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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이상한 해명과 커지는 의문 [프로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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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이상한 해명과 커지는 의문 [프로배구]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3.01.05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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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팬들이 요구하는 부분이었다.”

여자 프로배구 2위팀 인천 흥국생명의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경질됐고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신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2022~2023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서울 GS칼텍스와 홈경기를 앞두고 취재진을 만났다.

김연경이 돌아온 흥국생명이 올 시즌 최고의 인기구단이기는 하지만 이날은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취재진이 삼산체육관을 찾았다. 최근 불거진 구단 내 잡음과 관련해 입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5일 인천 흥국생명과 서울 GS칼텍스의 경기가 열린 삼산월드체육관엔 팬들이 직접 제작한 클래퍼가 배포됐다. 선수들에게 힘을 보내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태광그룹 흥국생명배구단은 지난 2일 돌연 권순찬 감독, 김여일 단장의 사퇴를 발표했다.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 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으며 단장도 동반 사퇴키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물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팀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성적이 나온다거나 사건·사고가 지속된다든지 등의 이유라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당시 연승 기록을 이어가던 수원 현대건설을 잡아냈고 격차는 승점 3에 불과했다. 봄 배구가 아니어도 충분히 1위를 노려볼 만한 상황이었다. 특별한 사건·사고가 불거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향성’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신 단장은 로테이션 문제를 들었다. “로테이션에 있어서 (감독과 단장의) 의견이 안 맞았던 것 같다”며 “팬들은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를 같이 두지 말고 둘을 전위와 후위로 나누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의견 대립이 있었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단장은 팬들이 요구하는 부분이었다며 우승을 위해 단장이 감독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이 과정에서 충돌이 일었다고 전했다.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해명을 위해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러나 어설픈 답변이 이어지며 의문은 오히려 커졌다. [삼산=스포츠Q 안호근 기자]

 

그러나 팬들의 의견이라는 것은 어떤 경로로 취합했으며 대표성은 있는 것인지, 전문가가 아닌 팬들의 의견이 반드시 맞다고 할 수 있는지, 또 설사 이것이 확실한 팬들의 불만이라고 한들 단장의 권한으로 감독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 등 물음표만 커졌다.

신 단장은 “유튜브 등을 통해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고 모호하게 답하더니 “우승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 (전임 단장의) 조언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기용 문제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질문엔 “기용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선수단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의도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이 부분을 기용 혹은 운영 어떤 부분으로 받아들이든 로테이션과 관련한 것이라면 경기 내에서 벌어지는 감독의 고유권한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결국 단장이 경기 내적으로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방향성’을 이유로 경질한다고 한 건 단장이 아닌 감독이었다. 팬들의 이름을 빌렸고 단장의 독단 행동이라고 했지만 자연스레 구단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 단장은 “의견 대립이 많이 있다보니 둘을 함께 경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구단은 ‘방향성’을 언급하며 권순찬 감독 사퇴 이유를 전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결정의 기반에 “우승을 위함”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대건설을 바짝 쫓고 있던 흥국생명의 우승 경쟁력의 결코 부족하다고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권 감독 경질 후 선수들이 크게 반발하고 동요됐던 것만 보더라도 그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흥국생명 에이스 김연경은 권 전 감독 경질에 크게 반발했다고 알려졌다.

 

성적뿐 아니라 올 시즌 흥국생명은 프로배구 최고 인기구단이었다. 여자부 최다 관중 경기 1~5위가 흥국생명 경기였기 때문. 단순히 단장과 감독의 의견 충돌을 둘의 경질 이유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앞서 권 전 감독은 방송사와 인터뷰를 통해 이면에 구단주 및 단장의 문자 압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여러모로 매끄럽지 않은 흥국생명의 해명에 대중의 시선이 다시 권 감독의 이전 발언으로 향하고 있다. 김연경을 비롯한 고참들이 보이콧을 선언하겠다는 이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구단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클래퍼를 자체적으로 제작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나눠주는 등 구단의 행보에 반기를 들었다.

신 단장은 “지난 2일에 선수단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과거 단장 경험도 있고 선수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잘해서 선수들을 안정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전 만난 이 감독 대행은 “2일엔 제대로 훈련을 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뭐라 얘기를 해도 선수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다”고 상반된 이야기를 했다.

흥국생명은 권 전 감독에게 ‘고문’이라는 역할을 맡기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진짜 권 전 감독이 구단을 위한 고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사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한 구단의 임시방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 단장은 “빠르게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며 “조금은 신중하게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다. 가능한 빨리 선정해 감독이 오면 나머지 라운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신 단장의 기자회견은 오히려 논란만 가중시켰다.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더라도 권 전 감독의 이야기는 계속 따라다닐 것이고 팀 분위기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특정할 수 없는 팬이라는 이름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사과가 됐든 해명이 됐든 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진실된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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