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이임생(53) 대한축구협회(KFA) 기술총괄이사의 독단일까, 아니면 독박일까.
한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에 오른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선임 과정 브리핑이 8일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렸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외국인 감독 후보자와의 협상이 잇따라 결렬된 이후 다시 감독 후보군을 추렸지만 사실상 그 때부터 홍명보 감독으로 마음이 기운 게 아니었냐는 것이다. 감독 선임을 총괄하는 KFA의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의 위원이었던 전 축구선수 박주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이임생 이사는 지난달 28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임하면서 갑작스럽게 업무를 이어받았다. 이임생 이사는 “축구협회에서 이 일을 하라는 업무를 받고 절차에 맞게 일을 추진해 왔다”라며 “정몽규 회장이 내게 권한과 책임을 줬다”라고 했다.
정해성 위원장 사퇴 후 총 9명의 전강위 위원 중 4명이 회의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임생 이사는 나머지 5명에게 동의를 구하고 정해성 전 위원장의 업무를 이어받았다. 협회 법무팀에 문의를 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답변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실질적인 감독 최종 후보자는 3명이었다. 이임생 이사는 지난 2~4일 외국인 후보자였던 다비트 바그너(독일), 거스 포옛(우루과이)을 각각 스페인과 독일에서 면접을 진행했다. 이후 KFA의 축구 철학과 게임 모델, 성인 대표팀과 각급 연령별 대표팀의 연계성 등을 고려했을 때 홍명보 감독이 최적이라고 판단한 이임생 이사는 5일 오후 11시 홍명보 감독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간곡히 설득했고 다음 날인 6일 오전 9시께 홍명보 감독의 승낙을 받았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전강위 위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임생 이사는 “홍명보 감독을 뵙고 (감독으로) 결정한 이후에 위원회를 다시 소집해야 하지만 다시 미팅을 하게 되면 (소식이) 언론이나 외부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개별적으로 5명의 위원에게 최종 결정을 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전력강화위를 갑작스럽게 맡은 이임생 이사가 모든 걸 혼자 결정한 셈이 됐다. 이임생 이사가 면접을 본 두 외국인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축구 철학이 강하고 확고하지만 현시점에서 우리 선수들이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수비에서 롱볼을 사용해 경쟁을 유도하면서 빠른 서포트를 하는 축구를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임생 이사는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때처럼 빌드업을 통해서 기회를 만드는 한국 축구의 성향과는 맞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외국인 후보자는 고강도 압박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이 역시 수비 라인을 올리다가 중동 팀의 역습을 당할 우려가 있고 후반까지 체력적인 문제가 있을 것으로 이임생 이사는 예상했다고 한다. 두 외국인 후보자의 철학이 열흘에 불과한 대표팀 소집기간에 선수단에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임생 이사는 “제가 보는 낮은 지식과 경험을 비난해도 좋다”면서도 “스스로 우리 선수들이 어느 감독님을 만났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부분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풀어갈 수 있을지 결정했다. 이 부분들이 잘못됐다고 하면 저는 당연히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전강위 위원으로 활동한 박주호에 따르면 제시 마치 감독과의 협상 실패 이후 전강위 안에서는 국내 감독을 사실상 내정한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박주호는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를 통해 "회의 시작도 전부터 '국내 감독이 낫지 않아?' 하는 대화로 벌써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외국 감독에 대해 논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며 반대 의견을 내는데, 국내 감독에 대해 언급하면 무작정 좋다고 했다"고 했다.
박주호는 홍명보 감독이 선임될 줄 “정말 몰랐다”고 했다. 그는 "홍명보 감독이 계속 안 한다고 이야기했기에 나도 아닌 줄 알았다"고 했다. 이어 "전강위는 앞으로도 필요가 없다"며 "지난 5개월 동안 열심히 회의했는데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허무하다“라고 했다.
한편, 울산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울산 팬들은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는 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한축구협회는 처용전사와 한국 축구 팬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그 어떤 해결 방법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다 결국 다시 K리그 감독 돌려막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했다”며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이러한 처용전사와 한국 축구 팬들의 염원을 무시한 선택이며 우리는 축구 팬들에게 다시금 큰 상처를 입힌 이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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