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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언제쯤 ‘탈출’하나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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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언제쯤 ‘탈출’하나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07.09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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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족구왕'(2014), '굿바이 싱글'(2016) 등 재치 넘치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김태곤 감독이건만, 처음으로 손댄 재난 블록버스터는 캐릭터의 매력도, 작품의 매력도, 김태곤 감독의 매력도 찾아볼 수 없다. 아쉬움이 가득한 영화적 재난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故) 이선균 사망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그의 주연작이다.

작품의 중심을 이끄는 이선균은 지난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던 중 12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개봉을 준비 중이던 출연작 2편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행복의 나라'는 한 달 간격을 두고 개봉을 확정해 올 여름 모두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이선균의 아내 전혜진이 출연한 영화 '크로스'는 극장 개봉 대신 내달 넷플릭스 공개를 확정한바. '크로스'와 달리 스크린을 고집한 작품이기에 이선균을 향한 관객들과 영화인들의 그리움을 업고 CJ ENM과 한국영화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는 2020년 촬영을 시작해 2021년 크랭크업, 202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의 첫 공개까지 4년이 소요됐다. 개봉을 확정한 오늘날까지도 다시 1년이 걸렸다. 영화제 이후 세상을 떠난 주연 배우를 추모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장르적 긴장감을 높이는 후반작업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는 전언. 이에 러닝타임이 칸 상영 당시 100여 분에서 96분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시간은 도합 5년, 제작 준비 기간까지 더하면 열손가락이 부족하다.

한국 재난 영화는 누적 관객 수 1132만명의 '해운대'(2009)와 1157만명의 '부산행'(2016)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여기에 지난해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재난 이후 군중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이중 '해운대'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자연 현상에 의한 천재지변이라면 '부산행'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인재(人災)에 해당한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그러니 의도하든 아니든 '부산행'과의 비교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 '부산행'에서 공유의 딸로 출연한 김수안이 이선균(차정원 역)의 딸 차경민 역을 맡아 부성애를 이야기한다는 부분도 겹친다.

'부산행'이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벌어진 좀비의 습격이라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인천대교 위에서 살생용으로 훈련된 군견들이 풀려나며 벌어지는 재난을 그린다. 여기에 '부산행'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위기 상황을 더했고,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안개 속에서 과속 운전을 하던 운전자가 일으킨 연쇄추돌 사고, 군견을 포획하기 위해 나선 헬리콥터가 추락해 발생한 대교 붕괴, 사람을 마구 공격하는 군견이 국방부의 비밀 실험에서 탄생한 개체라는 사실 등 '인재 of 인재'를 그려간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1300평의 세트장에 차량 300대 이상을 동원해 촬영한 신들과 사나운 군견들을 사실감 넘치게 완성한 CG는 '역대급 스케일'라 자랑할 만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전부다. 재난을 위해 설정된 이야기는 열 보 앞이 예측 가능하고, 캐릭터들은 재난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한다. 

특히 주역인 이선균과 주지훈이 맡은 인물은 억지스럽고 고집스러운 설정을 수행하느라 구심점을 잡아주지 못 한다. 주변 인물을 활용해 위기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는 '선(善)'을 보여주려는 시도들이 돋보이지만, 중심이 흔들리다 보니 '민폐 캐릭터'의 향연으로만 여겨진다. 더불어 군견과 대비되는 주지훈(조박 역)의 반려견 조디는 액세서리 역할로만 소비된다. 배우들에 의해 이리 들리고 저리 끌려가는 조디를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만 거듭할 뿐이다.

이처럼 이야기와 캐릭터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보니 줄이고 줄인 96분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인물들이 어서 탈출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보다 이들이 '탈출'해 나 역시도 객석에서 '탈출'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말미 김태곤 감독은 이선균의 입을 빌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친다. 이 대사에 세월호, 이태원 사태 등 국가가 책임지지 않은 인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영화의 외침에는 힘이 없다. 대사에 담긴 의미가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해야 하는 법이거늘, 위태로운 기반에 놓인 메시지는 깊이가 없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지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배우만 떼어놓고 본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고 이선균'이 이 대사를 외침으로써 가슴 아픈 응어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오는 12일 극장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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