 조작 논란을 낳은 장면. [사진=커뮤니티 캡처]
'골때녀' 조작 논란을 낳은 장면. [사진=커뮤니티 캡처]

스포츠는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골때녀에는 각본이 있었고, 엄연히 조작이 존재했다. 스포츠에서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것들을 모두 무너뜨렸으니 공분할 수밖에 없다. 팬들은 골때녀가 보여주는 축구의 수준이 높아서 보는 게 아니다. 축구에 문외한이던, 축구가 처음이던 연예인들이 축구에 진정으로 매료돼 잘하진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것에 감정이 동했던 것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팬들이 많은 건 골때녀 제작진을 향한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척장신과 원더우먼의 경기뿐만 아니라 개벤져스-액셔니스타 경기와 시즌1 몇몇 경기들까지 조작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출연진의 열정을, 전후사정을 잘 보여주며 그 진정성을 부각했던 제작진이기에 실망감이 상당하다. 배성재, 이수근 두 해설진뿐만 아니라 몸을 불살랐던 출연진과 본업을 뒤로하고 뛰어든 감독진의 진정성마저 훼손시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자축구 활성화에 이바지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대한축구협회(KFA)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던 골때녀가 아닌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합뉴스를 통해 "결과야 같을 수 있지만, 과정을 즐기는 게 스포츠인데, 이를 조작했다면 시청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지금까지 보여진 흥미진진한 상황들이 모두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편집으로 그런 결과들이 나왔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신뢰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골때녀를 스포츠로 받아들인 시청자 상당수가 골때녀의 골 때리는 편집에 정이 떨어졌다. 0-5로 지고 있던 원더우먼이 3골 반격한 것만 해도 충분히 스포츠의 멋과 감동을 담아낼 수 있었건만 골때녀는 선을 넘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