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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상 속 다잡은 멘탈, 김가영이 '어나더 레벨'인 이유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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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상 속 다잡은 멘탈, 김가영이 '어나더 레벨'인 이유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3.01.05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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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통산 5승, 명실상부 LPBA 최고 스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슬픔도 커졌다. 친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으나 김가영(40·하나카드 원큐페이)은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다스리며 친조모 영전에 트로피를 바칠 수 있었다.

김가영은 4일 경기도 소노캄 고양에서 열린 2022~2023시즌 PBA 6차 투어 NH농협카드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예은(24·웰컴저축은행 피닉스)을 세트스코어 4-3(11-8 5-11 11-9 4-11 11-7 7-11 9-5)으로 꺾었다.

차이는 멘탈에 있었다. 포켓볼 여제였던 김가영이 3쿠션까지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김가영이 4일 NH농협카드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정상에 선 뒤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할머니께 바친 트로피, 여제는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했다

이번 대회는 유독 힘들었다. 친조모의 별세 소식을 접했지만 대회 일정으로 인해 오랜 시간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결승에 진출한 뒤 그는 “평소에 친할머니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시고 경기도 빠짐없이 보시면서 응원해주셨다. 덕분에 항상 큰 힘을 받으며 경기를 잘 할 수 있었다”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를 위해서 경기 준비하고 경기에 나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근조 리본을 머리에 꽂고 경기에 나선 김가영은 보다 더 냉정해지려고 애썼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최대한 잘하자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운 상황 등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최대한 괘념치 않으려 했다.

경기 내에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8강에선 오지연에게 첫 두 세트를 내주고 시작했다. 이날도 김예은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모두 마지막에 웃은 건 김가영이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낸 축구 대표팀 선수들처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김가영은 “멘탈적인 부분은 포켓볼 선수로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그때도 한참을 뒤지는 상황에서도 기회는 찾아왔다”며 “다만 초반에 기회가 오면 앞서가기 편한데 집중을 못하거나 포기하거나 다른 마음을 먹으면 그 기회를 못 잡는다. 역전도 많이 해봤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기에 준비하고 있었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챔피언샷 성공을 확신한 뒤에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김가영(왼쪽). [사진=PBA 투어 제공]

 

할머니 영전에 트로피를 바치겠다는 마음이 컸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김가영은 “뭘 하려고 노력하고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해온 걸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며 “어떤 마음을 먹기보다는 머리로든, 마음으로든 비워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 쫓기는 게 익숙한 김가영, ‘당구여제’는 압박 속 성장한다

포켓볼 선수였던 김가영은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섰고 세계 1위로 군림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2019년 프로당구 출범과 함께 3쿠션 무대로 뛰어든 그의 행보에 더욱 눈길이 쏠렸다.

시작을 3쿠션으로 했고 이벤트성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지만 그가 이토록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주변에서 ‘독하다’고 할 정도로 노력파인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이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부족한 면을 채웠고 두께조절 등 포켓볼 선수로서 강점까지 더하며 포켓볼여제를 넘어 ‘당구여제’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꾸준함이다. 4회 우승자인 이미래(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 임정숙(크라운해태 라온),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 엔젤스)와 김세연(휴온스 레전드) 등도 미끄러지는 게 서바이벌 무대다. 그만큼 변수가 많고 최강자들도 어려움을 겪지만 김가영은 2시즌 연속 단 한 번도 서바이벌 무대에서 넘어지지 않았다. 통산 서바이벌 생존률은 무려 92%(23/25)에 달한다.

울음을 꾹 참던 김가영은 우승을 확정한 뒤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대회 내내 마음을 잘 다스렸던 그였으나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PBA 투어 제공]

 

김가영은 “특별한 노하우라기보다는 실력이나 기술이 있어야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게 당연하고 결국 경험인 것 같다. 경험에서 나오는 멘탈적인 부분들이 중요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지 그런 걸 많이 경험했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으려 많이 해왔다”고 비결을 공개했다.

현대 스포츠에선 멘탈 관리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력이나 경험 축적이 반드시 해법이 되는 것도 아니기에 확실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게 멘탈 문제다. 포켓볼 선수 시절에도, 3쿠션으로 전직한 지금도 언제나 쫓기는 입장에서 이뤄낸 성과들이라 더욱 놀랍다.

김가영은 “평생을 늘 쫓겼다. 내가 쫓아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 어린 친구들의 성장에 늘 시달려왔다”면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친구들이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3쿠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쟁자 입장에선 ‘왜 이리 빨리들 느는거야’ 싶기도 해 늘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굉장히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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