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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춤꾼 김환희, '나는 달린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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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춤꾼 김환희, '나는 달린다'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20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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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모다페 초청 공연 '달리기'로 22일 관객과 만나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19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는 현대무용 축제인 ‘2015 국제현대무용제’(이하 모다페)에는 7개국 226명의 내로라하는 기성, 신진 현대무용수들이 참여한다. 이 가운데 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질주할 ‘달리기’로 국내 안무가 초청 공연에 나서는 김환희(29)는 유쾌한 춤꾼이다. 구불거리는 부스스한 머리와 검은색 뿔테안경, 얼굴 표정부터 장난기가 가득하다. 악동 포스가 솔솔 풍긴다.

 

◆ 인생의 선택, 성공과 실패 담은 ‘달리기’로 모다페 초청

그가 발표한 ‘달리기’ ‘몬스터’ ‘드림 오브 드림’ ‘렛잇비’ ‘어른아이’ ‘블랭크’ ‘뉴턴의 법칙’ ‘동키호테’ 등은 한결같이 밝고 유쾌한 기운이 넘친다. 시종일관 웃다가 끝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성격을 반영해서다.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많은 없는 공연이다. 지난해 서울대 안무상 수상작인 ‘몬스터’는 부패 정치인을 풍자하고,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 학교 후배가 대사와 마임을, 그가 춤을 맡은 형식 파괴의 2인무였다.

“아직은 제 색깔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물을 봤을 때 전 웃긴 쪽으로 자꾸 생각을 하게 돼요. 낙천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많이 노력하죠. 재밌는 게 좋고, 웃는 게 좋잖아요. 그렇다고 진지함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드러내기보다 작품에 내재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공연들이고요. 자금을 비롯해 환경이 갖춰진다면 ‘몬스터’처럼 실험적인 작품들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모다페 초청작인 ‘달리기’는 인생이란 트랙에서 마주하는 꿈과 선택의 갈림길, 성공과 실패를 6명 남성 무용수의 몸짓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간 그가 만들어온 작품과는 결을 달리해 ‘유쾌함’을 최대한 배제했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자는 몸짓에 관객은 어렵지 않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 2015 모다페 초청작인 김환희 안무 '달리기'

‘달리기’(러닝타임 20분)는 지난해 부산국제무용제 AK21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달리기’에 무용수로도 참여해왔던 김환희는 3주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 이번엔 무대에 오르질 못한다. 따라서 출연진 6명을 5명으로 조정해 공연할 예정이다.

◆ 2013년 결혼, 두 아이 아빠의 책임감 안은 채 무대 누벼

고교 2학년 때부터 무용을 시작했다. 아버지 친구인 연극배우의 마임공연을 보러갔다가 육체 언어에 신선한 충격을 얻었다. 기초를 닦기 위해 동네 무용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춤에 대한 꿈을 구체화, 고3 무렵엔 본격적으로 무용에 도전했다.

세종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이 동기다. 이어 동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했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포러리 시니어 남자부문 1위를 비롯해 다수의 무용제에서 입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로 활약했다. 현재 툇마루 무용단 수석 무용수이자 최근 창단한 현대무용단 ‘춤벗’ 대표다. ‘춤벗’의 창립작이 바로 ‘달리기’다.

2013년 한국무용을 전공한 아내와 일찌감치 결혼, 세 살과 두 살배기 아이를 뒀다. 아내와 함께 분당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는가 하면 모교인 세종대 강사(글로벌지식원 실용무용과)로 강단에 서고 있다.

 

젊은 예술가의 표정에선 순간순간 가장의 책임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과거에 비해 많은 무용가들이 배출되고 있으나, 이들이 춤에 매진할 수 있는 현실은 여전히 열악해서다. 연극, 미술, 음악, 무용 등 예술 전 분야를 관통하는 우울한 현상이다.

극소수만이 입성할 수 있는 국립, 시립단체 혹은 유명 단체가 아니면 ‘반 백수’와 같은 삶을 버텨내야 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보면 창작 욕구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버리기 일쑤다. 더욱이 김환희는 아내와 두 아이를 책임지는 가장이다보니 압박감은 곱절에 이른다.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지만 집사람에겐 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해요. 예술한답시고 방랑자처럼 지내는 게 맞는 건지,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워갈지,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는 어떨지 등등 고민이 많죠. 그래도 전 운이 좋은 편이에요. 아내가 제 작업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가 하면, 학원생 지도와 강사 수입으로 가계 수익에 적게나마 보탬이 되고 있으니까요.(웃음)”

◆ 전쟁 경각심 고취하는 ‘Not Over Yet’ 7월 선보일 예정

오는 7월 선보일 차기작 ‘Not Over Yet’은 전쟁을 소재로 했다. 예전부터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랍국가에 대한 폭격을 진행하며 폭죽놀이 보듯 구경하는 동영상을 본 뒤 충격을 받아 안무를 하게 됐다.

 

“여러가지 복잡한 정치적, 민족적 배경이 있겠으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뀐 듯한 모습의 잔상이 강했어요. 남북한이 대치한 우리나라도 아직 전쟁이 끝난 상황은 아니며, 일본과의 위안부·독도·교과서 분쟁 역시 소리 없는 전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폭력의 피해자들도 여전히 전쟁 중일 테고요. 이렇듯 현실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담아낼 예정이에요.”

이제까지 남성 무용수들로만 작품을 구성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여성 무용수 1명을 출연시킬 예정이다. 일종의 모험이다.

“현재는 재활이 시급해 무대에 서긴 힘들지만 춤과 안무, 둘 다 욕심이 많아요. 그러려면 몸을 가꾸고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죠. 무용수로서 평생 해야 할 미션이고요. 소망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채 작품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거죠. 놀이가 일이 되면 스트레스거든요. 일도 놀이처럼 하고 싶어요.”

우리 나이로 서른을 맞은 춤꾼의 어깨에 올려진 삶의 무게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눅눅함을 특유의 웃음으로 이내 건조시켜버린다. 뽀송뽀송한 예술가가 선물할 작품 속 '유쾌한 진지함'이 기다려진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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