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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페미니즘' 잔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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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페미니즘' 잔치가 시작됐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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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매드맥스' '스파이' '무뢰한' 등 변화한 여성 캐릭터 스크린 점령

[스포츠Q 용원중 기자] 국내 영화계가 페미니즘으로 붉게 물들고 있다. 전례 없는 여성 캐릭터들의 영화가 속속 등장하는가 하면 역사와 사회 속 여성의 모습을 조명하는 영화제들이 잇따라 열린다. 최근 증가하는 여성 혐오 발언이나 페미니스트 낙인찍기에 반대해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다시 부상하는 사회적 현상과도 맞닿아 눈길을 끈다.

◆ ‘차이나타운’ ‘스파이’ ‘매드맥스’ ‘에벌리’ 페미니즘 액션...'무뢰한' '은밀한 유혹' 멜로퀸의 변화

그간 여배우들은 멜로와 로맨스 장르 캐릭터를 주로 맡았지만 한계를 깨트리고 액션,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중이다. 장르의 확장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스크린 속 여성성이 대상화되는 것을, 들러리이기를 거부한다.

▲ 여성 누아르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고은 김혜수 주연의 '차이나타운'. 멜로 퀸 캐릭터의 변화를 예고한 '은밀한 유혹'의 임수정, '무뢰한'의 전도연(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달 개봉된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은 남성 캐릭터, 남자배우가 지배하던 충무로에 파열음을 냈다. 영화는 여배우 김혜수 김고운 ‘투톱’을 내세우며 폭력 조직의 보스인 ‘엄마’와 세상에 버려진 조직원의 대결을 통해 여성 누아르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홍보를 맡은 딜라이트 장보경 대표는 “젊은 여성관객들 사이에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뜨거웠다”며 146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요인을 짚었다.

남성 배우 중심 현상은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액션·첩보물은 제임스 본드(007 시리즈), 제이슨 본(‘본’ 시리즈), 에단 헌트(‘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라는 영웅화된 남성 캐릭터의 독무대다.

코믹 첩보액션영화 ‘스파이’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안젤리나 졸리 류의 섹슈얼한 여전사 상마저 파괴한다. 위기에 빠진 CIA와 완벽한 남성 요원들을 구해내고, 핵무기 밀거래를 막는 주인공은 넉넉한 풍채의 노처녀 내근요원 수잔 쿠퍼(멜리사 맥카시)다. 주연인 줄 알았던 미남배우 주드 로(요원 브래들리 파인 역)와 액션스타 제이슨 스타뎀(요원 릭 포드 역)은 멜리사 맥카시의 임무 수행을 돕는 조력자 역할에 머무른다.

재난 블록버스터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주인공은 멜 깁슨의 뒤를 이어 ‘미친’ 맥스 역을 맡은 톰 하디다. 하지만 관객의 눈을 휘어잡는 인물은 독재자 임모탄의 폭정에 항거하는 사령관 퓨리오사 역 여배우 샤를리즈 테런이다.

▲ 액션과 스파이물에서도 여배우가 중심에 서고 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런, '스파이'의 멜리사 맥카시, '에벌리'의 셀마 헤이엑(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삭발머리에 외팔이인 퓨리오사는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쥔 임모탄의 여인들을 구출해 새로운 땅을 찾아 분노의 도로를 폭주한다. 퓨리오사의 체제에 대한 저항정신과 인류애, 자매애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즘 요소로 가득 찬 영화로 읽히게 한다. 이외 1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연령대의 여성 캐릭터가 스스로의 의지로 적과 맞서 싸우는 ‘페미니즘 액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6월2일 개봉을 앞둔 액션 스릴러 ‘에벌리’는 여성이 벌이는 복수극이다. 보스의 아지트인 아파트에 4년 동안 감금됐던 에벌리(셀마 헤이엑)가 그곳에서 벗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복수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평범했던 한 여자가 복수를 위해 여전사로 변모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멜로 여주인공 결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27일 개봉하는 ‘무뢰한’에서 술집여자 혜경(전도연)은 살인범인 애인 준길(박성웅)과 그를 좇는 강력계 형사 재곤(김남길) 사이에 위태롭게 존재하며, 두 남자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영화의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하드보일드(단단)한 멜로는 혜경이 주도한다. 6월4일 개봉하는 ‘은밀한 유혹’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지연(임수정)과 인생을 완벽하게 바꿀 제안을 한 성열(유연석)의 위험한 거래를 다룬 범죄 멜로다. 임수정은 욕망에 사로잡힌 치명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 극중 아슬아슬한 거래를 장악한다.

◆ 여성의 정체성에 눈 맞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 개최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5월27일부터 6월3일까지 서울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8일간 개최된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슬로건 아래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고정 관념에 갇히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의 삶에 관한 총 111편의 영화를 하루 5회 상영한다.

▲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비 포 보이' '카트' '여성의 날' '나는 페멘이다' '마마스'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특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이슈는 '페미니즘'이다. 쟁점 섹션에서는 크게 여성 노동(‘카트’ ‘여성의 날’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셀러브리티 페미니즘(‘마마스’), 글로벌 페미니즘(‘나는 페멘이다’ ‘페미니스트 인샬라!’ ‘비 포 보이’), 미디어와 표현의 자유(‘가슴을 허하라’)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를 선보인다.

또한 페미니즘 안에서의 다양한 관점과 역사를 다룬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 ‘페미니스트 인샬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작품들로 관심을 모은다.

회고전 섹션에서는 1950년대 할리우드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활동했던 아이다 루피노의 영화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필름메이커스라는 저예산 독립영화사를 설립한 이후 7편의 작품을 연출한 그는 누아르 영화를 만든 최초의 여성 감독이었으며 당시 금기시되던 혼외임신, 중혼, 강간 등의 여성 문제를 영화화하며 여성의 관점을 분명히 했다. 회고전에서는 ‘두려움 없이’ ‘아웃레이지’ ‘거칠게, 빠르게, 아름답게’ ‘히치하이커’ 등 6편을 상영한다.

▲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활약앴던 여성감독 아이다 루피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이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 및 치유 지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 시작됐다. 여성 인권을 다루거나 이와 관련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소재로 한 장단편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등 출품작 공모를 7월6일까지 진행한다. 올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9월16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 남성주의 세계관, 사회정서적 남녀차별에 맞서는 뜨거운 행보

여성 영화인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위력적인 남성주의 세계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정서적 남녀 차별을 방증한다. 할리우드 여배우 샤를리즈 테런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둘러싼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처음부터 페미니스트 아젠다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경직되곤 하죠. 밀러 감독은 그저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고 보여줬을 뿐이에요. 그렇게 진실을 이해했기에 결국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든 겁니다.”

‘차이나타운’의 김혜수는 “여성이 주인공이냐, 영화를 끌고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캐릭터를 제안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여배우의 발언은 요즘 영화계 지형도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를 향하는지를 함축한다.

차별 어린 시선, 고정 관념을 거부하는 ‘세상의 절반’ 그녀들의 잔치가 어떤 변화를 이뤄낼지 자뭇 궁금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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