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8:29 (토)
정재원 은메달, 4년 전 그 '페이스메이커'의 눈부신 성장
상태바
정재원 은메달, 4년 전 그 '페이스메이커'의 눈부신 성장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2.02.19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스스로를 거북이라고 말했듯 천천히 또 묵묵히 성장해내면서 최강자들과 승부에서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선배 이승훈(IHQ)이 금메달을 따내는 데 일등 조력자 역할을 했던 정재원(21·의정부시청)이 4년 뒤 베이징에선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한국 선수단에 값진 은메달을 선사했다.

정재원은 19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바르트 스빙스(벨기에)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7분47초18의 기록으로 스프린트 포인트 40점을 챙기면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총 16바퀴를 뛰는 매스스타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이례적으로 여러 명의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경쟁하는 종목이다. 스프린트 포인트를 합산해 순위를 가른다. 4·8·12바퀴를 돌 때마다 1∼3위 선수에게 스프린트 포인트 3·2·1점이 차등 지급되고, 마지막 바퀴 1위가 60점, 2위가 40점, 3위가 20점, 4위가 10점, 5위가 6점, 6위가 3점을 챙긴다.

사실상 마지막에 웃는 3인이 포디엄에 드는 경기다. 평창 때 이 종목에서 정재원의 도움을 받아 막판 스퍼트로 금메달을 획득한 이승훈 역시 이날 마지막 코너에서 선두로 치고나왔지만 이어진 직선 주로에서 살짝 밀려나면서 3위로 들어왔다. 7분47초20으로 스프린트 포인트 20점을 얻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연합뉴스]
평창에선 이승훈(오른쪽)의 조력자로 나섰던 정재원(왼쪽)이 4년 후 베이징에선 더 높이 날아올랐다. [사진=연합뉴스]

평창 올림픽에선 역할을 나눠 작전을 세우고 나와 이승훈의 우승을 합작했던 둘은 이번엔 팀으로 움직이기보다 각자 레이스에 최선을 다했다. 이승훈이 마지막 코너에서 가장 앞쪽으로 나오면서 레이스를 흔들었고, 역시 상위그룹에 있던 정재원이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속도를 올려 경쟁한 끝에 간발의 차로 메달 색이 갈렸다.

챔피언 스빙스의 기록이 7분47초11인데, 정재원이 7분47초18, 이승훈이 7분47초20이었으니 말 그대로 초박빙의 승부였다. 

평창 대회 당시 빅토르 할트 토르프(덴마크)와 리비오 벵거(스위스)가 레이스 초반 갑자기 속력을 높여 다른 선수들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위기감이 감도는 순간 당시 16세로 대표팀 막내였던 정재원이 2위 그룹에서 치고나갔다. 그가 2위 그룹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한 덕에 1·2위 그룹 격차는 더 벌어지지 않았다.

레이스 초반 힘을 쏟아낸 정재원은 체력이 떨어지면서 메달권에서 멀어졌지만, 2위 그룹에서 힘을 비축한 이승훈이 막판 스퍼트로 짜릿한 역전 우승을 일궜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이승훈은 정재원의 손을 번쩍 들며 공을 치하했다.

정재원의 희생으로 한국은 금메달을 추가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어린 선수를 희생양 삼았다는 지적도 따랐다. 당시 동북고에 재학 중이던 정재원은 "내겐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남았던 순간"이라며 비판에 반박했지만, 부정적인 시선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정재원은 4년간 주역으로 올라설 준비를 착실히 했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매스스타트 페이스메이커, 여자 팀 추월 왕따 주행 의혹 등 각종 논란을 빚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강도 높은 감사를 받고 관리단체에 지정되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정재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꾸준히 훈련에 집중하며 한국 매스스타트 간판으로 성장했다. 2019~2020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대회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2위에 올랐고, 월드컵 6차대회 파이널에선 명승부 끝에 극적으로 우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0~2021시즌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올 시즌엔 각종 국제대회에서 다시 경기감각을 끌어올리며 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변수가 많은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 3차대회 매스스타트에서 4위, 4차대회에서 6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4년 전 큰 무대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돌아온 올림픽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이날 레이스를 지켜본 선배 모태범 MBC 해설위원은 "엄청난 발전이다. 오늘 '날'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 내게 셋째 형이 생겼다. (정)재원이 형 잘했어요"라며 기뻐했다. 앞서 이번 대회 메달을 따낸 후배 김민석(성남시청)과 차민규(의정부시청)를 형으로 대접하겠다는 농담을 했던 그가 정재원을 셋째 형이라며 치켜세웠다.

함께 중계한 김나진 캐스터는 "4년 전에는 페이스메이커로 마지막에 탈진하듯 처졌는데, 베이징에선 이승훈보다 높은 곳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만 16세에 평창에서 큰 경험을 했고, 스스로 거북이라고 말했듯 천천히 또 묵묵히 성장해내면서 최강자들과 승부에서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