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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반란, 흥미로운 스토리 셋 [카타르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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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반란, 흥미로운 스토리 셋 [카타르 월드컵]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12.12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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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독일과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16강에선 스페인이, 8강에선 브라질과 포르투갈이 고배를 마셨다.

이변의 연속인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이변이라는 말은 당연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 팀의 탈락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팀들의 선전이 펼쳐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대회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모로코다.

조별리그에서 벨기에를 울린 모로코는 16강에서 스페인, 8강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4강에 올랐다. 이젠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정조준한다. 모로코만의 특별한 스토리는 더욱 눈길이 끈다.

지난 11일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모로코 유세프 엔 네시리(가운데)와 그를 축하하는 동료들. [사진=AFP/연합뉴스]

 

# 확실한 동기부여, 식민지배 설움 날리다

조 1위 모로코는 16강에서 스페인을 만났다. 스페인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연장까지 120분 동안 양 팀은 득점하지 못했고 승부차기 끝에 모로코가 웃었다. 이 승리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모로코는 19세기부터 유럽 열강의 침략을 받았는데 스페인도 이 중 하나였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해협을 가운데 두고 이웃한 모로코에 전쟁을 선포했고 1860년 불평등 조약을 맺어 최혜국 대우를 강요, 점령지를 확보했다. 모로코엔 너무도 가슴 아픈 역사.

공교롭게도 4강에서 만날 프랑스 또한 모로코에겐 악몽의 국가다.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됐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모로코의 영토를 나눠 지배한 셈이었다. 두 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제 수탈을 벌였다. 모로코 내에선 수십년간 독립을 위해 많은 이들이 힘썼고 희생했다. 그 결과 1956년 드디어 프랑스령 모로코가 독립할 수 있었다. 머지 않아 스페인도 자국령 모로코에 대한 지배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스페인과 상대전적에서 1무 2패로 밀려 있던 모로코는 탄탄한 전력을 앞세워 드디어 앙갚음했다. 모로코 국민들은 프랑스까지 잡아내며 식민지배 설움을 털어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모로코 전력 핵심인 아치라프 하키미(24·파리생제르맹)는 스페인 태생이지만 모로코를 택했고 스페인 격침에 앞장섰다. 왈리드 레그라기(47) 감독은 자신이 나고 자란 프랑스를 상대로 조국의 복수를 꿈꾼다.

식민지배 아픔을 안겼던 스페인을 16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꺾고 기뻐하는 모로코 선수들. [사진=AP/연합뉴스]

 

# 모로코가 쓰는 아프리카 새 역사, 가족의 힘으로!

1970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6번째 월드컵에 나선 모로코는 아프리카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이전까지 아프리카팀의 최고 성적은 8강. 그 또한 1990년 카메룬, 2002년 세네갈, 2010년 가나가 전부였다.

가족의 힘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모로코는 이례적으로 선수단 전원이 부모님과 가족을 대동하고 이들과 함께 숙소를 사용하며 대회에 나서고 있다. 모로코 선수단은 26명 중 14명이 이민 가정 출신.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모로코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후 이민자에게 문을 연 두 국가로 떠났고 하키미와 레그라기 감독 등도 이 때문에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태어나게 됐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가에 대한 애정이 다소 부족할 수도 있었고 레그라기 감독은 이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이들은 모로코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타국에서 편견과 차별 속에 버틴 부모들과 대회 내내 함께하며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게 됐다. 가족과 함께 하며 얻는 심리적 안정은 덤.

4강에서 만날 팀이 프랑스라는 것도 이들의 전투력을 끌어올린다. 직간접적으로 프랑스에 피해를 입었던 부모들의 아픈 기억은 선수단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 전망이다.

모로코 선수단은 이번 대회 내내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포르투갈전 승리 직후 어머니와 기쁨을 나누는 소피앙 부팔(왼쪽). [사진=AP/연합뉴스]

 

# 3개월 앞두고 감독교체, 모로코를 하나로 묶다

월드컵을 앞두고 갑작스레 감독을 교체하는 팀들이 적지 않다. 한국도 몇 차례나 소방수 체제로 월드컵을 치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을 리 없었다.

모로코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건 레그라기가 아닌 바히드 할릴호지치(70)였다. 파리생제르맹 감독을 맡기도 했던 그는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알제를 감독을 맡아 한국에 아픔을 줬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2015년부터는 일본 대표팀을 맡아 3년간 이끌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마치고 한국 대표팀 감독 물망에도 올랐던 그는 이후 낭트를 거쳐 모로코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 팀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올려놨으나 그는 이번 대회에 동행하지 못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에도, 2018년 러시아 대회를 앞두고도 코트디부아르와 일본 대표팀을 본선행에 올려놓고 불 같은 성격 탓에 협회와 충돌을 빚어 월드컵에 함께 하지 못했던 그는 다시 한 번 대회를 3개월 앞두고 경질됐다.

아프리카 축구 최초 4강행을 이끈 레그라기 감독(위)을 선수단이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이번에도 이유는 비슷했다. 주장을 맡은 간판스타 하킴 지예흐(29·첼시)와 누사이르 마즈라위(25·바이레른 뮌헨)의 훈련 태도가 불성실하다며 지적한 그는 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둘을 제외했고 지예흐는 결국 분노해 지난 2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이 둘이 반드시 필요했던 모로코축구협회는 결국 감독 대신 선수를 택했고 대표팀 감독을 경험해본 레그라기 체제로 월드컵을 맞았다.

갑작스런 결정에 불안감이 커졌지만 오히려 선수단은 하나로 똘똘 뭉쳤고 레그라기 감독의 지략과 통솔력 등에 힘입어 이번 대회 최고 돌풍의 팀이 됐다.

모로코는 5경기에서 단 1실점(자책골), 강력한 수비 축구로 이번 대회 최고의 드라마를 써나가고 있다.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을 모두 잡아낸 모로코는 이젠 5경기 11골, 경기당 2골 이상씩을 넣고 있는 프랑스의 화력을 잠재워야 하는 숙제와 직면한다. 모로코와 프랑스는 오는 15일 오전 4시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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