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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에도 굳건했던 전주국제영화제, 시장 바뀌니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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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에도 굳건했던 전주국제영화제, 시장 바뀌니 도루묵?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2.12.15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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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계의 강한 반발에도 배우 정준호를 신인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5일 "집행위원장으로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 배우 정준호 씨를 선출했다. 앞으로 전주국제영화제는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두 집행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민성욱(왼쪽), 정준호.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민성욱(왼쪽), 정준호.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새로운 출발을 알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내년 4월 27일 개막을 계획하고 있다. 영화제 측은 "그동안 우리 영화제는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상영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제일 수 있다는 평가도 받아왔다"며 "이번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의 전환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계 반응은 싸늘하다. 전문성이 없는 배우를 국제적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이 영화제의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는 것이다. 신인 집행위원장 선임을 앞두고 민병록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전주국제영화제는 우범기 전주시장에 손을 들어줬다.
 

◆ 시장 입김 따라 좌지우지되는 영화제

[사진=나혜인 기자]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사진=나혜인 기자]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제 색깔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김승수 전 전주시장의 힘이 컸다. 김 전 전주시장은 8년의 임기 동안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전폭적인 행정 지원과 외압의 울타리게 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 덕에 전주국제영화제는 블랙리스트 위험 속에서도 '다이빙벨', '귀향', '노무현입니다' 등의 영화를 선보일 수 있었다. 

지난 5월 진행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서는 "영화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것을 지키기 위해 8년간 노력해왔고, 저 또한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블랙리스트 정국을 맞이하면서 조직위원장의 역할이 많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를 지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3선 불출마 선언을 한 그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끝으로 자연스럽게 조직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이후 우범기 전주시장이 전주국제영화제 이사장 직을 맡게 되며 영화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주를 거점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에 힘써온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사퇴 건이 대표적이다. 지방선거 이후 운영위원장을 사퇴한 박흥식 감독은 "우 전주시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말로 예산을 지적했다"고 태도 문제를 지적하며 "영상위원회가 지원기관인지 수익기관인지 판단을 못하더라"라고 사퇴 이유를 고백했다. 우 전주시장이 전주시 영화 관련 사업에 무지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준호의 집행위원장 선임 건도 우 전주시장의 추천으로 진행돼 반발을 샀다. 해외 영화계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전문 지식이 없는 인사를 추천했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민병록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전주시장이 영화제를 망쳐 놓으려는 인상까지 받았다"며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 프로그램 선정을 위해 국내외 흐름에 민감해야 하고 기획력 등도 중요하다. 전주시장은 영화제가 어떤 행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 전 집행위원장 외에도 영화계 인사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화계는 우 전주시장이 영화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토로하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앞날을 우려했다. 박흥식 감독은 "정준호 배우의 임명이 강행되면 전주시장이 영상위에 와서 보인 행동과 영화를 보는 시선에 대해 짚고 넘어갈 생각"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 지방 선거 이후 계속되는 영화제 위협

정준호. [사진=스포츠Q(큐) DB]
정준호. [사진=스포츠Q(큐) DB]

지방 선거 후 폐지 수순을 밟은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이어 한국 대표 영화제로 꼽히는 전주국제영화제까지 운영에 차질을 빚는 그림이 그려졌다. 이에 영화인들은 우려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모두 영화제의 가치를 수익성으로 판단한 지방자치단체의 일방적인 지원 중단이 있었다. 우 전주시장이 전주영상위원회의 수익성을 문제 삼은 부분 역시 추후 영화제 운영의 적신호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앞서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영화제라는 플랫폼 자체가 어떤 의미인가 고민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대기업 자본 독과점으로 인해 텐트폴 영화들이 극장을 장악했다"며 "그렇기에 다양성 부분에서 영화제 중요성이 더욱 커진 올해다. 영화제를 통해 시민들은 평소 접하기 힘든 예술영화. 제3세계 영화 등을 통해 2020년대 시계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고 영화제의 의미를 언급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3년간 영화의 다양성을 선보이는 중추 역할과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로 마련됐다. 마니아층이 탄탄하다는 영화제 자체의 평가도 이러한 특성 덕에 이루어진 결과다. 이와 같은 결과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영화제 초창기에는 정치권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닮아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는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 전환이 대중성 확보를 목표로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영화제 특성에서 벗어난 결정이기도 하다. 과연 전주국제영화제의 결정이 앞선 지방 영화제 폐지 사태 흐름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우 전주시장과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입장 표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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