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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차준환 은빛미소, ‘김연아 키즈’들의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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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차준환 은빛미소, ‘김연아 키즈’들의 결실
  • 김진수 기자
  • 승인 2023.03.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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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2022년 3월 26일. 차준환(22·고려대)은 프랑스 몽펠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와 직면했다. 대회를 준비하던 도중 차준환이 착용하는 오른쪽 부츠 발목 부분이 부러졌다. 급히 수선을 했지만 현지 공식 연습 때 부츠 끈을 거는 고리까지 떨어졌다. 부츠를 제대로 신지 못해 다리에 힘을 제대로 얻지 못한 그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30명 중 17위에 그쳤다.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는 기권해야 했다.

1년이 지났다. 다시 세계선수권대회에 선 차준환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은반 위에 서 있었다. 한국 남자 피겨 역사에 또 한 번 획을 그었다.

차준환은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96.39점을 얻었다. 23일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99.64점을 합쳐 차준환은 총점 296.03점으로 세계선수권대회 2위에 올랐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과 총점 모두 자신의 최고 기록이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낸 건 이번이 최초다.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싱글 역대 최고 순위는 2021년 대회에서 차준환이 기록한 10위였다. 자신이 세운 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웠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차준환은 이날 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맞춰 연기를 했다. 그는 이날 4회전 점프 2회, 3회전 점프 5회를 성공하며 가산점을 20.25점이나 챙겼다.

차준환은 경기 뒤 “그간 열심히 훈련해 왔다. 오늘을 정말 즐기고 싶었는데, 즐기면서 모든 것을 쏟아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 관해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마침내 좋은 기억을 만들게 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스케이트가 또 부러져 바꿔야 했는데, 이 같은 경험을 통해 내가 더 발전하는 것 같다. 오늘은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했다.

ISU는 홈페이지에서 “차준환은 쇼트프로그램에서 3위에 올랐고 그가 한국 남자 최초로 시상대에 오를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처럼 침착하고 차분했다”고 했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 국가에서 선수 한 명이 출전해 2위 안에 들면 다음 시즌 출전권 3장이 주어진다. 차준환이 이날 2위에 오르면서 한국은 3장을 확보했다.

우노 쇼마(일본)가 301.14점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4회전 반을 도는 쿼드러플 악셀이 장기인 일리아 말리닌(미국)이 3위(288.44점)에 올랐다.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의 개척자라고 불린다. 그의 성적이 곧 한국 남자 피겨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다 8살 때 피겨에 입문한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2016~2017시즌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한 시즌에 두 차례 주니어 그랑프리 메달을 따냈다. 2016년 공식 경기에서는 4회전 점프를 성공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역시 최초로 메달(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니어 무대를 밟은 뒤에도 활약은 계속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자 싱글 출전 선수 중 최연소였다. 당시 15위에 올라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올림픽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2018~2019시즌 한국 남자로는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고 동메달까지 땄다. 2021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한국 남자 선수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2022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남자 싱글 선수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5위에 오르면서 기량을 더욱 끌어 올렸다.

“많은 시간을 훈련에 쏟아부었고 노력을 들인 시간이 천천히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조금씩 발전하는 느낌이 들어요. (중략) 저는 뭔가 저만의 페이스가 있는 것 같아요. 꾸준히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지 않을까.”(2022년 3월 tvN ‘유퀴즈’)라는 본인의 말처럼 차준환은 자신만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한국 피겨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해인(세화여고)이 이번 대회 여자 싱글 2위로 김연아(은퇴)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메달을 따내고 차준환까지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다시 전성기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연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은퇴를 한 후 약 10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사이 수많은 ‘김연아 키즈’들이 나와 성장해 마침내 그 결실이 나오고 있다.

3년 앞으로 다가온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의 활약도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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