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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는 그녀들, 여성 축구의 지형을 바꾸다! [SQ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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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는 그녀들, 여성 축구의 지형을 바꾸다! [SQ스페셜]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02.10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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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지난해 하반기 가장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TV프로그램 중 하나는 SBS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다. 시청률 10%를 육박하며 동시간대 1위,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중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프로그램상, 최우수상, 감독상, 올해의 예능인상(이상 박선영), 우수상(주장단) 등 뜨거운 인기를 방증했다.

단순히 프로그램의 흥행 측면으로만 접근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골때녀는 시대를 관통하는,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SBS 축구 예능 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이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며 여성 축구 참여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이현이 인스타그램 캡처]

 

◆ 골때녀가 준 신선한 충격, 축구가 이렇게나 매력적이었나!

그동안 거리감이 있었던 여성과 축구를 한층 가까워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게 골때녀다. 상당수 여성들이 월드컵 때가 아니면 축구라는 스포츠와 거리가 있었다. 직접 필드에 나서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골때녀 이후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일었다. 골때녀가 여성 생활체육 지형도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켰는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골때녀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굳게 자리매김했다. 기존 스포츠 예능과는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JTBC 예능 ‘뭉쳐야 찬다’가 흥행하긴 했으나 대체로 스포츠와 예능은 맞지 않는 옷과 같은 느낌이 강했다. 몇 차례 실험적인 시도는 대체로 마니아 층 팬덤을 남겼을지언정 대중성과는 괴리가 있었다.

기존 스포츠 예능이 대박 효과를 누리지 못했던 건 불분명한 방향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예능적인 요소만을 녹여내자니 본래 취지가 모호해지고 그렇다고 운동 자체에 진정성을 담자니 실력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골때녀의 흥행은 퍽 흥미롭다. 뭉쳐야 찬다의 흥행 이유와 닮은 점이 있다. 첫째는 성장성이다. 한국 체육계 전설들로 구성했으나 이들에게 축구라는 종목은 생소하기만 했고 그만큼 성장세가 가팔랐고 이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포츠, 특히 축구를 직접 해본 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골때녀 참가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공을 발에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룰도 몰랐던 이들이 전하는 자연스러운 재미는 덤으로 작용했다.

여기서 골때녀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진정성이 한층 더해졌다. 

몸을 사리지 않는 출연자들의 열정은 보는 이들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동시에 여성들에게 축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SBS 홈페이지 캡처]

 

참가자들은 녹화가 없는 날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모여 훈련을 했고 개인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몸을 바쳐 플레이하다가 깁스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눈물바다가 됐다. 시청자들은 이들에 동화돼 함께 눈물을 흘렸고 감동했으며 이들을 열렬히 응원하게 됐다. 공 하나에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스포츠의 매력이 얼마나 크게 심금을 울릴 수 있는지 골때녀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이제 관심은 대체 축구가 무엇이기에 출연진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축구에 몰두하고 눈물을 흘리고 부상을 불사하며 달려들고 있는 지로 이어졌다.

◆ 골때녀 신드롬, 더 이상 축구는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치 일종의 신드롬과 같다. 단순히 골때녀를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포츠 참여에 대해 품고 있던 열망이 골때녀를 통해 분출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축구는 남자들만의 취미, 관전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의 확장이 이뤄지게 된 것. ‘나도 한 번 해볼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와 같은 궁금증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축구는 11명씩 팀을 이뤄 22명이 하는 구기 스포츠다. 이 보다 작은 규모에서 펼칠 수 있는 풋살의 경우에도 10명 가량은 있어야 가능하다. 뜻이 맞는 건 물론이고 시간도 맞춰야하기에 함께 공을 찰 인원을 모으기가 쉽지 않지만 이를 해결해주는 플랫폼이 이미 생활축구인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구장을 대관한 뒤 참가자를 모집해 매칭을 주선하는 플랫폼이 등장했다. 혼자서라도 편한 시간대에 축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 빠르게 사업은 성장세를 타고 있다.

골때녀 이후 여성들의 생활 체육으로서 축구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플랩풋볼에 따르면 여성 매치는 남성 경기에 비해 훨씬 빨리 신청자가 마감되는 등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부족할 정도다. [사진=플랩풋볼 인스타그램 캡처]

 

이 같은 플랫폼은 여성들의 축구 참여도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선 여성 축구, 여성 풋살 등에 대한 키워드 검색량이 골때녀 방영일마다 고점을 치솟았다. 

