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6:22 (금)
'비상선언' 임시완, 의외성에서 피어나는 존재감 [인터뷰Q]
상태바
'비상선언' 임시완, 의외성에서 피어나는 존재감 [인터뷰Q]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2.08.17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탈출구 없는 비행기 안, 목적도 이유도 없이 생화학 테러를 저지르는 미지의 청년. 속을 알 수 없는 맑은 눈으로 웃는 그가 스크린에 나타날 때 느껴지는 생생한 충격. 임시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지난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관상'(2013) '더 킹'(2017) 한재림 감독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최근 스포츠Q(큐)와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임시완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배님들과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었다. 배우라면 누구든지 상상 해 볼만한 기회이지 않을까. 실제로 모든 선배님들과 합을 맞춰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 사연 없는 악역, 오히려 기회로

'비상선언'은 대한민국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를 포함, 이병헌, 전도현, 김남길, 김소진, 박해준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극 중 임시완은 항공기가 무조건 착륙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테러리스트 류진석 역을 맡았다.

그간 선하고 바른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던 임시완이 맡은 역대급 악역 캐릭터, 류진석은 일명 '사연 없는 악역'이다. 이야기는 테러범 류진석의 등장과 동시에 전개되지만, 사건 발생 전 류진석이 살아온 이야기는 대사 한 줄 정도로 설명이 끝난다.

전사(前史)가 없는 류진석 캐릭터는 "늘 연기할 때 당위성을 찾고, 당위성이 흐릿하면 연기하기가 힘들다"고 밝힌 임시완에게 큰 어려움이기도 했다. 

임시완은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 오롯이 진석을 위주로 읽었다. 큰 부담과 동시에 기대감도 있었다"며 "사실 이 작품 선택할 때 만큼은 작품을 거시적으로 볼 겨를이 없었다. 류진석 캐릭터 안에 갇혀있었다.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제게 가장 큰 숙제였다"고 전했다.

"이과적인 마인드라고 할까요. 내가 납득되지 않는 당위성이 포함된 작품이면 배제하려고 하거든요. 근데 진석이라는 캐릭터는 아예 서사가 없었어요. 흐릿한 당위성보다는 오히려 아예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백지에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생긴 거죠. 내 상상만으로 채울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접근했어요. 감독님이 많이 열어주셔서 자유롭게 촬영한 거 같아요"

맑은 눈빛으로 소름끼치는 살기를 연기하는 임시완의 새로운 모습에 관람객들의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당위성이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일명 '돌아버린 눈',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반응까지 이끈 배경에는 나름의 빌드업 과정이 있었다.

"표정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고 준비한 건 아니에요. '돌아있는 사람', 그러니까 정상이 아닌 범주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난 정상이 아니야'라고 접근하면 모순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떤 당위성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생각하며 시작한 거죠."

임시완은 "누구도 알 필요 없는 서사를 혼자서 만들었다. 본인 딴에는 숭고한 실험정신이 있지 않았을까. 순차적으로 일이 진행될 때 쾌감을 느끼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늘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릇된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 귀납적으로 따져봤어요. 살을 덧붙이는 작업을 한 거죠. 저를 대입해보면 체구가 작으니 낯선 곳에서 따돌림을 당했을 수도 있고, 문화적으로 차별하는 시선이 있었을 수도 있고. 살을 붙여서 과거를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아이돌 활동 당시부터 '엄친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임시완, 악역으로 '일탈'하면서 대리만족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류진석은 너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캐릭터다. 대리만족의 범주를 많이 벗어난 캐릭터"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악역 자체가 배우로서 축복이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납득이 되더라고요. 선역은 선역이 지켜야하는 범주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데, 악역은 반드시 어떻게 해야한다는 프레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캐릭터잖아요. 연기하며 해방감을 많이 느끼면서 찍었습니다."

류진석 캐릭터를 통해 해방감은 물론 성취감을 얻기도 했다. 임시완은 "영어 연기를 해야 했는데 흔히 말하는 한국식 영어 발음이 아니라 교포가 하는 영어라서 발음을 굉장히 신경써야 했다. 영어 공부를 발음 위주로 많이 했다. 아직까지 영어 발음이 안 좋았다는 말은 못들은 거 같아서 거기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 '해를 품은 달' 이후 10년, 배우 임시완은?

"'해품달'로 연기 했을 때는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이 작품이 잘돼서 다음 작품이 또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계속해서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꾸준히 연기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보이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데뷔해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속 어린 허염 역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 올해로 연기 데뷔 10년차에 접어든 임시완은 "10년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부담된다. 아직까지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연기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아직도 답을 못한다. (10년차라는 수식어를) 외면하고 싶다"고 손을 내젓기도 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들은 있었다. 과거 '배우의 삶과 일상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마음을 내비쳤던 임시완은 새로운 재미를 찾기도 했다. 임시완은 "너무 떨어져있으면 직업 자체에 애정이 떨어질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예전보다 한 걸음 다가간 부분이 있다면 요즘에는 동료나 선배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을 보고 리뷰를 한다. 직업과 연관돼 있는 취미가 직업적으로도 더 큰 재미를 주는 것 같다"고 답했다.

"연기를 하면서 더 큰 생각을 가지게 됐다면... 한국 콘텐츠가 어디서도 손색없는 콘텐츠라는 생각,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세계 시장과 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불특정 다수가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달라지고 욕심이 커진 것 같아요."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배우로서 임시완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의외의 답을 내놓기도 했다. 임시완은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일반적으로 배우나 연예인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체구가 큰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콤플렉스인데 운동을 안하면 살이 더 빠지고 운동을 해야 그나마 살이 붙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컴플렉스라고 하면 평범한 것의 범주를 넘어서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오히려 정반대 캐릭터로 조합시키면 이질적인 생경함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안목이 좋은 감독님들께서 그걸 역으로 활용해주시면서 의외성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의외성이 저한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10월 촬영을 마치고 오랜 기다림 끝에 관객들 앞에 선 영화 '비상선언'은 지난 3일 개봉해 절찬 상영 중이다.

"연기적으로 정점에 계신 대단한 분들과 함께한 작품이라 개봉 전까지 노심초사했어요. 제가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연기를 연기같이 한 건 아닐까 걱정을 했었는데, 그 걱정에 비해 많은 분들께서 괜찮게 생각해주시는 것에 대해 대단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