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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예능의 품격,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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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예능의 품격, 안 되겠니?
  • 안은영 편집위원
  • 승인 2014.03.3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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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안은영 편집위원]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여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곧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무엇하리

- 송강 정철 '장진주사'

▲ '너에게만 반응해' 속 먹방BJ 용준형 [사진=가수 이승환 뮤직비디오 캡처]

시작부터 문자 허세를 부렸다. 바닥이 뻔한 지적 용량이지만 좋아하는 시조 가운데 하나다.

사춘기 시절 이 시조를 배울 때부터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적 마음가짐이 탱천했나보다. 내일 걱정하느라 몸 사리지 말고 오늘의 흥은 오늘 풀고, 눈앞의 잔은 비워가며 무진무진 마시자는 취지의 이 시조가 뜻하는 바는? 인생무상이다.

먹는 것은 사는 일이다. 놀고 먹건, 먹고 놀건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먹는 일은 인생의 바이탈, 인생의 에너지, 인생의 엑스타시다. 먹기를 멈추면 삶이 끝난다. 이 허무하고 당연한 이치를 조선 중기, 당대의 문인은 저토록 유려하게 노래했다(물론 그 중심은 술이다, 그래서 더 좋다). 먹방의 얼이라고나 할까.

콕 짚어 말하고픈 대목은 ‘꽃 꺾어 산 놓고’다. 한 잔씩 추가할 때마다 꽃으로 셈(셈할 산, 算)해가며 먹는다는 거다. 세 잔 마시면 꽃잎 세 개, 다섯 잔 마시면 꽃잎 다섯 개. 혈기방장하던 대학시절 선배들이 막걸리 병을 테이블에 나래비(!) 세워놓던 것은 조상의 얼을 이어받았다는 건가! 놀라운 계승이라고 밖에.

많이들 쓰는, 이런 문자도 있다. ‘식일완만사지(食一碗萬事知)’.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이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만사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쌀을 불리기 위한 땅, 키워낸 햇살, 길러난 농부의 땀, 수확하는 바람. 솥 밥 한 그릇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먹기만 해도 세상의 이치에 닿는다는 건데, 무식하고 바쁜 우리가 곱씹기엔 지루하고 성가실 수 있다.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식욕이 돋는다. 깨작깨작 먹는 사람과는 밥 먹기 싫다. 제 식탐만 차리는 사람을 보면 좀 질린다.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처먹는 꼬락서니’가 싫어지면, 그 관계는 끝난 거다. 먹는 일은 관계의 시작과 끝이다.

▲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주연배우 윤두준, 이수경 먹방 [사진=tvN 영상 캡처]

내 생각은 이렇다. 먹는 일이 이렇듯 중할진대, 먹는 방송이 품위를 갖춰줄 순 없을까. 나는 다만, 먹는 일이 쇼 자체로 끝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예능, 재밌다. 캐릭터들이 생생해서다. 아쉬운 건 종과 횡으로 엮이는 에피소드들의 퀄리티다. 캐릭터에 기대느라고 진행은 쉽게 간다. 먹고 또 먹느라 훌쩍 수십분이 지나간다. TV 수신료를 내가며 보고나서 냉장고를 주섬주섬 열거나 야식집 배달 버튼을 누른다. 먹는 게 아니라 위장에 ‘쟁여넣는’ 행위를 위해서다. 마치 간을 비대하게 만들기 위해 목구멍까지 거위에게 음식을 채워넣는 푸아그라처럼. 식탐과 탐식의 차이다.

우리는 오랜 동안 먹는 일에 최선을 다해온 민족이다. 당시엔 살아야 해서 먹었고, 이젠 쾌락을 위해 먹지만 일관된 진리가 있다. 먹는 일은 사는 일이다.

그런 우리가 이토록 허약하게 한 순간에 휘발되는 먹방에 위안삼아야 되겠나. ‘맛’과 ‘삶’을 다룬 품격있는 접근이 예능에도 접목되어야 할 시점이다. 예능과 교양이 섞여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만큼 요새 시청자들의 수준을 높아졌다. 식탐으로 욱여넣는 푸아그라 예능 말고, 맛과 삶이 응축된 정제된 먹방, 안 되겠니?

wonhe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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