지난해 6월 정규 편성된 이후 효과가 더욱 확연히 나타났다. 이 같은 플랫폼의 대표격인 플랩풋볼 측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여성 신규가입자는 전월대비 45.2% 증가한 562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시즌1 막바지인 10월엔 전월 대비 222.2% 상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참가자 형태를 봐도 ‘축린이’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플랩풋볼엔 2경기 이상 참여하면 매니저가 이들의 실력 레벨을 볼 수 있는데, 여성은 입문자, 초급자라 할 수 있는 레벨2 이하가 55%에 달했다. 그만큼 축구라는 스포츠에 새롭게 도전해본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

업계에서 느끼는 여성 참가의 실제 체감 열기는 더욱 뜨겁다. 플랩풋볼 측은 “여성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라며 “여성 매치는 남성 매치에 비해 마감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보통 5~7일 전에 신청을 완료한다”고 말했다.

골때녀에 출연 중인 모델 출신팀 FC 구척장신의 트레이닝을 돕고 있는 고알레 이야기도 궤를 같이 했다. 고알레는 생활체육인을 위한 트레이닝과 축구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호 고알레 대표는 “골때녀 이후 구척장신 선수들이 전문 선수들 못지않게 열심히 하는 걸 눈으로 지켜봐왔다. 최근엔 여성 축구팀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러한 변화 흐름에 발 맞춰 여성 전용 콘텐츠도 제작해 여성들에게 축구 매력을 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FC 구척장신의 트레이닝을 돕고 있는 고알레. 아이린(오른쪽) 등을 비롯한 선수들은 녹화일 외에도 꾸준히 훈련에 전념하고 축구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알레 인스타그램 캡처]

 

◆ 골때녀 여성 축구 팬심과 지형을 바꾸다

골때녀가 아무리 흥미롭고 최근 축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해도 여성들이 필드로 직접 나서게 된 원인을 온전히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여성 생활 축구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엄다영 씨의 이야기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엄 씨는 연세대학교 여자축구 동아리 ‘W-KICKS(떠킥)’에서 만난 두 친구 임선영, 김선경 씨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중인 ‘키킷(KICKiT)’ 일원이기도 하다.

선수로서는 떠킥의 에이스로서 2019년 전국대학여자축구대회 샤컵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고 100만 구독자를 돌파한 축구 관련 대표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Shoot for Love)’에 여성 축구인 대표격으로 참가해 파울로 디발라(유벤투스)를 연상시키는 왼발 킥력으로 ‘엄발라’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여성 입장에서 느끼는 축구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는 이전까지 여성들이 축구에 대해 느낀 진입장벽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학창시절부터 직접 운동하는 경험을 못하는 분들도 많다. 하고 싶어도 주변에 하는 사람이 없는 등 주변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매력을 못 느끼고 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골때녀 이후 확연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만 전적으로 골때녀 영향이라기보다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스포츠 참여에 대한 열망이 꿈틀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골때녀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점점 니즈가 강해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원래 축구하면 떠오르는 건 격렬하고 어렵고 정형화된 남성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데 방송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같다. 엄두를 못 냈던 이들에게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번 해볼 수 있겠다’고 용기를 불러 일으켜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아직은 적극적인 외부활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연세대학교 축구 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여성 생활 축구인의 대표격으로 떠오른 엄다영(왼쪽) 씨는 "한 번 경험하면 누구라도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게 축구의 매력인 것 같다"고 밝혔다. [사진=스포츠Q DB]

 

엄 씨가 바라보는 미래도 밝기만 하다. 그만한 매력이 있는 게 축구라는 것. “그동안은 여러 여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팀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혼자가 아닌 팀원들과 함께 땀 흘리며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걸 경기장에서 느꼈을 때 그 희열. 경험 해보지 못하면 모를 수밖에 없지만 한 번 경험하면 누구라도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게 축구의 매력인 것 같다”고 밝혔다.

플랩풋볼 관계자는 “축구의 매력은 다른 종목과 다르게 발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손과 다르게 단련하기 힘든 신체부위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다뤄야 한다. 그 어려움 속에 내가 생각한 대로 패스를 하고 슛을 해냈을 때 얻는 쾌감은 이루 설명하기 힘들 것”이라며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 넘게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데 거기서 펼쳐지는 무한에 가까운 상황도 재미를 유발한다. 같은 시공간에 모여도 플레이는 매번 다르고 똑같은 골은 하나도 없다. 질리지 않는 재미가 축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더 이상 골때녀 흥행을 단순히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으로만 해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골때녀는 여성들에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축구 매력을 전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프로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과거 같지 않다. 스포츠 외에도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무한히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프로야구의 경쟁 상대를 프로축구라고 보던 시대는 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런 가운데 반대로 여성들에겐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낯설지만 흥미로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축구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아직 멀었다’고 외친다. 여성이 마음 편하게 축구를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이는 여성의 취미 생활로 축구가 얼마나 더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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