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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펠레, 축구계 가장 큰 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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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펠레, 축구계 가장 큰 별이 지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12.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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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꼽히는 ‘축구황제’ 펠레(브라질)이 암 투병 끝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리오넬 메시(35·파리생제르맹)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고 새로운 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평가를 받지만 선구자적 역할과 그 상징성에 중점을 두면 여전히 펠레를 넘어서는 게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 황제가 떠나가자 전 세계에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펠레가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브라질을 비롯해 전 세계에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 AP통신, 영국 로이터통신 등은 30일(한국시간) 일제히 펠레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치료를 받던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선 펠레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펠레는 이후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갔고 지난달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다. 설상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며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브라질 선수들은 펠레를 위해 우승 트로피를 바치겠다는 각오로 월드컵에 나서기도 했으나 상태는 계속 나빠졌고 결국 하늘의 별이 됐다.

통산 1366경기에 출전한 그는 1281골을 터트렸다. 오래된 기록이기에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나 브라질축구협회와 펠레, 그의 소속팀이었던 산투스가 주장하는 득점수는 공식 득점으로 인정받은 757골보다는 훨씬 많은 1283골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366경기에서 1281골을 넣었다고 집계했다.

당시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발재간과 폭발적인 스피드, 흠잡을 데 없는 골 결정력을 앞세워 전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다. 1부리그에선 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월드컵 우승컵도 세 차례나 들어올렸다. 비교 대상에 있는 메시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이상 1회)에 확실히 앞서는 부분이다. 월드컵 3회 우승은 펠레가 유일무이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 경기에서 펠레의 쾌유를 기원하며 팬들이 내건 현수막.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만 18세도 되지 않았던 시절 출전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고 충격적인 데뷔를 한 그는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17세239일의 나이로 월드컵 역대 최연소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고 프랑스와 준결승에선 해트트릭까지 작성하며 최연소(17세244일)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웠다. 17세249일에 나선 결승전에서도 최연소 멀티골·우승 기록까지 세웠다.

이후 펠레에게 유럽 명문 클럽의 이적 제안이 쏟아지자 1961년 브라질 정부는 그를 국보로 지정해 해외 진출을 막아서기도 했다. 16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선 상대 팀 선수들의 깊은 고의성 태클에 울었다. 이때 펠레가 다치지 않았다면 브라질의 4회 연속 월드컵 우승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펠레의 부상을 계기로 1970년 월드컵에선 레드·옐로카드 및 선수 교체 제도가 정식 도입됐을 만큼 그가 축구계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했다.

4차례 월드컵에서 12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대표팀에서 92경기를 뛰며 77골을 넣어 네이마르(파리셍제르맹)과 함께 브라질 통산 득점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공식전과 비공식전을 통틀어 무려 92차례나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펠레가 1959년 한 해 동안만 127골을 넣은 건 FIFA에서도 ‘1년간 최다 득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등도 넘어서지 못한 기록이다.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힌 펠레는 수많은 기록을 남긴 채 하늘의 별이 됐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를 상대로 한 실시한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없음에도 무하마드 알리(미국·복싱), 칼 루이스(미국·육상), 마이클 조던(미국·농구)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모두 제쳐 더욱 그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결과였다.

진위 논란은 있으나 1960년대 후반 소속팀 산투스가 해외 투어 일환으로 내전 중인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방문해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렀을 때 펠레를 보기 위해 48시간 동안 전쟁을 멈췄다는 일화도 그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일화다. 1995년부터는 브라질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최초 흑인 장관으로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펠레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게시글엔 “오늘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왕’ 펠레의 여정에는 영감과 사랑이 있었다”며 “그의 여정에서 이드송(펠레 본명 이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은 축구에서 가진 자신의 천재성으로 세상을 매료시켰고 전쟁을 멈추게 하고 전 세계에서 사회 복지를 수행하고 우리 모든 문제의 치료제라 믿었던 사랑을 전파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의 오늘 메시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됐다”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고 유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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