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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결산⑤] 평화-양보-도전, 감동의 올림픽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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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결산⑤] 평화-양보-도전, 감동의 올림픽 정신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02.2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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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훗날 시간을 돌이켜보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어떻게 기억될까. 17일간 여정을 마친 이번 대회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편파 판정과 외교 보이콧 등 수많은 논란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화합과 도전에 초점을 둔 선수들의 태도만큼은 충분히 빛났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보다 참가 자체에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건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는 근대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을 일깨워주는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편파 판정과 반칙, 혐오 등의 정서가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도 선수들이 보인 페어플레이 정신은 스포츠가 지닌 참 가치를 깨닫게 했다.

ROC 일리아 부로프(왼쪽)가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은메달을 차지한 우크라이나 올렌산드르 아브라멘코를 껴안아주며 축하를 전하고 있는 장면. [사진=AP/연합뉴스]

 

이번 대회 ‘포토제닉’을 꼽는다면 단연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에서 나온 장면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는 화려한 점프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크라이나가 챙긴 첫 메달. 함께 경쟁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일리아 부로프는 아브라멘코의 은메달이 확정되자 그에게 다가가 백허그를 했다.

이번 대회 도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극심하게 고조됐다. 유럽연합(EU)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자신들의 이념과 반대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러시아가 무력 행사에 나선 것. 연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국가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부로프는 아브라멘코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잡고 꼭 껴안으며 축하를 전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올림픽 정신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일본)의 국적을 떠난 우정은 2018년 평창 대회 때에 이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4년 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나란히 레이스를 펼치고 1,2위에 오른 둘. 금메달을 목에 건 고다이라는 국내 팬들 앞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치르고 복잡한 심경에 눈물을 쏟은 이상화를 위로하며 감동을 안겼다.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상화(왼쪽)는 중계석에서 4년 전에 라이벌로 대결했던 고다이라 나오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나타냈다. 이후 둘은 반갑게 조우하며 애틋한 감정을 나타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엔 이상화가 화답했다.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중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상화는 디펜딩 챔피언 고다이라의 부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더니 눈물까지 보였고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상화를 찾은 고다이라는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후 4년 만에 조우한 둘은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양보의 가치도 빛났다.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브리트니 보는 지난달 여자 500m 미국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지만 3위로 탈락한 에린 잭슨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양보했다. 잭슨은 이번 대회 이 종목에서 37초04로 우승,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트 사상 최초 흑인 여자 메달리스트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잭슨은 월드컵시리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도 대표 선발전에서 부진했는데 보는 자신보다 잭슨이 올림픽에 서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에 통큰 양보를 결정했다. 해피엔딩이었다. 다른 나라 선수 한 명이 불참하면서 보 또한 추가 명단에 포함돼 잭슨과 함께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금메달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자세로 박수를 받은 이도 있다. 개최국 중국은 편파 판정의 많은 수혜를 누리며 비판을 받았는데 중국 스노보드 쑤이밍은 이와 달리 남자 슬로프스타일 결선에서 오심에 따른 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쳤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브리트니 보(오른쪽)에게 양보를 받고 나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에린 잭슨.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국제스키연맹(FIS)에서도 사실상 오심을 시인했을 정도로 명백한 사안. 개최국 파워를 등에 업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쑤이밍은 결과를 받아들였고 팬들에게 심판에 대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며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투병 생활을 이겨내고 올림픽 무대에 우뚝 선 이들의 스토리도 감동적이었다. 스노보드 남자 슬로프스타일에 출전한 캐나다 맥스 패럿은 2018년 12월 림프계 암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 긴 투병 생활을 했지만 병상에서 일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네덜란드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싱키 크네흐트도 2019년 2개월 가량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한 화상을 당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올림픽 무대에 섰다.

국내 스타들의 도전도 빛났다. 여자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강원도청)은 지난 대회 은메달에서 이번 대회 5위로 떨어지고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4년 전 당시 ‘왕따 주행’ 가해자로 몰리며 국민적 비판을 받아야 했던 그는 은메달 수확 후에도 환히 웃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 도중 당시 피해를 주장했던 노선영에게 일부 승소한 재판 결과가 나왔고 여론이 크게 바뀌었다. 많은 응원 속에 대회에 나선 김보름은 아쉽게 메달을 놓치고도 대회를 마친 뒤 만족감을 나타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넘어지며 손을 크게 다쳤던 박장혁(스포츠토토)은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출전을 감행해 계주에서 값진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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